[취재파일] 故 김용균 씨 1년 전, 그곳에 또 다른 노동자가 있었다

정윤식 기자 jys@sbs.co.kr

작성 2019.02.08 16:10 수정 2019.02.15 11:3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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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나이로 떠난 젊은 노동자의 삼일장이 치러지고 있습니다. 하청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장례식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어제(7일)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새벽 3시 34분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된 지 59일 만입니다.

● "故 김용균 씨 외에 33명이 더 있었다"…하청 사망자 34명, 원청 0명

기계음만이 들렸을 텅 빈 새벽 공장에서 김 씨는 홀로 외롭게 숨졌습니다. 그랬던 김 씨의 마지막 가는 길에 뒤늦게나마 여러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빈소로 이어지는 장례식장 복도에는 정부 관계자와 정치권 인사들이 보내온 화환도 빼곡합니다. 정윤식 기자 김용균 씨 사고 취재파일용 190208늦었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고독한 죽음을 맞은 한 노동자가 이렇게 세상의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김 씨의 죽음을 계기로 국회에서 진통 끝에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이른바 '김용균법'이 내년 1월 16일 시행되면 더 많은 노동자들을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제 정부와 여당의 발표로 출범 준비를 시작한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도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건 '과거로부터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입니다. SBS는 김 씨의 안타까운 사고를 계기로 다른 하청 노동자들의 과거 사망 사고를 되짚어 보는 뉴스를 그제(6일) 보도했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문진국 자유한국당 의원과 보좌진의 도움을 받아 김 씨가 숨진 서부발전을 비롯한 각 기관을 대상으로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정윤식 기자 김용균 씨 사고 취재파일용 190208최근 5년 동안 국내 화력, 수력,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모든 산업재해 현황을 확보했습니다. 자료를 토대로 연도별 산업재해 발생 건수와 사고 내용, 사망자 숫자, 부상자 숫자 등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 각 기관들의 법 위반 여부와 위반 내용, 관리 당국의 처분 결과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피해자 가운데 원청과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의 수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해보니 놀라웠습니다. 5년 동안 숨진 발전소 근로자 34명 가운데 하청업체 소속은 34명. 원청업체 소속 지원 가운데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5년간 숨진 발전소 사망자가 전부 하청업체 소속이었던 겁니다. 정윤식 기자 김용균 씨 사고 취재파일용 190208● 故 김용균 씨 사고 1년 전…같은 곳에서 숨진 44살 재하청노동자 정 모 씨

482건의 사고 가운데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 내역 34건을 하나씩 살펴봤습니다. '해체 공사 도중에 미고정된 작업 발판이 뒤집히면서 떨어져 사망', '구명줄 설치작업 중 추락', '현장 점검 중 VBF 롤러와 빔 사이 협착 사망' 등 고 김용균 씨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김 씨가 숨진 발전소를 운영하는 서부발전에서 일어난 사고 중에는 지난 2014년 일어난 '공사 도중 생수로 오인한 유독물 음용으로 인한 사망 사고'도 있었습니다. 겨울철 냉각수가 얼지 않도록 넣는 화학물 액체인 부동제를 물인 줄 알고 잘못 마셔 숨진 사고입니다. 부동제를 생수로 착각할 정도로 혼잡한 작업 현장이었다는 반증입니다. 황당하고도 안타까운 사고입니다.

몇 글자의 활자로 사고 당시 정황을 모두 알기는 불가능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사고 사례가 눈에 띄었습니다. 34건 사망 사고 가운데 한 사고의 내용이 상세히 담긴 이 자료의 이름은 '재해조사 의견서'입니다. 산업재해 예방을 목적으로 안전시설을 관리 감독하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지난 2017년 11월 조사를 벌여 만든 일종의 사망 사고 경위 보고서입니다. 숨진 이는 당시 44살이었던 정비 노동자 정 모 씨. 김용균 씨가 숨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김 씨 사고가 일어나기 약 1년 전 숨진 하청 노동자입니다. 정확히는 서부발전의 하청업체 A가 재하청을 준 B업체 소속 직원입니다. 하청에 또 그 아래 하청 소속인 겁니다. 정윤식 기자 김용균 씨 사고 취재파일용 190208정비 파트에서 일하고 있던 정 씨는 당시 회전하는 기계 장치를 멈춰놓고 장비를 교체하고 있었는데 다른 근로자가 장치를 가동하는 바람에 머리가 끼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태안 화력발전소 발전기 3호기의 보일러 시설에 있는 공기 예열기에서 작업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정 씨는 석탄재가 쌓인 열소자를 분해해서 청소한 뒤 재설치를 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작업 중인 정 씨의 머리 위에는 움직이는 회전체가 있었는데 예열기 바깥에서 외부 작업자가 에어 밸브라고 불리는 수동 장치를 조작해 가동을 하지 않으면 멈춰 있는 상태였습니다. 정 씨는 이른 점심을 먹고 약 12시 반쯤 다시 작업을 하러 예열기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멈춰있어야 할 회전체가 갑자기 움직이면서 정 씨의 머리가 회전체와 하부 구조체 사이에 끼어버린 겁니다. 정 씨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 점심시간에 쫓기듯 찾아든 참변…"발전소 측은 119도 부르지 않았다"

관리 감독관도 없던 점심시간에 왜 정 씨가 무리해서 작업을 해야 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립니다. 재해조사 의견서에는 "50톤짜리 지상 크레인이 오후 2시에 다른 장소로 이동할 예정이었던 이유가 고려됐던 걸로 판단된다"고 적시돼있습니다. 즉 다음 작업까지 시간이 빠듯해 정 씨가 쫓기든 점심시간에 일을 했다는 겁니다. 서부발전 측은 SBS와 통화에서 "근로자들에게 점심시간에 무리하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정 씨가 숨졌을 때가 점심시간이라 관리 감독관이 자리를 비운 것도 문제없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사고 당시 발전소에서 근무했던 근로자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원청업체가 일을 시키지 않으면 하청 업체 근로자들이 그렇게까지 나서서 일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작업 기한을 설정하고 진행 속도를 관리하는 건 모두 원청업체라는 겁니다. 정 씨가 점심시간에 작업을 한 게 본인의 자율적인 결정일 리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정윤식 기자 김용균 씨 사고 취재파일용 190208취재 과정에서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이때 지적됐던 문제점들이 1년 뒤 김용균 씨 사고 때 드러났던 문제점들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점이었습니다. 회전체를 잘못 가동하는 바람에 정 씨를 숨지게 한 근로자 장 모 씨는 사고 당일 처음 작업에 투입됐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장 씨는 사람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는 회전체의 작동을 맡았지만 작동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만 들었을 뿐 안전 교육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숨진 정 씨 역시 입사 한 달이 안 된 상태였습니다. 재해조사 의견서에는 정 씨가 위험 상황에 대한 사전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정 씨가 숨진 직후 119 신고가 없었다는 동료 근로자의 증언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사고 직후 정 씨를 당시 발전소 내에 있던 차량에 태워 병원으로 옮겼지만 구급차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동 중에 응급조치를 받지 못했고 결국 사망을 막지 못했다는 주장입니다. 서부발전 측은 이에 대해 당시 119 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근처 병원까지 거리가 멀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내부에 응급 요원을 배치해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 하청 노동자 '죽음의 외주화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정 씨가 숨진 뒤 약 1년 뒤 고 김용균 씨는 불과 2시간에 불과한 반쪽짜리 안전교육만 받고 일하다 숨졌습니다. 관리 감독관도 없는 상태에서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사망 4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김 씨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1년 전 정 씨가 숨졌을 때 지적됐던 문제점들이 해결됐더라면 어땠을까요. 정 씨 사고가 일어난 2017년 고용노동부는 1년 동안 5차례나 안전점검을 벌였습니다. 정 씨 사망사고 직후에는 사흘 동안 특별안전감독도 진행했습니다. 모두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대책은 허울뿐이었고 실행은 전무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흘러 김용균 씨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고 가족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아픔을 겪게 됐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은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발전소 예열기 안에서 숨진 44살 정 모 씨와 컨베이어 벨트에서 숨진 24살 김용균 씨 사고가 근로자들의 생명을 지키는 밀알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 직후 투쟁을 벌여 온 발전비정규직연대회 이태성 간사는 "발전소에 있는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의 외주화'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1년 뒤에 고 김용균 님과 같은 사건이 다시 재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SBS와 인터뷰에서 회고했습니다. 정 씨가 숨졌을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 근로자도 사고 당일의 참담함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만을 그저 바랄 뿐입니다. 정윤식 기자 김용균 씨 사고 취재파일용 190208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 씨는 내일(9일) 전태일 열사와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잠들어있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영면에 들어갑니다. 두 달 만의 장례식을 치른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추운 겨울 내내 원하지 않던 투쟁을 벌였습니다. 김미숙 씨는 SBS와 인터뷰에서 "최소한의 생명만큼은 지킬 수 있도록 그리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제가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숨진 김용균 씨가 바랐던 것도 그저 최소한의 안전이었습니다.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김용균법 시행 1년을 앞두고 진상규명위원회까지 출범한 지금이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숱한 노동의 새벽을 외로이 보내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하청 노동자들은 모두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식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외로운 죽음이 이 땅에서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길 바라봅니다.

(사진=SBS 8뉴스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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