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한국스포츠 망치는 현 정권 낙하산 인사 ①

권종오 기자 kjo@sbs.co.kr

작성 2019.01.04 11:2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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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의 새 선수촌장 후보로 과거 자신의 제자를 폭행한 전력이 있는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김성한(61세) 전 감독이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문재인 정권의 '보은 인사'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체육계 안팎에서 거세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SBS 취재파일은 현 정권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 실태를 4편에 걸쳐 보도합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인사 난맥 문제로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혼쭐이 났습니다. 여야 의원들은 이기흥 회장이 자신의 당선에 공을 세운 측근들과 특정 종교(불교) 인맥을 지나치게 중용했다고 질타하며 강력한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쉽게 말해 이기흥 회장이 뽑은 고위직 인사를 대거 물갈이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연간 4천억 원의 정부 지원을 받는 대한체육회로서는 정치권의 요구에 더 이상 맞서기 어렵다고 판단해 대한체육회 서열 2위인 사무총장, 3위인 선수촌장을 비롯해 사무부총장, 선수촌 부촌장 등 6개 고위직 인사를 전면 교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방망이로 선수 머리를 친 사람이 선수촌장?

이런 가운데 임기 2년의 신임 국가대표 선수촌장은 오는 8일 선임돼 15일 대한체육회 이사회의 동의를 거쳐 공식 취임합니다. 선수촌장은 한국 아마추어 스포츠의 얼굴로 탁월한 지도력과 행정 능력은 물론 전 종목 감독-코치와 선수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도덕성이 필수 덕목입니다. SBS 취재 결과 현재 선수촌장 후보에 신치용 전 배구 국가대표 감독, 김호곤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김성한 전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감독 3명으로 압축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신치용 씨는 한국 남자배구의 살아 있는 신화로 삼성화재 배구단 감독을 20년 동안 맡으며 슈퍼리그 우승 8회, V리그 우승 8회를 달성했고 국가대표 감독으로도 명성을 날렸습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지난달 2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선수촌장의 전문성은 (대표 선수들의) 경기력"이란 발언을 감안하면 가장 강한 경쟁력을 갖춘 후보로 평가됩니다. 축구 국가대표 스타 출신인 김호곤 씨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지휘봉을 잡아 사상 첫 8강 진출을 이끌었고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기술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신치용, 김호곤 2명의 경우 장단점은 물론 있지만 선수촌장을 맡지 못할 큰 결점은 없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김성한 전 감독의 경우는 다릅니다. 먼저 프로야구 선수와 감독으로 활동한 김성한 씨는 신치용, 김호곤 두 사람과 달리 국가대표 선수촌과 인연이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선수촌장 선임은 물론 후보로 거론되는 것만 해도 일종의 '난센스'라는 게 체육계의 불만입니다.

더 결정적인 흠은 '폭행 파문'입니다. 김성한 씨는 지난 2002년 KIA 감독 시절 야구 방망이로 당시 포수였던 김지영의 머리를 때려 큰 물의를 빚었습니다. 2018년 한 해만 해도 대한체육회에 공식 신고된 폭력 건수만 80건에 이릅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는 평창 올림픽 직전에도 조재범 대표팀 코치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엄청난 충격을 줬습니다. 스포츠계 폭력에 대한 강력한 징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에 하필이면 폭행 가해자가 국가대표 선수촌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블랙 코미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런 치명적인 결점을 갖고 있는 김성한 씨가 왜 선수촌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일까요? 국내 체육계 사정에 정통한 A 씨는 SBS와 통화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문재인 김성한 (사진=연합뉴스)"김성한 씨는 2017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를 공식 지지했고 TV 찬조연설자로 나선 것을 비롯해 유세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김 씨보다 유세 활동이 보잘것없던 사람들도 굵직한 체육계 요직을 이미 꿰찬 반면 김 씨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자리를 맡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로서는 당연히 한 자리를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이런 뜻이 대한체육회에 반영됐고 정부와 여권에 '미운털'이 박힌 이기흥 회장도 김성한 씨를 통해 정권과 연결 고리를 만들 필요성이 있을 것이라 본다. 양측의 이런 움직임이 맞아떨어져 김성한 씨가 강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김성한 씨는 최근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과거 폭행을 많이 뉘우치고 있다. 과거엔 폭력이 어느 정도 묵인되던 시대였고, 폭행은 그런 와중에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이었다며 "폭력이 자행돼서도 안 되고, 폭력을 참을 수도 없는 지금의 시대정신엔 전혀 맞지 않는 일이었다"고 거듭 사과했습니다. '낙하산 인사' 문제에 대해서 김 씨는  "문재인 후보가 대선 후보 중 가장 나은 분이었기에 도왔을 뿐 당선 후 어떤 대가나 자리를 바란 건 아니다. 선수촌장이라는 막중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과거의 멍에에서 벗어나 마지막으로 한국 스포츠 발전에 꼭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정권 창출에 기여한 사람이 요직에 앉아서는 안 된다는 법과 규정은 없지만 전문성과 도덕성을 무시한 채 오직 정권 창출에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만 '보은 인사'를 남발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현 정권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낙하산 인사'를 거세게 비판한 전력이 있습니다. 과거 어떤 대통령은 "인사가 만사"라 말했지만 정작 자신의 인사를 '망사'(亡事)'로 만든 적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이 이른바 '내로남불'에 빠진 채 과거의 불행한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됩니다. 대한체육회와 이기흥 회장의 현명하고도 과감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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