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북한 숨통 죄는 초강력 제재…밴쿠버 그룹의 해상차단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9.01.06 09:08 수정 2019.01.07 16:4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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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월 16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국전쟁 참전 16개국과 한국, 일본을 비롯한 모두 20개국 외교수장들이 모였습니다. 미국과 캐나다가 주축인 20개국을 일명 밴쿠버 그룹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국내 언론들은 "밴쿠버 그룹이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한 남북대화를 환영하며 한반도 긴장 완화와 비핵화를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선언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도록 대북 제재와 압박을 지속하기로 했다"는 다소 엄격한 문구도 보도됐지만, 밴쿠버 20개국 외교장관 회담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알려졌습니다. 한국 외교부가 그런 식으로 보도자료를 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밴쿠버 20개국 외교장관 회담의 결과물은 엄중했습니다. 핵심은 대북 해상차단이었습니다. 가깝게는 동해와 서해, 멀게는 동중국해, 남중국해에서 북한으로 오고가는 선박을 원천봉쇄하기로 20개국 외교장관이 합의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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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외교장관 회의 이후 한반도의 평화 여정은 숨 가쁘게 이어졌습니다. 3주 뒤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했고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과 북한의 명목상 국가수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방문했습니다.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 1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졌습니다.

밴쿠버 그룹은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밴쿠버 그룹의 해상초계기와 함정들은 조용히 북한을 봉쇄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군용기와 아찔한 조우를 할 정도로 작전은 서해 깊숙한 곳에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신 대북 제재이자 초강력 제재입니다. 늘상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 살아온 북한이지만 직접적으로 차단을 당하니 숨 막힐 노릇입니다. 봉쇄라는 비수를 외교라는 웃음 뒤에 숨겨두는, 트럼프다운 접근 방식입니다.
호주의 P-8 포세이돈 해상초계기● 세계 최고 해상초계기 P-8 포세이돈 투입

작년 11월 30일 호주 국방부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이행하는 국제적 노력에 대한 지원으로 대북 해상 감시 작전을 실시하기 위해 일본에 P-8 포세이돈 1대를 전개한다"고 밝혔습니다. "작년 4월에 포세이돈 1대, 9월에 AP-3C 오리온 2대를 파견한 데 이은 추가적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크리스토퍼 파인 호주 국방장관은 "북한의 불법적인 무역과 제재 회피 행위를 억지하기 위한 일"이라고 해상초계기들의 일본 전개 목적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파인 장관은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할 때까지 대북 압박을 지속할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호주가 포세이돈과 오리온을 보낼 때 뉴질랜드도 동북아 공해에서 북한의 불법 환적을 감시하기 위해 P-3K2 해상초계기 1대를 일본으로 보냈습니다. 뉴질랜드의 윈스턴 페터스 부총리는 "북미, 남북 정상회담을 환영하지만 북한이 국제적 의무를 준수할 때까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는 성실히 이행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 초계기들은 일본 가데나 공군 기지에 배치돼 대북 감시 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필리핀해에서 훈련중인 미 해군 레이건과 스테니스 항모 전단● 대북 감시 중 중국 군용기 위협 비행

지난달에는 캐나다의 CP-140 오로라 정찰기가 '북한 가까운 동중국해'에서 북한의 화물선과 유조선의 활동을 감시하다 중국 공군기의 갑작스러운 근접 비행으로 아찔한 상황을 겪었다고 캐나다 언론들이 보도했습니다. 북한과 가까운 동중국해라면 서해입니다.

조너던 밴스 캐나다 합참의장은 "중국 군용기가 캐나다 정찰기에 지나치게 가까이 비행하며 부당하고 부적절한 무선 교신을 했다"며 "인근 해역과 상공에서는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 등이 북한의 유엔 제재 위반 여부를 감시하고 있는데 중국 공군의 근접 비행과 방해를 겪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밴스 의장의 발언으로 밴쿠버 그룹이 특히 서해에서 적극적으로 대북 차단 작전을 벌이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세력이야 서해까지 진입하기 어렵겠지만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는 동해와 서해를 넘나들며 대북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겁니다.

한국 해군도 조용히 참가하고 있습니다. 초계기뿐 아니라 수상함과 잠수함들이 북한의 불법 환적 현장을 여럿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 방위성은 북한의 불법 환적 적발 사실을 종종 홈페이지에 공지하기도 합니다.

미 해군은 북한에서 좀 멀리 떨어져서 움직이는 분위기입니다.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데 있어서 군은 뒤에서 돕는다는 게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이기 때문에 눈에 띄는 작전은 삼가지만 동남아 인근 해상에서는 '함정의 대북 장막'을 세워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작년 11월에는 레이건호와 스테니스호 등 2개 항모 전단이 필리핀해에서 훈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예비역 제독은 "밴쿠버 그룹이 십시일반 전력을 파견해서 상당한 규모의 세력이 북한을 둘러싼 형국"이라며 "유례없는 물리적 대북 압박"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위와 같은 밴쿠버 그룹의 활동을 북핵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군사적 뒷받침이라고 부릅니다. 대화의 문은 열어뒀지만 강력한 압박을 병행하는 화전 양면 전술입니다. 대화든 압박이든 하나에만 매진했던 과거의 해법들이 두루 실패했으니 새로운 전법, 대화와 압박의 병진에 기대를 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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