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룸] 북적북적 155 : 그런 책이 있습니까?…'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8.09.16 07:5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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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고 꼭 기분이 좋아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아. 때로는 한 줄 한 줄을 음미하면서 똑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거나 머리를 껴안으면서 천천히 나아가기도 하지.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시야가 탁 펼쳐지는 거란다. … 기왕 올라가려면 높은 산에 올라가거라. 아마 멋진 경치가 보일 게다."

바로 위의 글 어떠셨습니까. '이상적인 책 읽기'라는 생각도 합니다만, 저는 퇴근 후나 쉬는 날 늘어져서 책 읽는 걸 즐기다 보니 저렇게는 잘 안 됩니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고 사람도 많고 각자에게 맞는 독서법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종종 저렇게 책을 읽고 싶기도 합니다.

표지가 예뻐 기억해뒀던 책이 생각나 찾아 읽었더니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책으로 가득한 서가 앞에 한쪽엔 안경 쓴 인간 남자가, 다른 한편엔 갈색 얼룩무늬 고양이가 마주 보고 있습니다. 고양이가 있는 파란 곳은 환상의 세계, 인간이 있는 곳은 현실 세계입니다. 만화책인가도 싶었던 이 책은, 동화나 우화 느낌도 나는 이 책은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입니다. 전국의 많은 집사님들 호응을 기대합니다.

책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를 잠시 옮길까요. "나쓰카와 소스케는 의사로 일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합친 펜네임으로, 나쓰는 나쓰메 소세키, 카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스케는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소는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 '풀베개'에서 따왔다." 원래는 의사인데 취미로 소설을 써서 인기 작가가 된, 질투를 부르는 천재 작가 같은 분인 듯합니다. 관심이 갑니다.

소설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고서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던 고교생 주인공 나쓰키 린타로,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혼자됩니다. 약간 넋이 나가 학교도 가지 않고 서점에만 틀어박혀 있던 린타로에게 말을 할 줄 아는 얼룩 고양이가 나타납니다. 좀 건방집니다. 인간 주제에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건방진 걸까요.

"상관없어. 네가 성격도 어둡고 서점에만 틀어박혀 있는 데다가 특별한 장점도 없는 애송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걸 알고 부탁하는 거야." 얼룩 고양이가 너무도 담담하게 독설을 내뿜었다.

"유머 감각은 별로지만 마음만은 기특하군. 이 세상에는 이치가 통하지 않거나 부조리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 고통으로 가득 찬 그런 세계를 살아갈 때 가장 좋은 무기는 이치도 완력도 아니야. 바로 유머지." 얼룩 고양이는 고대 철학자처럼 엄숙하게 말하더니 다시 조용히 걸음을 내디뎠다.


말하는 고양이와 함께 환상적인 모험의 세계로! 뭔가 신나야 할 것 같지만 분위기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책을 구하러 가는 모험이라니. 뭔가 고리타분해 보이기도 하고. 아무튼 처음엔 몰랐지만 '가두는 자'와 '자르는 자', '팔아치우는 자' 그리고 베일에 쌓인 X 등등과 맞서 책을 구해야 합니다. 고양이는 잔소리만 할 뿐 별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난 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어. 사람들이 읽지 않는 이야기는 언젠가 사라지는 법이지. 나는 그게 너무도 안타까워 이야기가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는 것뿐이네. 줄거리를 만들고 속독법을 만들면서 말이야. 그러면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흔적이 오래 머무름과 동시에, 짧은 시간에 걸작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기대에도 부응할 수 있네. '메로스는 격노했다'. 멋진 줄거리 아닌가?"

"진리도, 윤리도, 철학도, 그런 건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다들 삶에 지쳐서 자극과 치유만을 원하고 있죠. 그런 사회에서 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책 자체가 모습을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확실히 말하죠. 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팔리는 거라고! 아무리 걸작이라도 팔리지 않으면 사라지게 됩니다."


거짓말을 잘 하려면 9할의 진실에 1할의 거짓 정도를 섞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말에 고개 끄덕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 자들 모두 일말의 진실과 진정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는 린타로의 무기는 무엇일까요. 나의 무기는 또 무엇일까요. 나는, 우리는 왜 책을 읽을까요. 그렇게까지 지켜야 할 책이 있습니까. 지켜야 할 가치라는 게 있습니까. 생각은 대개 그렇듯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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