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생존의 길을 은폐에서 찾는 사법부…특별재판부를 둘러싼 오해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작성 2018.10.28 16:27 수정 2018.10.28 17:0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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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검찰보다 영리했기에 알아서 개혁을 했어요"

8년 전 쯤, 지금도 법복을 입고 있는 판사는 검찰 수사로 서초동이 시끄러웠을 때 이런 진단을 내놨다. 연례행사가 된 검찰개혁, 해밑이면 어김없이 불거지는 "정치검찰 청산" 구호에서 사법부는 늘 '관전자'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사법부는 외부 개혁 목소리가 짙어지기 직전, 알아서 움직였다. 적의에 돌린 연판장과 사법파동으로 사법부 독립성은 강화됐고, 2006년 이용훈 대법원장의 "검찰 수사 기록은 던져 버리라"는 발언으로 공판중심주의를 자리매김 시켜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했으며, 국민참여재판 도입으로 사법신뢰도를 제고했다고 자평했다.

당시 그 법관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했지만, 돌이켜보면 틀린 말이었다. 사법부가 언론 또는 외부의 비판에서 검찰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다. 말 그대로 '사법부'였기 때문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103조)'는 26자가 헌법에 새겨지는 순간, 동시에 사법부에 권위가 부여됐다.

검사에겐 없는 이 조항으로, 한 명의 법관은 하나의 법원이 됐다. 사실 관계 확정 기능을 수행하게 되면서 '수많은 가치와 주장'이 충돌하는 분쟁을 종식하는 막대한 권한도 보장받았다. 이를 존중하자는 인식이 사회에 있었기에 언론도 법원 비판엔 신중했다.

이런 권위는 사법부가 제 기능을 온전히 수행했기에 부여된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따라 부여한 것이다. 법관만 이를 모른 채 당연하게 여겼다. 법관, 즉 사법부는 헌법 103조를 근거로 공정한 재판을 하기 보단, 시민들에게 승복과 권위를 강요하는 원천으로 이용했다. 주어진 권한을 '당연한 권력'으로 여기게 되면서 재판은 권력의 밑천이 됐다. 이런 오만과 착각이 차곡차곡 쌓여 사법농단이 됐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문제 해결 능력 상실한 법원

검찰 수사로 재판거래 사실이 더디게나마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사법부에게 사법농단은 여전히 기껏해야 '사법행정권 남용'이다. 핵심 피의자였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징계 대상이 되는 행정권 남용일지 몰라도,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라고 변소한다. 사법농단 주역들이 근무했던 행정처 출신이 아닌 영장전담판사가 임종헌 전 처장을 27일 구속한 이후에도, 법원 내부에선 "여론에 밀려 영장이 발부했다"는 말이 나온다. 법원의 현 주소다.

그동안 사법부가 보여준 행태를 보면 예견된 일이다. 단순히 검찰이 밝힌 "일반사건 영장기각률 10%, 사법농단 기각률 89%"라는 수치상 문제가 아니다. 지난 6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국민적 의혹 해소를 위해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대국민담화 이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대법관 13명은 "근거 없는 재판거래 의혹"이라는 입장문을 내놨다. 사법부 수장의 방침도 통하지 않는 '법관의 독립성'을 엿볼 수 있었다면 다행일 테지만, 현실은 비상식과 오만함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과거사 배상 제한, KTX 승무원-쌍용차 정리해고, 전교조 시국선언 유죄' 등 수 많은 판결을 'VIP(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 협조 사례'로 꼽아 문건까지 만들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만날 때도 침묵했던 대법관들이었다. 심지어 현직 대법관들이 줄줄이 청와대를 찾아가 강제징용 재판을 협상할 때도 침묵했던 그들이었다. 그들이 이제야 '사법부 독립성'을 입에 올리고 있다. '강요가 아닌 자발적'으로 재판을 권력 유지의 매매 대상으로 삼았던 대법원에서 내놓을 수 있는 발언은 더더욱 아니다.

사법부의 큰 어른을 자처하는 대법관들이 이러니 일선 법관은 말할 것도 없다. 소위 행정처 출신 주류 판사 일색인 서울중앙지법에선 평소 보지 못한 사유로 압색영장을 줄줄이 기각했다.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법관이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주거의 평온과 안정을 침해할 수 있다", "해당 장소에 자료가 있을 개연성이 부족하다", "해당 자료는 재판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

판사들이 창의적인 기각 사유를 개발하는 사이,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진실을 밝힌 핵심 자료를 파기했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주거의 안정 속에서 수사 대비를 하고 있다. 불법사찰의 피해자에 대한 압색 영장까지 발부하고, 집회 참가자는 물론 파업 근로자까지 쉽사리 구속한 게 지금의 법원이었다. "압색은 자료 확보를 위한 수단이고, 소명 정도는 구속영장에 비할 바 없이 낮다"는 걸 모를 리 없는 판사들이다.

자칭 최고 법률가 집단인 법원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간단하다. "진실은 지체될수록 거듭제곱으로 왜곡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사법부 생존의 길을 '진실 규명'이 아닌 '진실 은폐'에서 찾고 있다.

● 특별재판부가 위헌?…특별재판부를 둘러싼 정치적 선동들

사법농단을 두고 법원은 '자료 확보 시점, 증거의 종류와 내용, 조사 대상 법관, 유무죄 여부' 등 수사부터 재판까지 모든 걸 지휘 총괄하는 '원님 재판'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헌법을 해체하고 있는데도, 이를 견제할 정치권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했다.

그나마 특별재판부법이 발의된 뒤, 뒤늦게 여야 4당(민주,바른미래,평화,정의)이 초당적 합의로 법통과에 나섰지만, 한국당과 일부 언론, 그리고 법원은 위헌성을 시비 걸며 정쟁의 대상쯤으로 만들고 있다. "인민재판"이라는 발언까지 하며 구태한 '기승전색깔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야 4당은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특별재판부법'을 기초로 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사법농단 의혹사건 재판을 위한 특별형사절차법'이다. '대한변협, 판사회의(현직 법관), 외부인사'에서 각각 3명씩 모여 추천위원회가 구성되고, '현직 법관' 가운데 사법농단 사건을 심리할 '영장전담-1심-2심 법관(특별재판부)'을 2배수로 추천한다.

대법원장은 '추천된 현직 법관' 가운데 사법농단 사건을 심리할 재판부를 선택 임명하는 내용이 골자다. 즉, 전문법관제인 한국에서 일반 시민이 재판권을 갖는 게 아니라, 여전히 현직 법관이 재판권을 행사한다. "인민재판"이라는 주장은 정치적 선동일 뿐이다.

'헌법 101조1항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헌법 104조3항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두 조항을 근거로 "사법부 독립성과 3권분립을 훼손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특별재판부 역시 현직 법관이라 점에서 사법권은 여전히 법원에게 있고, 이들에 대한 임명권도 대법원장에게 귀속된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낮다.

심지어 당초 법 논의 당시 '헌법 101조3항(법관의 자격은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현직 판사가 아닌 법조인으로 특별재판부를 구성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현직 판사 중 임명해봤자 '공고한 법관 카르텔, 판사동일체'로 공정한 재판이 불가능하다는 우려에서다. 특별재판부'법'으로 법관의 자격을 부여했으니 헌법상 문제도 없다는 건데, 최소한의 위헌성 논란이라도 피하고자 현직 법관으로 제한한 게 특별재판부법이다.

특별재판부를 천거하는 추천위에 외부인사가 일부 포함된 것을 두고 "독립성이 보장된 사법행정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헌법적 문제가 아니다. 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영역일 뿐이다. 사법부가 자발적으로 낸 개혁안 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법부는 지난 9월 법관으로만 구성된 법원행정처를 없애고,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가칭 '사법행정회의'를 구성해 "법관 인사 및 사무행정 등 주요 정책 결정 권한을 주겠다"며 국회에 법 개정을 요청했다.

특별재판부를 '사법행정권 침해'라고 여긴다면, 사법부 자체 개혁안은 '사법행정권 무력화 또는 해체' 수준이 되기에 특별재판부를 반대하는 세력만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특히 특별재판부법은 현직 법관을 추천하는 '추천위원회 위원'에 대한 위촉 권한까지 대법원장에게 부여하고 있다. '사법행정권 침해'라는 주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여야 사법농단 특별재판부가 도입 합의● 특검보다 '덜 특별한' 특별재판부

남는 건 '배당의 문제'다. 왜 사법농단 사건을 '무작위 배당'이 아닌 특별재판부에 맡기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헌법의 문제도, 법률의 문제도, 명령의 문제도 아닌 단지 '예규'의 영역이다. 지금까지 법원은 '법관 등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에 따라 사건을 자동 배당해왔다. 이 예규에조차 '제척 사유'를 열거해 자동 배당의 예외를 허용했다. 심지어 신영철 전 대법관의 촛불배당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법원장의 자의적 배당권한도 상당부분 인정됐다.

해당 예규만으론 사법농단 사건 배당이 어렵기에 특별재판부가 필요하다. 재판거래의 피의자, 피의자가 될 법관, 참고인, 이해 관계자, 이들과 근무연이 있는 판사들은 향후 사법농단 사건을 심리할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에 즐비해 있다. 예규만으로 이들을 제척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소한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특별재판부 도입이 시급한 이유다.

한국 사회에 익숙한 특별검사제가 있다. 99년 검찰총장과 관련된 옷로비 사건이 터지면서 도입된 이후, 12번의 특검이 있었지만 위헌성 논란은 없었다. 물론, 특검 도입 초기 "삼권분립 원칙 위배"라는 주장이 있었고, 현직 검사장이 언론에 기고까지 했다. 헌법 78조는 대통령에게 공무원 임면권을 명시하고 있고, 수사와 법무행정은 법무부장관과 대통령, 즉 행정부 고유 권한이라는 논리였다.

실제 국회는 특검의 수사범위까지 법으로 정하고, '현직 검사'가 아닌 법조인 중에 특검 후보자까지 국회가 추천한다. '현직 법관' 중에, 그것도 국회와 무관한 추천위에서 천거한 법관 중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특별재판부'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특별재판부가 위헌이라면, 특검은 헌법을 파괴하는 제도인데도, 한국당은 물론 일부 반대 세력에선 특검 주장을 거리낌 없이 한다. 심지어 무용지물이지만, '상설특검제법'도 존재하고 있고,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약 사안이기도 했다.

3권 분립은 독점적 배타적 권력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견제와 균형을 기초로 작동한다. 상호 통제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하는데 방점을 두고 움직인다. 특검 역시 범죄로부터 보호받아야할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바꿔 말해 '죄를 지으면 누구든 처벌받을 수 있다'는 공정 사회를 위해 도입됐다. "권력분립주의에 어긋난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도리어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특검'보다 덜 특별한 '특별재판부'에 대한 위헌성 시비가 소모적인 이유다.

● 수오지심(羞惡之心)조차 없는 법관들…사법부에겐 "국민은 없다"

재판거래, 행정처의 은폐, 증거 파기, 수사 방해 때도 잠잠했던 법관들이 특별재판부가 가시화 되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작 말해야 할 때 침묵했던 이들이 모래 위에 쌓은 권위마저 무너질 같으니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없다는 사실은 사법농단으로 진즉에 드러났지만, 이젠 '수오지심(羞惡之心)'조차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공개하고 있다.

사법부는 권위를 강요하는데 익숙했다. 주어진 권위를 권력으로 착각했고,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 자발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다. 공정한 재판으로 권위를 쌓은 경험이 태생적으로 부족하다보니,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이젠 노골적으로 실체 규명을 막고, 특별재판부를 반대하면서도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다. 사법부의 눈 앞 엔 국민은 없고, 오직 법관만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별재판부는 전례가 없던 사안이다. 반민특위에서 유사성을 찾긴 하지만, 구조가 다르다. 전례가 없단 이유만으로 반대를 할 수 있을까. 이는 선후 관계가 잘못된 발상이다. 전례가 없던 일이 벌어져서 특별재판부가 필요한 것이다. 또 전례 없던 사법농단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라도 필요하다.

신뢰가 필수인 법원을 살릴 길은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이 유일한데도, 법원은 은폐를 생존의 길로 착각하고 있다. 때문에 그동안 법원을 거쳐 간 이름 모를 법관들이 축적해둔 최소한의 양식마저 무너지고 있다. 사법부는 다시 회복할 수 없을까. 내게 "법원은 검찰보다 영리했다"고 말했던 그 판사는 지금 사법농단 피의자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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