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사라진 문건들

임찬종 기자 cjyim@sbs.co.kr

작성 2018.11.27 13:37 수정 2018.11.27 17:1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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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삭제되거나 사라진 것으로 확인된 법원행정처의 인사 관련 문건은 최소한 두 가지다. 첫 번째 문건은 2017년 초에 작성된 [물의야기 법관 인사 검토] 문건 원본이다. 두 번째 문건, 정확히 표현하자면 두 번째 문건'들'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에 반대했던 판사들 각각의 인사카드에 첨부돼 있던 [별첨자료]다. 당연하게도 삭제되거나 사라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법관 인사 자료다. 그런데 이 문건들은 왜 사라졌을까. 또 사라진 시점은 왜 하필 그때였을까. 이 글에서는 두 문건의 '실종'에 어떤 의미와 배경이 있는지 짚어 보려고 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사진=연합뉴스)● '인사 불이익 문건 없다'고 답했던 인사총괄심의관실

먼저 2017년 [물의야기 법관 인사 검토 문건] 원본을 살펴보자. 2017년 초에 작성된 이 문건의 파일은 검찰이 확보한 상태다. 검찰이 내용을 파악해 수사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사라진 것은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의 서명이 날인돼 있는 문서 원본이다. 그렇다면 컴퓨터에 파일은 남아있는데 원본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을 되돌려 2018년 5월로 가보자. 당시 법원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특별조사단을 구성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 편의상 '3차 조사단'으로 부르겠다.) 그런데 3차 조사단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를 조사하다가 의미심장한 문건을 발견했다.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2016년 3월 작성해 임 전 차장에게 보고한 [국제인권법 연구회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이었다. 이 문건에는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 특히 상고법원 추진에 반대하는 "국제인권법 연구회 핵심 회원들"에 대한 "정상화 방안" 의 하나로 "핵심회원에 불이익 부과. 인사모 등 핵심 회원에게 선발성 인사, 해외 연수 등에서 불이익 부과"가 언급돼 있었다.

3차 조사단은 "정상화 방안"으로 언급된 "인사 불이익 부과" 방안이 법관 인사 과정에서 실행됐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이에 따라 3차 조사단은 2018년 5월 11일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 "[국제인권법 연구회 대응방안] 문건에 언급된 판사들에 대해 2016년 3월부터 2017년 하반기까지의 선발성 인사, 해외연수 선발 등 인사에서 인사상 불이익에 관한 자료가 있었는지 확인한 후 그 확인 결과 및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청하였"다. 여기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점은 3차 조사단이 제출을 요구한 문건들의 작성 시기, 즉, "2016년 3월부터 2017년 하반기까지"라는 기간이다.

3일 뒤 인사총괄심의관실은 자체 확인 결과를 3차 조사단에 회신했다. 해당 기간 인사가 통상적인 원칙에 입각해 이뤄졌다는 설명과 당시 신규 보임자 수 등 몇 가지 숫자를 정리한 자료였다. 3차 조사단은 구체적 인사 자료를 다시 요구했지만 인사총괄심의관실은 "개인의 인사상 정보가 드러날 위험성이 있어 공개하기 어렵다"며 추가 제출을 거부했다. 2018년 5월 25일 3차 조사단은 "문건에 언급된 판사들에 대한 선발성 인사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부과하거나 인사권을 남용하였다고 볼 만한 자료나 정황은 찾을 수 없었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사법부 인사 문건● 검찰이 발견한 문건…조사단 제출 요구 범위에 있었다

앞서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던 '기간'을 다시 떠올려보자. 3차 조사단은 "2016년 3월부터 2017년 하반기까지" 작성된 인사 불이익 관련 자료가 있으면 제출하라고 인사총괄심의관실에 요구했다. 인사총괄심의관실은 '그런 자료 없다'고 회신했다. 하지만 검찰은 최근 이 회신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결론내렸다. 최근 인사총괄심의관실 소속 인사2심의관의 컴퓨터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특정 성향 판사들에 대한 인사 불이익 정황이 명시돼 있는 문건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에 따르면 해당 문건들은 2014년 초, 2015년 초, 2016년 초, 2017년 초에 각각 작성된 [물의야기 법관 인사 검토] 문건과 2015년 4월에 작성된 '김동진 부장판사 관련 문건'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검찰이 확보한 인사 불이익 문건이 모두 3차 조사단이 제출을 요구했던 자료는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3차 조사단이 제출을 요구한 범위는 "2016년 3월부터 2017년 하반기까지 작성된 문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이 확보한 문건 가운데 이 조건에 해당하는 자료가 딱 한 건 있다. 2017년 초에 작성된 [물의야기 법관 인사 검토] 문건이다. 2014, 2015, 2016년 [물의야기 법관 인사 검토] 문건은 모두 2016년 3월 이전에 작성됐기 때문에 3차 조사단이 제출을 요구한 범위에서 벗어난다. 김동진 부장판사 관련 문건 역시 2015년 4월에 작성됐기 때문에 제출 요구 대상이 아니었다. 인사총괄심의관실은 3차 조사단이 "2016년 3월부터 2017년 하반기까지 작성된 인사 불이익 관련 문건"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을 때, 적어도 검찰이 발견한 2017년 [물의야기 법관 인사 검토] 문건은 제출했어야 했던 것이다.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딱 그 문건만 사라졌다'는 행정처…우연의 일치일까?

그런데 법원행정처는 하필이면 바로 이 문건이 실종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8년 5월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3차 조사단에 인사 불이익 자료가 없다고 회신했던 것은, 제출해야 하는 자료에 해당하는 2017년 [물의야기 법관 인사 검토] 문건 원본이 보관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원본이 보관돼 있지 않아 당시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는 누구도 2017년 [물의야기 법관] 문건이 존재하는 것을 몰랐고, 최근 검찰이 인사2심의관실 컴퓨터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이 문건 파일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의 설명을 종합하면 결국, 3차 조사단의 제출 요구 조건에 유일하게 부합했던 문건, 다시 말해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결론을 바꿀 수도 있었던 결정적 문건만 너무나 공교롭게도 사라진 상태였다는 뜻이다. 앞서 작성된 같은 종류의 문건인 2014년, 2015년, 2016년 [물의야기 법관 인사 검토] 문건은 잘 보관돼 있다고 한다. 다만, 이 자료들은 3차 조사단이 제출을 요구한 범위에 없는 문건들이다. 조사단이 제출을 요구하지 않은 자료는 그대로 있는데, 제출을 요구했고 드러날 경우 블랙리스트 정황이 밝혀질 수도 있는 결정적 문건만 사라진 것은 정말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 것일까?

● 조사위 출범 하루 전에 삭제된 '별첨자료'

법원행정처 내부에서 공교로운 시점에 자료가 사라진 사례는 또 있다. 사법농단 의혹이 처음 폭로된 직후 처음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와 관련된 법관 인사 자료 삭제 사건이다. (※ 편의상 '1차 조사단'으로 부르겠다. )

2017년 3월 초, 이탄희 판사가 이규진 당시 양형위 상임위원에게 '법원행정처 기회조정실 컴퓨터에 판사들 뒷조사 파일이 존재한다'는 말을 들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뒤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졌다. 파문이 확산되자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은 2017년 3월 13일 이인복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1차 조사단을 구성했다. "3월 13일"이라는 시점을 이번에도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검찰은 최근 수사 과정에서 1차 조사단 출범 하루 전인 2017년 3월 12일 특정 판사들의 인사자료 일부가 일괄 삭제된 사실을 확인했다. 인사총괄심의관실은 각각의 판사에 대한 일종의 인사카드(인사자료)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특히 인사권자가 알아야할 특이 사항에 대해선 개인 인사자료에 '별첨자료' 형식으로 첨부해놓는다고 한다. 2017년 3월 12일 일괄삭제된 것은 특정 성향 판사들의 인사자료에 붙어있는 '별첨자료'였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핵심 회원 등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 반대 성향으로 분류한 판사들의 인사카드에서 관련 성향이나 사실을 별도로 기록한 '별첨자료'가 한꺼번에 삭제된 것이었다.

검찰은 당시 인사총괄심의관실에 소속돼 있던 심의관들을 조사해 자료 삭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특히 자료 삭제 시점과 1차 조사단 출범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특정 성향 판사들에 대한 별도 관리와 인사 불이익 여부가 조사 대상이었던 1차 조사단의 출범 직전에 특정 성향 판사들의 인사기록에 해당 내용이 삭제된 것을 우연의 일치로만 보기는 어렵단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1차 조사단 조사위원장이었던 이인복 전 대법관에게 조사를 위해 출석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전 대법관은 거부했다. 2018년 11월 26일 mbc 보도에 따르면 이인복 전 대법관은 "당시 (1차 조사단은) 법관 인사기록 컴퓨터는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판사 30명의 인사기록이 일괄 삭제된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다"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결정적 문건들의 '공교로운' 실종…검찰이 밝힐 수 있을까?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2017년 3월 처음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규명되지 않고 있다. 법원이 무려 3차례 진상조사를 거쳐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결론을 내놨지만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최근 검찰 수사에서는 법원행정처의 정책에 반대했던 판사들에 대한 인사 불이익 정황, 즉,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왜 법원 내부조사에서는 밝혀지지 않았던 것일까. 이 취재파일에서는 이 의문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 결정적 문건 두 가지가 매우 공교로운 시점에 사라진 점을 지적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의도가 개입된 것인지도 앞으로 검찰이 밝혀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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