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A'와 'The'도 모르는 한국 여성이 하버드 의대 교수로 사는 법 - ②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dongcharn@sbs.co.kr

작성 2018.12.03 17:1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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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의대 교수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운이야. (껄껄껄)"


운이 있어야 하버드 의대 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만으로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녀가 유펜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친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하버드 의대 교수를 지원할 때라면 평범한 조건일 뿐이다. 그녀가 쓴 논문의 개수 108이라는 숫자 역시 하버드 의대 교수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미국 최고의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이들 병원에서 수련해온 의사들에게는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논문 편수이기 때문이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의 대학을 나와 100개 넘는 논문에 이름을 싣고 세계 최고를 자부하며 달리고 있는 의사들이 가장 원하는 곳이 바로 하버드 의대 교수 자리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그 자리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김 교수에게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김 교수의 말대로 운이라 할 수 있다(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 기회를 살려내는 것은 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김 교수는 어떤 특별한 실력을 갖추었기에 쟁쟁한 경쟁을 뚫고 하버드 의대 교수가 될 수 있었을까?

그녀가 쓴 논문을 조금만 살펴보면 그 대답을 의외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녀가 2017년 국제류마티스 저널에 발표한 '류마티스 치료 약이 심혈관계에 미치는 영향( Cardiovascular Safety of Tocilizumab Versus Tumor Necrosis Factor Inhibitors in Patients With Rheumatoid Arthritis: A Multi-Database Cohort Study)'에 관한 연구는 다른 논문에 인용이 많이 됐을 뿐만 아니라 의사들이 논문을 내려받는 횟수도 상당히 많아, 저널 책임자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을 정도였다. 이는 최고 수준의 동료 의사들에게 연구의 창의성과 실용성을 폭넓게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의사들은 논문을 쓰면서 이른바 '논문을 위한 논문'(교수로 임용되거나 교수직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의학 발전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논문을 일컫는 말)을 인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김 교수가 쓴 논문들은 실제 환자를 치료하는데 당장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동료 의사들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김 교수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벽에 부딪혔던 사안에 대해 연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환자의 고통을 공감할 줄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로봇처럼 '논문을 위한 논문'을 많이 쓰는 삶을 살아온 의사들은 제아무리 미국 명문대를 나왔더라더라도 김 교수를 이길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두고 조벽 작가(숙명여대 석좌교수)는 '인성이 실력'이라고 했다.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아이큐는 아무리 높아도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조차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사람을 향한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을 살기 좋게 하는 무엇이라도 만들어 내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그녀의 가치를 알아본 하버드 의대 교수들의 선구안에는 존경심이 절로 나오고 그래서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부러웠다. 하버드 대학이 아시아계 학생을 차별한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는 하버드 의대의 힘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김서영 교수의 하버드 의대 대학원 박사 졸업식. (왼쪽은 김 교수의 남편인 미국 소화기내과 전문의 송민수 씨)김 교수는 인터뷰를 서둘러 마치려고 했다. 9살된 쌍둥이 남매가 학교에서 끝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김 교수의 남편은 미국 소화기 내과 전문의. 한 달에 몇 번씩 야간 당직까지 서야할 만큼 바쁘다. 이럴 경우 아이 돌보는 사람을 따로 고용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김 교수 부부는 엄마, 아빠의 역할을 미래로 미루지 않았다. 자라는 게 아까울 만큼 쌍둥이가 순간순간 보여주는 모습은 소중하기도 하거니와 쌍둥이에게는 성공한 엄마, 아빠보다 같이 놀아주는 엄마, 아빠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일과 육아,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은 미국에서도 남녀 모두에게 쉽지 않다. 특히 여성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게 통념이었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 이를지 모르지만 쌍둥이 엄마 역할을 즐기는 그녀의 모습은 응원의 기도를 샘솟게 한다. 더불어 한국에서도 육아와 일, 모두 충분히 즐기는 엄마, 아빠가 넘쳐나기를 소망해본다.

김 교수는 내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갈 계획을 갖고 있다. 쌍둥이 남매에게는 첫 방문이란다. 그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내년에는 한국 의대생에게 강의를 좀 할까 해"라는 말을 꺼낸다. 그동안 무수히 쇄도했던 강의 요청에 대부분 응하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갑자기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지금은 얘기하고 싶은 게 생겼거든." '그게 무엇이냐?'는 질문이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다시 꾹 눌렀다. 인생 역작 영화를 개봉하기도 전에 미리 엿보는 것 같아서였다. 그대신 내년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있을 그녀의 강의를 반드시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1편에서 소개한 김서영 교수의 당찬 역질문에 하버드의대 류마티스내과 주임 교수는 다음과 같다.

"자네 말이 맞네. 'a와 the' 교정은 내가 맡겠네."

▶ [취재파일] 'A'와 'The'도 모르는 한국 여성이 하버드 의대 교수로 사는 법 -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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