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스쿨 미투' 잇따르는데…'셀프' 성폭력 예방교육 하는 교사들

이현영 기자 leehy@sbs.co.kr

작성 2018.10.05 08:3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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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애 낳는 기계다', '내 무릎 위에 앉으면 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

학교에서 교사에게 들은 말이라며 학생들이 SNS를 통해 폭로한 내용들입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에 대해 고발하는 '스쿨 미투'는 지난 3월 서울 노원구에 있는 용화여고 졸업생들의 폭로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해 인천, 부산, 청주 등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습니다.

미투 폭로가 있었던 학교 가운데 하나인 서울 광진구의 한 중학교를 찾아갔습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니, 십여 년 전 중학생이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교복을 입은 제 얼굴 위로, 학생들의 얼굴과 몸매에 대해 적나라한 평가를 일삼던 선생님과 학생들의 성 경험에 대해 캐묻던 또 다른 선생님의 얼굴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미투 운동과 함께 올 한 해 우리 사회에는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지만, 일부 교사들의 의식은 수십 년 전과 별 다를 바 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자신들은 '가르치는 사람'이고 학생들은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틀에 박힌 이분법 아래서 성 인지·성 평등 감수성 같은 것은 자라날 틈조차 없어 보입니다.

스쿨미투● '성폭력 예방 교육' 받기는 받는데…'무늬만' 4대 폭력 예방 교육

양성평등기본법에 의거해 초, 중, 고등학교 교사라면 매년 4시간의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가정폭력 예방 교육 각 한 시간씩, 모두 4시간입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성매매에서 가정폭력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분야의 성폭력 예방 교육으로 과연 교사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현직 교사들은 그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A씨/현직 교사

"4대 폭력 예방 교육이라고 하는 걸 하는데 네 번을 다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대부분 그냥 한 시간 안에 4대 폭력 내용을 다 합쳐서 하는 경우가 아주 많이, 굉장히 많아요."


규정상 4시간의 교육 시간을 준수해야 하지만 이를 한 시간으로 뭉뚱그려 진행하거나 4대 폭력과 관련한 내용을 한 번에 '뚝딱' 해치워 버리는 겁니다.

● 학교 보건 교사가 성폭력 예방 강의…학교장이 강의하기도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초, 중, 고등학교를 통틀어 전문 강사(한국양성평등진흥원에서 전문 양성 과정을 수료한 강사)가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한 학교는 채 30%도 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가 그나마 29.3%로 가장 높고, 고등학교는 22.7%, 중학교의 경우 20.6%밖에 안 됩니다.

초, 중, 고등학교 가운데 44~47%는 전문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관련 경험이나 지식이 있는 '일반 강사'가 강의를 하도록 합니다. 이 '일반 강사' 가운데는 학교 보건 교사가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추가적인 예산이나 번거로운 강사 초빙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난해 일반 강사조차 없는 학교에선 어떻게 성폭력 예방 교육을 했을까요. 이들 학교에선 '자체 집합 교육'이 이뤄졌습니다. 지난해 20%에 달하는 전국 초, 중, 고등학교에서 보건 교사 이외의 다른 교과목 교사, 심지어는 학교장이 강의를 했습니다. 성폭력 예방 강의를 위한 사전 연수나 교육도 전혀 받지 않은 교사들이 말 그대로 '자체 교육'을 한 겁니다. 교육부 측은 전문 지식이 없는 강사라도 여성가족부에서 배포하는 표준 강의안을 이용해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 '성폭력 예방 교육 표준 강의안', 어떤 내용이길래

그렇다면 이 표준 강의안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여성가족부에서 공공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내놓은 '2018년 성폭력 예방 교육 표준 강의안'을 살펴봤습니다. 발표자료 형식으로 되어있는 자료는 다섯 개의 큰 줄기에 총 28장으로 구성돼있습니다. 28장 가운데 10장 이상이 '성폭력이란 무엇일까'와 '성폭력은 왜 발생할까'에 관한 내용입니다. 필수적이지만 다소 피상적인 내용들입니다.

강의자료의 마지막 장을 펼치니 '액션플랜'이라는 항목이 나옵니다. 이들이 제시하는 '액션플랜'은 다음과 같습니다.

'평등한 가치 기준을 가진 조직 문화 형성', '직급, 성별 불문한 존칭, 존중 언어 사용'

다른 공공기관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교사를 중심으로 상하 관계가 꽤 명확히 나뉘어 유지돼 온 기관 중 하나입니다. 평등한 조직 문화를 만들고, 직급 상관없이 존칭을 사용하는 것이 교사와 학생들에게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액션플랜'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학교, 군대 등 수많은 공공 조직의 특성에 맞춰 성폭력 예방 교재를 따로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보다 일반적인 내용에 많은 비중을 뒀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교육부 측은 학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폭력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 진짜 '액션플랜'이 필요하다
교육부, 입시제도 변화 예고교육부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학생들을 위한 성교육 표준안 등 교재를 개발하고 성 인권과 관련한 교육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 교육'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습니다. 시도 교육청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스쿨 미투' 수습에만 급급한 모습입니다.

일부 교사들은 시도 교육청에서 관련 예산을 따로 편성해 교사들이 제대로 된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성애/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장

"학교에서 시도 교육청에 요청을 하면 시도 교육청에서 강사와 예산까지 모두 학교에 보내주는 방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강사를 구하는 것도 되게 어렵거든요. 시도교육청이나 교육부에 전담부서를 만들어서 성 평등 교육, 성교육을 포함하는 전반적인 것을 지휘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합니다."


예민한 관찰을 통해 학생들이 느끼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건 교사의 역할입니다. 이를 위한 역량을 키우려면 교사들에게도 교육이 필요합니다. 충분한 시간에 걸친 양질의 교육 말입니다. 교육부와 여성가족부의 진지한 고민과 함께, 진짜 '액션플랜'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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