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상생과 품격의 정치인' 부시 장례식장에 가다…트럼프 시대의 거울

손석민 기자 hermes@sbs.co.kr

작성 2018.12.07 13:1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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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아버지 부시'로 알려진 조지 H.W. 부시 前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이 12월 6일(이하 미국시간) 텍사스주(州) 부시 기념 도서관 안장을 끝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고인은 향년 94세로, 1989년부터 93년까지 미국의 41대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43대 대통령인 아들 조지 W. 부시와 함께 미국의 두 번째 부자(父子) 대통령입니다. (처음은 2대 존 애덤스, 6대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 부자) 아버지 부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최연소(19세) 해군 조종사로 참전했고, 연방 상원의원,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공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전임 레이건 대통령 시 8년 동안 부통령을 지냈고, 대통령 재직 시절에는 냉전 종식에 힘쓰는 등 외교 면에서 치적을 이뤘습니다.

그는 취임사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충만한 이 때 미국의 국력을 선(善)을 위한 힘으로 사용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 약속대로 부시는 89년12월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지중해 몰타에서 만나 40년 넘게 지속돼온 동서 대결구도를 끝내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이는 동서독 통일(1990년)로 이어졌고, 미소 간에는 전략무기 감축 협정(1991년)이 맺어졌는가 하면, 주한미국이 보유한 전술핵 무기도 철수(1991년)시켰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의 단초가 이 때 마련된 셈입니다.

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 적자는 재선 가도에 발목을 잡았고,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을 내건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석패했습니다. 아버지 부시에 대한 대통령으로서 평가는 그렇게 후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역사학자들이 매년 매기는 대통령 순위에서 그는 지난해 전체 44명 가운데 21위에서 올해 17위로 중간 정도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속된 말로 살아서는 그저 그런 대통령이었던 부시였지만, 장례식 기간 동안 그에게 쏟아진 추모 열기는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보기에는, 45대 대통령인 트럼프 대통령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탁월한 외교관, 명예로운 신사, 하지만 허점 많고 따뜻했던 사람
[월드리포트] '상생과 품격의 정치인' 부시 장례식장에 가다…트럼프 시대의 거울5일 워싱턴 대성당으로 부시 前 대통령 장례식 취재를 갔습니다. 전기(傳記) 작가부터 아들 부시까지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4명의 추도사가 이어졌는데, 추도사를 관통한 말은 '유머 넘치고 따뜻했던 사람, 부시' 였습니다. 특히 아들 부시의 추도사가 압권이었습니다. 아들 부시는 "역사는 아버지를 탁월한 기술을 가진 외교관이자 엄청난 성취를 한 최고사령관이었으며 존엄과 명예로 직무를 수행한 신사로 기록할 것"이라고 기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슬픔 속이지만 이제는 웃자면서 고인의 생전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잠시 들어보시죠.
To us was was close to perfect, but not totally perfect. His short game was lousy. He wasn't exactly Fred Astaire on the dance floor. The man couldn't stomach vegetables, especially broccoli. And by the way he passed these genetic defects along to us. (우리에게 아버지는 완벽에 가까웠지만 완전히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골프 쇼트게임 실력은 형편없었고, 춤 실력은 프레드 아스테어-미국의 유명 무용가, 뮤지컬 배우-만큼은 안 됐죠. 아버지는 채소, 특히 브로콜리를 잘 먹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유전적 결함을 우리에게 넘겨줬습니다.)
[월드리포트] '상생과 품격의 정치인' 부시 장례식장에 가다…트럼프 시대의 거울하지만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아들 부시도 끝내 울컥 눈물을 쏟고야 말았습니다. 특히 고인이 이제는, 백혈병으로 3살 때 숨진 딸 로빈과 지난 4월 먼저 영면에 든 평생의 반려자 바버라 여사와 함께 있을 거라는 대목은 지켜본 모든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We're going to miss you. Your decency, sincerity and kind soul will stay with us forever. So through our tears let us know the blessings of knowing and loving you, a great and noble man the best father a son or daughter could have, and in our grief, let us smile knowing that Dad is hugging Robin and holding mom's hand again. (우리는 당신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당신의 품위, 성실, 그리고 친절한 영혼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물을 통해 당신을 사랑하게 하는 축복을 알게 해주십시오. 당신은 아들딸에게 최고의 아버지이자 위대하고 고귀한 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슬픔 속에서도 미소 지을 수 있게 됩니다. 아버지가 다시 로빈을 안고 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으니까요.)

● 처음으로 모인 전현직 대통령…클린턴과 끝내 외면한 트럼프
[월드리포트] '상생과 품격의 정치인' 부시 장례식장에 가다…트럼프 시대의 거울
이런 면모의 아버지 부시였기에 장례식장에는 서로 불편한 사이였던 트럼프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4명(오바마, 클린턴, 카터, 그리고 아들 부시)이 모두 참석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살아있는 전현직 대통령들이 한자리에 모인 겁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자신의 전임자로 바로 옆자리에 앉은 오바마와는 악수했지만, 대선 이후 줄곧 대립 관계인 클린턴 쪽과는 인사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역시 민주당 출신 카터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AP통신은 "대통령들 사이의 전통적인 유대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전임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트럼프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바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시쳇말로 뒤끝 작렬이라고 할까요?

반면 부시 前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을 좌절시킨 빌 클린턴 당선인에게 "당신의 성공이 미국의 성공"이라는 친필 편지를 써서 백악관 책상에 남겼습니다.
부시가 보낸 편지부시는 편지에서 "친애하는 빌. 나는 지금 집무실에 들어오면서, 4년 전 느꼈던 것과 같은 경이와 존경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도 느끼게 될 겁니다. 당신이 이곳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몇몇 전임 대통령들이 묘사했던 외로움을 결코 느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매우 힘든 날을 겪게 될 것이고, 부당하게 느껴지는 비판으로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조언자는 못 되지만, 그런 비판 때문에 용기를 잃거나 바른 길을 벗어나는 일은 없도록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고, 가족들도 이곳에서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성공이 바로 나라의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굳건히 지지하겠습니다. 행운을 빌며-조지"라고 적었습니다.

이 편지는 퇴임 후 같이 봉사활동을 하며 더욱 돈독해진 두 사람의 우정을 넘어,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전하는 백악관의 전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클린턴 前 대통령은 "사람들은 우리의 우정을 신기하게 생각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에 동의할 수는 없어도 달라도 괜찮다는 사실만큼은 동의했다"고 회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적이 아니고, 서로 다른 견해에 마음이 열려 있으며, 사실이 가치를 지니며, 우리 자녀의 미래를 위해 타협하고 진보하던, 결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한숨짓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 미국인들의 추억 "상생과 품격의 정치인"…분열의 트럼프 시대 비판

워싱턴 대성당에서의 장례식이 끝난 뒤 주민들을 만나봤습니다. 이들이 기억하는 부시 前 대통령의 모습 역시 클린턴의 기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인터뷰를 직접 들어보시죠.
데이비드 / 워싱턴D.C 주민
I think it was handling the cold war with elegance, civility and calmness. It's a shame that we're in disarray today. (부시 前 대통령이 남긴 유산은 우아하고 정중하게, 또 침착하게 냉전을 다뤘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이 안타깝습니다.)
웬디 / 워싱턴D.C 주민
I think he's respected by everyone. I don't think it really matters what party you were in and we're proud to have had a president like him. Sometimes the quiet ones are the ones that don't get the most attention but in time they will, it's a fine legacy. (저는 그가 모든 사람에게서 존경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속한 정당이 어디냐가 그를 존경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대통령을 갖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때로는 조용한 것들이 가장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훌륭한 유산이 됩니다.)

이렇게 부시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은 트럼프 식 분열과 분노에 익숙해진 미국인들에게 상생과 품격의 정치를 되새기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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