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룸] 북적북적 162 : 코난 도일의 공식 후계자, 추리소설을 해부하다 - 맥파이 살인사건

권애리 기자 ailee17@sbs.co.kr

작성 2018.11.04 07:22 수정 2018.11.04 11:4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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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말할 것 같으면 훌륭한 탐정소설을 최고로 친다. 거듭되는 반전과 단서, 속임수. 그리고 막판에 이르러 모든 게 밝혀졌을 때, 진작 알아차리지 못한 나를 발로 차주고 싶어지는 동시에 느껴지는 충족감."

모든 추리소설 팬들의 마음을 한 마디로 멋지게 농축한 문장이죠? 올해 63세인 영국 작가 앤소니 호로비츠는 코난 도일 재단이 유일하게 인정한 '코난 도일의 후계자'입니다. (그래서 그가 내고 있는 셜록 홈즈 소설들은 모두 코난 도일의 작품들과 함께 공식 셜록 홈즈 시리즈에 포함됩니다.)

지난 8월 국내 출간된 '맥파이 살인사건'은 코난 도일의 후계자이자 그 본인이 추리소설 '덕후'임이 분명한 작가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바치는 헌사 같은 작품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코난 도일 같은 이 장르의 거장들에 대한 오마주와 패러디가 가득하고, 21세기 버전의 코난 도일과 셜록 홈즈가 등장합니다.

"와인을 땄다. 살사소스 뚜껑을 열었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런 다음 지금 여러분의 손에 들려 있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쯤에서 경고하고 싶은 게 있으니 그게 뭔가 하면. 이 책으로 인해 내 인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예전에 그 비슷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도 맨 처음 맡았던 아주 평범한 제2차 세계 대전 스릴러 표지에 그 문구를 떡하니 써놓았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책으로 인생이 바뀌려면 떨어지는 책에 맞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형식부터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영리한 액자소설입니다. 이 책은 추리소설 전문 출판사의 편집자 수전 라일랜드가 자신이 발굴해 낸 뒤 스타 작가가 된 앨런 콘웨이라는 작가의 새 원고를 읽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앨런 콘웨이는 '아티쿠스 퓐트'라는 탐정 시리즈로 인기를 끌어왔는데, 이제 이 시리즈를 끝내겠다며 아티쿠스 퓐트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작품을 씁니다. (셜록 홈즈를, 에르큘 포와르를 결국엔 부담스러워 하게 된 코난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가 단박에 떠오르죠?) 그 작품의 제목이 '맥파이 살인사건'입니다.

우리도 수전과 함께 '맥파이 살인사건'을 읽게 됩니다. 영국의 한 전원마을의 저택에서 일하는 가정부, 그리고 그 가정부를 고용했던 지주가 차례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가정부는 사고사처럼 보였지만, 지주가 피살이 분명한 형태로 죽게 되자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누구나 찾아가고 싶어하는 인기 탐정이지만 뇌종양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아티쿠스 퓐트가 은퇴를 앞두고 이 사건을 맡게 됩니다.

그런데 흥미진진한 결말이 막 펼쳐지려는 대목, 아티쿠스 퓐트가 "00이 00을 죽였지!" 선언하는 순간, 갑자기 원고가 끝이 납니다.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갑자기 딱, 끊겨버리는 이 이야기에 "아 뭐야 진짜!" 하고 육성으로 불평이 흘러나오더라고요. 책 속에서 책 속 책을 읽고 있는 주인공 1인칭 '나', 수전 라일랜드의 심정에 완벽하게 동화돼 버리는 거죠. 독자와 밀당하는 솜씨가 보통 아닌 작품입니다.)

"이보다 더 짜증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일요일 오후에 원고를 다 읽자마자 당장 찰스 클로버에게 연락했다. 찰스는 내 상사로서 클로버리프 북스의 사장이자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의 발행인이다. 내 전화는 곧장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됐다. <사장님.> 내가 말했다. <마지막 장이 왜 이래요? 범인을 제대로 밝히지도 않는 탐정소설을 읽으라고 주신 이유가 뭐예요? 전화 부탁드려요.> … 나는 들고 온 원고를 다시 한 번 넘기며 없어진 분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해 보았다. 마지막 장은 제목이 <절대 얘기하면 안 되는 비밀>일 것이다. 정황을 감안했을 때 딱 알맞은 제목이었다.

퓐트가 사건을 해결했다고 선언했으니 남은 게 두 장 아니면 세 장 밖에 안 될 수 있었다. 아마 그는 용의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진실을 공개한 뒤 범인을 체포하고 집에 가서 눈을 감았을 것이다. 앨런 콘웨이가 전부터 이 시리즈를 정리하고 싶어 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끝을 냈다니 기분 나쁜 깜짝 뉴스였다. 뇌종양이라니 주인공을 처치하기에 조금 식상한 방식이기는 했지만 왈가왈부할 수 없는 사인이었고, 그가 뇌종양을 선택한 이유도 그 떄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고백하건대 내가 눈물을 흘리더라도 우리 회사의 향후 매출을 걱정하는 눈물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매그너스 파이 경을 살해한 범인은 누구일까?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메모지와 펜을 꺼내서 원고를 옆에 두고 식탁에 앉았다."


추리소설 팬들이 모두 그러듯, 없어진 결말 부분을 추리해 보던 수전은 -추리소설의 클리셰들이 이 대목에서 마구마구 등장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 앨런 콘웨이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합니다. 자택의 탑에서 떨어졌다는 겁니다. 원고의 사라진 부분을 찾아야 하는 수전은 앨런 콘웨이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21세기판 코난 도일쯤 될 앨런 콘웨이는 왜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를 끝내려고 했을까요. 그리고 왜 원고도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갑자기 죽어버렸을까요. 그리고 도대체 앨런 콘웨이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의 마지막 원고, '맥파이 살인사건'의 상황과 수전 라일랜드가 추적해 가는 앨런 콘웨이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이 묘하게 얽히면서 병치되기 시작합니다.

"그에게 '맥파이 살인사건'을 읽어 본 적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콧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라면 한 권도 빠짐없이 읽었죠.> 그가 말했다. <내가 거기 나오는데 몰랐어요?> <몰랐어요.> 내가 말했다. <진짜예요. 제임스 프레이저, 머리 나쁜 금발의 조수 - 그게 나예요.> 그는 머리칼을 뒤로 홱 넘겼다. <나를 만났을 때 앨런은 '밤은 찾아들고'를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아티쿠스 퓐트는 조수가 없었죠. 혼자서 일을 했지. 그런데 나랑 사귀면서 그가 그 부분을 변경하겠다고 하더니 나를 넣었어요.>

<이름을 바꿔서 넣었군요.> <그것 말고도. 바꾼 거 많아요. 우선 나는 옥스퍼드 대학교 근처에는 얼씬도 한 적 없어요. 그를 만났을 때 내가 연기자 지망생이었던 건 맞지만. 그게 그의 깜찍한 장난이었죠. 매 작품마다 프레이저는 실업자이거나 일을 망치거나 실패하고,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대책 없이 미련하잖아요. 그런데 앨런은 그게 모든 조수의 숙명이라 그랬어요. 조수들은 탐정을 더 똑똑하게 포장하고, 진실로부터 주의를 돌리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면서. 내 캐릭터는 입만 열면 엉뚱한 소리를 해요. 독자들의 관심을 엉뚱한 쪽으로 유도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사실 프레이저가 하는 말은 뭐든 무시해도 돼요. 원래 그런 설정이니까.>"


추리소설이란 장르를 해부하고, 클리셰를 비틀고, 추리소설의 거장들을 패러디하면서도 헌사를 바치는 작품. 그리고 무엇보다, 1급 추리소설입니다. 모든 단서와 속임수들이 촘촘하고 정교하게 결말의 반전을 향해 배치된 추리소설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허투로 쓰였거나 낭비된 문장이 없습니다. 범인에 대한 단서는 소설 전체에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하게 배치돼 있으면서도 숨겨져 있고, 그래서 결말에서 뒤통수를 맞았을 때, 독자는 정말 만족스럽게 '아하!'하고 외치게 됩니다.

추리소설이란, 작가가 독자와 벌이는 일종의 게임 같은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게임의 법칙을 충실하게 지키는 '제대로 된' 추리소설이 사실 참 드문 편인데, 이 책은 그 법칙들을 모두 멋지게 요리하면서 결말의 반전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그 멋진 결말 자체가, 앤소니 호로비츠가 추리소설과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보내는 윙크 같습니다. '추리소설이란 무엇보다 멋진 거예요! 우리 모두 다 추리소설을 최고로 좋아하잖아요?' 말을 건네는 듯 합니다.

11월은 회색빛 구름 가득한 영국 하늘 아래 펼쳐지는 탐정 이야기를 읽기에 참 어울리는 달 아닐까요? '제대로 된 충족감'을 주는 새 추리소설을 늘 찾아헤매곤 하는 추리소설 팬 여러분과 이 책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출판사 '열린책들'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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