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룸] 북적북적 163 : 2018년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 대하여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8.11.11 07:2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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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살인 사건 현장에 임장했으며, 3일에 한 번꼴로 야근을 했다. 케이스링크를 하려면 사건의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되었다. 그런 식으로 연쇄성의 고리들을 겨우 하나씩 찾아냈다. 흩어진 척추뼈를 순서대로 발굴하는 고생물학자처럼, 무의미해 보이는 사건 더미를 파헤치며 힘겹게 연쇄성의 고리를 이어갔다. 만 2년 동안 이런 일상을 보내고, 결국은 정남규를 잡았다."

자고 나면 흉흉한 사건이 또 발생합니다. PC방에서 자리 안 치워줬다며 한 청년이 다른 청년을 살해했고 폐지 줍는 생면부지의 여성을 20살 청년이 폭행해 살해했습니다. 이혼한 전처를 살해하고 일가족을 살해하고… 이런 일련의 사건들, 2018년 한국 사회에 집중되고 있는 건 어떤 징후일까, 많은 생각이 듭니다. 그네들은 어떤 생각으로 저런 일들을 저질렀을까요? 그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연쇄살인, 시리얼 킬러, 사이코패스, 이런 개념이 국내에 들어온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탐문과 '감'을 내세우던 경찰에 과학수사가 도입했고 '악의 마음을 읽는' 경찰도 십수 년 전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오늘 가져온 책은 10여 년 전 비로소 등장한 선진국형 범죄, 연쇄살인범을 좇아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그 유명한 영화 [살인의 추억] 이후 연쇄살인이 조명은 받았지만 정말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건 2004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실체, 범인이 잡혔기 때문입니다. 이 즈음 사회부 기자를 했던 이라면 유영철과 정남규, 그리고 강호순이라는 이름을 좀처럼 잊기 힘들 거 같고 저도 그렇습니다.

연쇄살인 같은 강력사건의 현장 대부분에 임장해 범인의 행동 패턴과 심리를 읽고 범인의 특성을 추정해 수사 방향을 제시했던 역할을 했던 게 프로파일러,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인 권일용입니다. 이 책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프로파일러로서 권일용의 전기와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권일용은 2001년 6월 초여름 조현길을 만난 그날 이후 다른 세계로 들어와 버렸다. "점심에 백반을 시켜서 조현길과 같이 먹었습니다.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합니다. '이제 이런 괴물들과 같이 밥 먹고 살아야 하는구나'"

"네 살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죽인 뒤 토막 내는 행위는, 소매치기나 식빵을 훔친 장발장의 범죄와는 완전히 다르다. 어떻게 한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이토록 완벽하게 상실할 수 있는가. 다른 영장류에는 없는 행위가 왜 유독 호모 사피엔스에게서만 관찰되는가."

"권일용이 주목한 것은 폭력성이었다. 현장은 원한 관계나 이해관계와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권일용은 범인이 현대적인 무차별 살인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방에 들어서니까 침구류가 그대로 깔려 있는데, 신문이 이만큼씩 쌓여 있었어요. 그걸 보는 순간 '이놈은 다 보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스크랩을 들춰 보니 자기 사건 보도를 다 모아둔 겁니다. 밤마다 그걸 보며 즐거워했을 겁니다. 그러고 나서 서랍을 열었더니, 제 인터뷰 기사 사진이 딱 나왔죠."

"저한테 다들 '왜 연쇄살인범 같은 괴물이 태어나는가' 하고 묻습니다. 총체적인 답은 여전히, 제가 할 능력이 없어요. 다만 분명한 점은 있습니다... 모든 것이 경제적 가치로 환산된, 성과로 판정되는 가치관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잖아요. 김대두를 낳은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겠죠. 현재도 마찬가집니다."


2018년 가을, 지금의 한국 사회를 읽기 위해 '악의 마음을 읽는' 것 혹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을 읽는 것 추천합니다.

*출판사 알마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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