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NLL 완충수역, 그곳에 해병대가 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8.11.02 09:18 수정 2018.11.02 09:57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NLL 완충수역, 그곳에 해병대가 있다
어제(1일) 국방부 출입 기자단은 서해 북방한계선 NLL 주변 완충수역 선포에 맞춰 연평도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연평도 주민 박태원 씨가 기자들에게 소신발언을 쏟아냈습니다.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때도 잘 지내다가 갑자기 (북한이) 돌변했고 그 후에도 서해 5도에는 많은 아픔들이 잔재하고 있다. 2~3년 후까지 남북 관계가 (계속) 진전을 보인다면 그때나 조금 믿음이 갈까. 아직 신뢰에 대한 회복 같은 게 저쪽(북한) 분들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박 씨는 평화수역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어 완충수역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유보적인 입장을 내놨습니다. 국방부 관계자들이 당황하는 눈치였습니다.

연평도 주민뿐 아니라 해병대, 특히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을 기억하는 전·현직 해병들에게는 완충수역 선포가 일각에서 말하는 '사실상의 불가침 협정' 같지 않습니다. 포문을 봉인하고 해상사격을 금지한들 포격전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습니다. 박 씨의 말처럼 남북 관계가 계속 진전을 보이고 상호 신뢰를 확실하게 구축하기 전까지는 불가침을 단정할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 연평도를 때린 北 전력은 122mm 방사포

연평도에는 해병대 연평부대가 주둔해 있습니다. 부대의 관측소에서 북쪽을 보면 손에 잡힐 듯한 지점에 갈도라는 섬이 떠 있습니다. 연평도에서 5km 거리인데 남쪽을 감시하는 관측소와 해안포로 무장돼 있는 유인도입니다.

갈도 북동쪽에는 장재도가 있습니다. 김정은이 쪽배를 타고 방문해 유명해진 섬입니다. 1개 중대급 부대가 76.2mm와 122mm 해안포로 무장했습니다. 갈도와 장재도의 해안포는 북쪽 사면에 있어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연평도에서 12km 떨어진 옹진반도의 개머리 해안을 따라 동굴처럼 생긴 갱도형 해안포 진지들이 카메라의 망원렌즈에 잡혔습니다. 모두 네 곳인데 두 곳은 수풀에 가려 흐릿하고, 나머지 두 곳은 뚜렷하게 형체를 드러냈습니다. 두 곳 중 한 곳은 포문을 닫았고 한 곳은 어제도 포문을 열어뒀습니다.

군 관계자는 "어제 오전 북측에 전통문을 보내 포문 폐쇄를 요청했고 북측으로부터 '상부에 보고하겠다'라는 답신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전통문에 즉각 답신을 하는 걸 보면 북측이 완충수역 조성에 비협조적이지는 않은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해병대는 포문 닫은 해안포가 아니라 122mm 방사포를 이야기했습니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를 때린 북의 화기는 122mm 방사포입니다. 우리 군의 다연장로켓과 비슷한 북한의 무기체계로 차량에 탑재된 다연장포입니다. 로켓 발사관이 30~40연장이어서 10초에 20발 이상 쏠 수 있습니다. 사거리가 20km 이상입니다. 개머리 해안으로부터 12km 떨어진 연평도는 122mm 방사포의 좋은 타깃이었습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현장을 지킨 해병대의 한 예비역 장교는 "122mm가 우르르 내려와서 비처럼 방사포를 쏘고 후방으로 달아났다", "연평도가 맞서 싸우는 적은 허술한 해안포가 아니라 '강철비' 방사포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그곳에 해병대가 있다!
[취재파일] NLL 완충수역, 그곳에 해병대가 있다연평도 현장 취재를 끝마친 어제 저녁 국방부 기자실에서 "개머리 해안에 포문 하나가 열려 있어서 어떡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 해병대 장교는 "포문이 열려 있어도 해병대가 있으니 걱정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서로 웃으며 가볍게 나눈 대화였지만 연평도의 해병대, 연평부대는 실제로 듬직했습니다.

연평도 포격전의 주역 포7중대의 후예들은 매일 K-9 자주포 사격 절차 숙달훈련을 4회 이상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다연장 로켓 천무와 스파이크 미사일의 비사격 숙달훈련도 매일 3회씩입니다.

연평부대의 한 장교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하고 즉각 반응하도록 전투 배치 훈련을 쉼 없이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연평도 포격전 때 포7중대가 그랬습니다. 북한 122mm 방사포의 선제공격으로 K-9 자주포에 불이 붙었지만 불을 끄며 몸이 기억하는 대로 응사했습니다. '사격 머신'이었고 그들의 후배들 역시 선배를 닮았습니다.

해병대의 이른바 더쎈(The Strong Special Elite Noble) 프로젝트도 연평부대에서 집중 교육되고 있었습니다. 정신전력과 전투사격, 전투체력, 생존술을 주 4~5회에 걸쳐 집중 연마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연평부대 해병들은 30kg 완전무장을 한 채 260m 구간을 뛰며 다양한 과제를 해냈습니다. 15kg짜리 탄통 2개를 들고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10회 반복하고, 60m 지그재그 코스를 왕복하며 달렸습니다. 사격도 엎드려 쏴, 쪼그려 쏴, 무릎 쏴, 서서 쏴 등 4가지 자세로 공포탄을 쏘며 실전처럼 훈련했습니다.

개머리 해안 너머 북한군 4군단 본진에는 방사포 여단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122mm 방사포만 36문입니다. 연평부대에도 K-9 자주포의 포탄이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해상사격을 안 하고 포문을 닫았지만 언제든 불붙을 수 있는 곳입니다.

완충수역 선포는 군축의 첫걸음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군축의 전 단계인 신뢰 회복 과정에 가깝습니다. 해안포 뒤편 방사포의 포구를 북쪽으로 돌리고, 더 나아가 방사포를 북쪽으로 옮기기 전까지 NLL의 위기는 진행형입니다. 그곳에서 일찍 찾아온 겨울 날씨에도 굵은 땀 흘리는 해병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페이지 최상단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