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박승춘 보훈 적폐' 무혐의…진짜 부역자는 누구인가?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8.10.10 15:0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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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박승춘 보훈 적폐 무혐의…진짜 부역자는 누구인가?
작년 12월 19일 보훈처는 10명 가까운 고위직들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로 보내 내부 감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감사 결과를 담은 보도자료의 제목은 '피우진 처장, 엄정한 공직기강 확립으로 개혁 의지 천명'이었습니다.

6년 3개월 동안 보훈처를 이끌었던 박승춘 전 처장의 비위 의혹, 즉 '보훈 적폐' 청산 작업입니다. 보훈처는 '박 전 처장의 5대 비위 의혹'이라며 함께하는 나라사랑 재단 비위, 나라사랑 공제회 비위, 고엽제전우회 비위, 상이군경회 비위, 호국보훈 교육자료집 배포 등을 내걸었습니다. 보훈처의 당시 판단은 "관리·감독이 부실·축소됐으며 관리·감독 부서에 대한 견제도 전무했다"였습니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같은 날 모 방송 뉴스에 출연해서 박승춘 전 처장 측근들의 감사 방해 우려에 대해 "'그럴 수 있다'라는 걸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수사하는 데 문제가 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수사를 안 할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보훈처는 박승춘 전 처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습니다.

6개월 뒤인 지난 6월 검찰은 박 전 처장의 사건을 무혐의 처리하고, 이를 보훈처에 통보했습니다. 보훈처는 검찰 수사 의뢰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었지만, 검찰의 무혐의 통보는 적극 나서서 알리지 않았습니다. 여당의 한 의원이 검찰의 통보문을 찾아내면서 통보 넉 달 만인 지난 7일에야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보훈처의 적폐 청산은 결과도 그렇지만 그 시작부터 어설펐습니다.

● 보훈처의 적폐는 무엇일까?

보훈처는 작년 12월 19일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기자들에게 자체 감사 결과를 발표하다가 곤욕을 치렀습니다.

-기자A : (박근혜 정부에) 부역을 했다면 부역한 사람들 다 처벌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여기 오신 분(보훈처 간부)들 이 사건 어떻게 돌아갔는지 모르셨어요? 정권 바뀌고 이제 와서 찾아봤더니 이런 사건들이 벌어져서 깜짝 놀랐습니까?

-심덕섭 보훈처 차장 : 참담하고 부끄러운 심정입니다. 그 지적이 옳고요.

-기자A : 박승춘 전 처장은 반공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그게 그의 신념입니다. 박 전 처장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했고 반면 여러분(보훈처 간부)들은 양심을 팔고 행동한 거 아닙니까? 이제 와서 박 전 처장은 불의이고 자신들은 정의예요?

-심덕섭 보훈처 차장 :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기자B : 보도자료 말미에 "이번 감사 결과가 보훈처 공무원 및 보훈단체 전체의 비리가 아니라 일부 공무원과 단체 집행부의 일탈에서 초래된 문제라는 점입니다"라고 적혀 있어요. 여러분들은 모두 자유롭습니까? 보도자료 제목은 '피우진 처장, 엄정한 공직기강 확립으로 개혁의지 천명'입니다. 이게 피우진 처장의 개인 공적입니까? 이런 마인드 가지고 개혁한다는 게 심히 걱정 많이 되고요.

박승춘 전 처장의 비위 혐의를 고발하는 사람들은 박승춘 전 처장의 이른바 '손발'이었습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손발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보훈처는 박 전 처장의 비위 혐의를 지적하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박 전 처장은 재임 기간 애국을 내걸고 뒤로 검은 뱃속 채우는 단체들을 솎아내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검찰의 이번 수사 결과만 놓고 본다면 적폐로 단정하고 공표한 건 섣불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검찰 수사가 잘 됐는지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사실 보훈처는 박승춘 5대 비위 의혹을 찾는 데 한 일이 별로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5대 비위 의혹은 보훈처의 자체 감사에 앞서 국정원 개혁위의 권고사항에 고스란히 나왔던 지적입니다. 그런데도 피우진 처장의 개인 공적인 것처럼 치장했습니다. 피우진 처장은 방송에서 "제가 수사를 안 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공을 자신에게 돌리기도 했습니다.
박승춘과 피우진 전현직 보훈처장● "당신들의 지난 정부 소행을 알고 있다"

검찰이 지난 6월 박 전 처장에 대해 내린 판단은 '증거 불충분에 따른 무혐의'였습니다. 검찰은 수사결과 통보문에서 "보훈처 직원 등 참고인 10명을 조사하고 보훈처 자체 감사 결과 검토 등 충분한 수사를 거쳤다"며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현 정부의 적폐 수사로는 이례적입니다.

박승춘 전 처장이라고 하면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광화문 광장 태극기 영구 게양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고집을 꺾지 않아 불통의 아이콘으로 통했습니다. 유튜브에서 그의 강연 동영상을 여럿 찾을 수 있는데 들어보면 소위 뼈 속까지 보수 반공(反共)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숱한 논란을 불렀지만 박근혜 정부의 보훈처장으로선 안성맞춤이었을지 모릅니다.

검찰의 수사 결과 통보 이후 보훈처는 지난 8월 '위법부당행위 재발방지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현직 경찰관들을 조사관으로 데려왔고 박 전 처장과는 앙숙 관계라고 알려진 인사도 위원회에 앉혔습니다. 박 전 처장의 비위를 다시 찾아내기 위한 거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적폐를 찾아서 뿌리 뽑는 건 옳은 일입니다. 한다면 어설프게 할게 아니라 제대로 적폐청산해야 합니다. 스스로는 정의롭다며 적폐 찾는 사람들이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한 일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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