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법원은 대체 무엇을 '양심'이라고 인정해왔나?

박세용 기자 psy05@sbs.co.kr

작성 2018.11.02 16:27 수정 2018.11.05 17:3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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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간 우리 아들은 비양심적이라는 거야?"

"나도 양심 있다", "군대 간 우리 아들은 비양심적이라는 거냐",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당장 이런 볼멘소리가 나오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일반인들이 쓰는 '양심'과 판결문에서 언급된 '양심'의 뜻이 서로 다른 데서 비롯한 차이입니다. 국어사전은 '양심'을 자기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과 선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군대 간 사람은 비도덕적이라는 거냐, 군대 간 현역만 허탈하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국어사전과 달리,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양심은 일상에서 쓰는 착한 마음이나 올바른 생각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가 파멸되고 말 거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쉽게 말해 '엄청 강한 신념'처럼 들리는데, 핵심은 '구체적'이라는 언급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법원은 '양심'을 어떻게 인정해왔나 살펴보니

법원이 인정한 양심이 뭔지 살펴 보면 '구체적'이라는 말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에서 최초로 무죄 판결이 나온 게 2002년입니다. 당시 서울남부지방법원 이정렬 판사는 여호와의 증인인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양심'이 있다고 판단한 근거는, 피고인이 10살이 됐을 때 어머니를 따라 여호와의 증인을 믿게 됐다는 것, 2001년 침례를 받았다는 것, 12년간 학교를 성실하게 다녔다는 것, 고등학교 졸업 뒤 매달 10시간씩 전도활동과 봉사활동을 했다는 것, 형 또한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병역 거부를 한 사례가 있다는 것 등입니다. 판결문에 언급되지 않은 피고인의 주장도 있을 것 같습니다.

2002년 첫 무죄 판결 이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에 2건, 2007년 1건에 이어, 2015년에는 6건으로 늘었고, 2016년 7건이었는데, 중요한 건 7건 가운데 1건은 2심 판결이었습니다. 지난해 2017년에는 무죄 사건이 급증해 모두 35건에 달했는데, 판결문을 보면 법원이 인정한 '양심'은 2002년 첫 판결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2018년 대법원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일부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7명이 무죄에 '몰표'를 줬다고 보도했는데, 판결의 변화는 이미 16년 전 시작됐고, 무죄 판결이 급증한 2016년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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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의 무죄 판결문을 보면, '양심'이 있다고 판단한 근거가 이렇게 돼 있습니다. 피고인은 2004년 아버지의 권유로 여호와의 증인에서 성서 공부를 하다가 종교를 신봉하게 됨, 그해 겨울 여호와의 증인 회관이 있는 거주지로 이사, 2005년 침례를 받고 정식 신자가 되었고, 여호와의 증인 회관에서 '봉사의 종'이라는 직책을 맡아 청소를 하기도 하고, 여호와의 증인에서 만든 잡지를 지역 신자들에게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했고, 매주 다섯 번 열리는 집회에 참석, 매달 70시간의 전도 활동을 했고, 실형이 선고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 등입니다. 혹시 이런 삶의 경로를 따라하기만 하면, 병역을 면제 받는 걸로 착각하시면 안 되는 게, 대법원 판결은 병역 면제 판결이 아닙니다.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은 나중에 대체복무를 해야 합니다.
대법원 양심적 병역거부자 무죄 판결● 허위로 '양심' 주장했다간…병역법 위반 '전과자' 될 수도

그래서 핵심은 "나도 양심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현 시점에서 병역을 기피한 뒤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거나, 현역에서 빠져 대체복무제에 편입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현재 국방부가 마련하고 있는 대체복무제도는 양심을 어떻게 판단할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만, 법원이 지금까지 양심의 존재를 판단한 것을 보면, "나도 양심적 병역 거부"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로 언어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을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군 입대를 앞두고 갑자기 양심 운운하면서 병역을 기피했다가, 검찰 조사 결과 양심은 말 뿐인 것으로 의심될 경우에는 재판에 넘겨져 병역법 위반 전과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면 누가 군대를 가겠냐"고 원성이 나오는 우리 현실을 고려하면, 그 심사 절차를 적어도 2020년 제도 시행 초기에는, 우리 법원이 판단했던 것 이상으로 엄격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법원이 양심의 존재를 판단한 핵심도, 피고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구체적인 일련의 행동이었습니다. 법원은 단순히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의 종교가 그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죄 선고를 내려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근거로, 눈에 보이지 않는 양심의 존재를 판단해왔습니다.

● 법원이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에게만 특혜를 줬다?

이번 판결이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특혜 아니냐는 주장도 일부 나옵니다. 이건 사실과 다릅니다. 법원은 여호와의 증인이 병역의 의무를 거부한 것이 무죄다, 라고 판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종교는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과거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해 유죄 판결을 받은 오태양 씨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라 불교 신자였습니다. 개신교든 천주교든 자신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외 다른 종교인이 양심적 병역 거부를 했다가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적이 거의 없을 뿐입니다. 또 굳이 교리에 따른 것이 아니어도, 종교와 무관하게,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 병역 자원 유지할 수 있을까?

한편에서는 병역 자원이 줄어들 거라는 걱정도 합니다. 이와 관련한 데이터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여호와의 증인 신자 가운데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하는 사람은 1년에 500~600명가량 됩니다.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 900건이 넘는데, 이건 2016년 광주지방법원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뒤 전국적으로 재판이 잠정 중단되면서 누적된 숫자입니다. 1년에 500~600명, 어떻게 봐야 할까요.

우선 생계가 어려워서 현역을 면제받는 사람은 지난해 2017년 기준으로 1,218명입니다. 또 신체검사 결과 현역 복무 가능한 것으로 판정을 받았지만, 병역 수급 사정에 따라 공익근무요원 등으로 빠지는 보충역은 2017년 병무통계연보에 따르면 43,202명입니다. 또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지금도 현역으로 복무하지 않고 유죄 판결을 받은 뒤, 교도소에서 1년 2개월 동안 교정직 공무원들을 돕는 방식 등으로 수감 생활을 해왔습니다.

병역 자원 걱정은 사실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걱정입니다. 이렇게 '양심의 자유'를 병역을 거부하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면 누가 군대를 가겠느냐는 얘기입니다. 이건 '양심'에 대한 심사를 어떻게 하느냐, 또 대체복무 기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 그리고 대체복무로 어떤 일을 하도록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독일은 모병제 전환 뒤 대체복무제를 폐지했습니다만, 과거 대체복무제를 시행할 때는 현역과 같은 9개월을 근무하도록 했습니다. 대만의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보다 6개월이 더 길어서 총 2년6개월입니다. 대만은 대체복무의 기간이 현역보다 25% 긴 셈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 36개월● 2020년 대체복무제 시행, 유력한 복무기간과 장소는?

우리나라는 현역의 복무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병역 기피에 대한 우려도 대단히 큰 만큼, 독일이나 타이완보다 더 긴 기간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현역을 가지 않으려고 기상천외한 병역 기피 사건이 벌어져왔고, 그때마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런 특성을 반영해 대체복무 기간은 지금 현역의 2배인 36개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건 징벌적 성격이 강해서, 양심의 자유가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된다는 대법원 판결과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역의 2배를 복무 시키면 유죄 판결만 없지, 사실상 벌 아니냐는 주장입니다. 이런 목소리를 반영해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의 1.5배로 한다고 해도, 현역보다 50%가 길어집니다.

대체복무 기관으로는 소방서와 교도소가 거론되고 있습니다만, 사실 새로운 건 없습니다. 소방서에서 군 복무를 하는 의무소방대는 지금도 있는 제도이고, 교도소에서 군 복무를 하는 것도 '경비교도대'라는 제도가 운영되다가 2012년에 없어진 바 있습니다. 과거 경비교도대는 훈련소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마친 뒤 소속이 국방부에서 법무부로 바뀌어 전국의 교도소와 구치소에 배치됐습니다. 경비교도대원들은 교정시설의 수많은 문 앞에 서서 문을 지키는 근무를 하거나, 교도소 외곽 초소에 근무하거나, 수용자가 아파서 병원을 가거나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갈 때 함께 따라가 경계하는 근무를 하기도 했습니다. 복무 기간과 기관을 잘 결정해야, 향후 병역 자원 걱정을 안 할 수 있습니다.

● 타이완의 대체복무제, 16가지 사회서비스 제공

타이완 얘기를 조금 더 해드리면, 대체복무 분야가 다양합니다. 타이완의 진신민 전 대법관에 따르면, 타이완의 대체복무 분야는 총 16가지입니다. 경찰역, 소방역, 사회역, 환경보호역, 의료역, 교육서비스역, 농업서비스역, 문화서비스역, 토지측량역, 사법행정역, 경제안전역, 외교역, 체육역, 관광서비스역, 정보역, 공공행정역입니다. 지난해 2017년 기준으로 가장 많은 것이 교육역(5,871명)이고, 그 다음이 사회역(4,402명), 경찰역(3,893명), 소방역(3,843명) 등입니다. 대체복무 분야가 다양한 만큼 타이완의 사회복지와 공공서비스에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고, 대체복무를 없애면 사회의 각 계층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할 거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향후 병역 자원 걱정이 해소된다면,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2000년에 5천 명 수준으로 시작된 타이완의 대체복무 인원은 지난해 23,900명에 달했습니다. 이 가운데 종교적 사유로 대체복무 하는 인원은 지난해 66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타이완에도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있고, 이들이 주로 대체복무를 선택합니다. 대체복무의 99% 이상은 종교적 사유와 무관합니다. 타이완에서 대체복무를 하는 것은 이렇게 종교적 이유로만 가능한 것도 아니고, 여호와의 증인 신자만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사실 타이완에서 대체복무가 시작된 것은 독일과 달리 신앙의 자유와 큰 관련이 없고, 남아도는 병역 자원을 해결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습니다. 타이완 젊은이들은 한때 9만 명이 입소를 못해서, 군대를 가려고 2~3년을 기다린 적도 있고, 심지어 타이완 국방부는 추첨을 통해 병역을 면제해주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대체복무의 뿌리는 이렇게 우리나라와 전혀 다르지만, 앞서 열거한 것처럼 다양한 대체복무가 사회의 공공 서비스를 지탱하게 됐다는 것은 우리도 참고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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