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안전 진단은 알아서"…이런 나라에서 애 낳으라고요?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작성 2018.09.11 15:07 수정 2018.09.11 19:0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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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온갖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대한민국이라지만, 지난 금요일 새벽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잠시 귀를 의심했습니다. "출근시간 전에 전화해서 미안한데…상도동에 유치원이 무너졌으니 미안하지만 좀 일찍 나가 봐야겠다".

대충 짐을 챙겨 현장에 도착하니 벼락을 맞은 것처럼 세로로 뚝 쪼개진 유치원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건물이 내려앉아 삐뚤빼뚤해진 '유치원' 간판을 보니 순간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덜 깼던 아침잠이 한순간에 달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피로감을 잊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취재를 하면 할수록 계속 이어졌습니다.

어느덧 한 주가 바뀌고 무너져 내린 유치원 건물을 철거하는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 이면의 원인과 책임 소재는 건물 잔해처럼 사라져버려선 안 될 것이기에,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앞으로 밝혀져야 할 것들을 이번 취재파일에 기록해 두려 합니다.
상도 유치원 붕괴 사고 현장 (사진=연합뉴스)▷ [관련 기사][단독] '유치원 붕괴' 흙막이 공사 하청업체 "저렴한 공법으로 변경"?

● 운영위 회의록으로 본 복지부동…"안전 진단은 유치원이 알아서"

큰 재해가 발생하기 전에는 여러 차례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나타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은 이번 유치원 붕괴사고에서도 증명됩니다. 사고 3개월 전인 지난 5월 25일 상도유치원의 운영위원회 본회의록에는 유치원 관계자들이 붕괴 위험을 여러차례 인지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한 사실들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습니다.

유치원 옹벽 바로 옆에서 6개 동 규모의 다세대 주택 터파기 공사가 진행되면서, 유치원 관계자들과 학부모들은 '이러다 유치원 부지가 내려앉는 것 아니냐'는 '상식적인' 걱정을 하게 됐습니다. 이에 지난 3월 말, 유치원 측은 토목과 지질 분야 권위자인 서울시립대 이수곤 교수에게 안전 진단을 의뢰했습니다. 이 교수는 의견서에서 현장의 지질상태를 고려할 때 보다 면밀한 지질 조사를 한 뒤 공법을 보완해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관할 동작구청과 건설업체는 "이수곤 교수 의견서 내용을 반영했고, 절차대로 공사를 진행했다"고 밝혔지만, 유치원의 상태는 되려 더 나빠져만 갔습니다. 공사로 인한 진동과 균열이 의심된다는 학부모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습니다. 매우 위험하다는 전문가 의견서에도 '절차대로 처리했다'는 당국과 업체가 입장을 되풀이하자 유치원 측은 추가로 건물 안전진단을 받기로 계획합니다.

안전진단에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 비용은 1천여 만 원. 수백 명 아이들의 안전과 직결된 비용이었지만, 구청과 교육청, 업체는 수건돌리기 하듯 비용 떠 미루기에 들어갑니다.

"한 3개월 정도 시공사측, 구청, 교육지원청에 협조를 많이 구했는데 어제 결국은 '예산이 포괄사업비로는 적절하지 않고, 진행된다면 시공사 측에서 부담해야 되는 항목이다'라는 내용 전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제(5월 24일) 저희가 협의회를 개최하려 시공사측에 공문을 보내고 연락을 하였으나 아무 연락도 없이 아무 의사표현 없이 불참으로 협의회가 무산되었습니다." -제24회 서울상도유치원운영위원회(긴급) 본회의 회의록 中 발췌

수개월 동안 구청과 교육청, 시공사에 우려를 제기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자, 유치원은 결국 운영비 1100만 원을 들여 업체에 안전진단을 의뢰해야 했습니다.

● 자비 들여 안전점검 뒤 긴급민원 제기했지만…공문 처리만 하고 현장엔 없는 공무원

유치원의 의뢰를 받아 안전진단을 진행한 업체 '다단구조'는 지질 전문가인 시립대 이수곤 교수의 의견과 일맥상통하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유치원 옹벽 안전진단이 시급하며 이대로 공사를 계속 진행하면 위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안전진단 결과가 나올 즈음, 유치원에는 좀 더 심각한 이상 징후도 발생합니다. 사무실은 물론 유치원 복도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겁니다. 사고 전날인 9월 5일, 유치원 측은 긴급회의를 소집합니다. 유치원 관계자는 물론, 안전진단을 실시한 업체 '다단구조'의 관계자, 공사 현장 소장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상황을 관리해야할 동작구청 담당 직원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참석 요청을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동작구청 측은 "당시 담당 직원이 다른 민원을 처리하러 갔다"고 해명했는데, 유치원이 무너질 것 같다는 긴급 민원보다 더 중한 민원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늦게라도 현장에 한번쯤 와볼 수는 없었던 것인지 의문이 남습니다.

긴급회의 뒤 유치원 측은 구청에 다시 한 번 공문을 발송합니다. '건물 여러 곳에 균열이 가고, 2층 교실 아래 필로티가 기울었으니 긴급 점검을 요청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사고 당일인 다음날, 구청이 취한 조치는 공문을 건설 업체에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치원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벌어졌던 탁상공론과 복지부동 속에 사고 당일에도 120명 넘는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상도유치원 붕괴 사고 현장 (사진=연합뉴스)● 매뉴얼도 없는 부실한 지질조사…땅 밑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공법 변경

사고 5개월 전 의견서를 통해 사고 위험을 경고했던 서울시립대 이수곤 교수는 이번 사고의 원인은 부실한 지질조사라고 지적합니다. 이 교수는 "단단한 화강암이 많은 강북 지역과는 달리, 무른 편마암 계열의 지질이 많은 강남 지역에선 굴착 공사를 할 때 면밀한 지반 조사가 필수"라고 설명합니다. 땅파기 전에 구멍을 여러 개 뚫고 내시경 카메라를 넣어 지반 구성이 어떻게 돼 있는지, 단층은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 촘촘히 확인한 뒤 공사를 진행해야 지반 붕괴를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무른 토양 위에 건물을 올릴 때에도, '충분한 지질조사'는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토양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지질 조사 매뉴얼을 마련하긴 어렵겠지만, 최소한의 기준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유치원 옆 주택 공사장이 착공 전 용역을 주고 실시한 '구조계산 평가서'를 보면 지질 조사 기준의 필요성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수곤 교수를 통해 입수한 서류를 들여다보면, 해당 공사장은 토질을 직접 조사하지도 않고 대충 '문헌값'으로 붕괴 위험을 산정했으며, 지반 붕괴 예상 시나리오 또한 실측 근거 없이 '가정'으로 수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터파기 공사를 할 때부터 유치원 건물에 이상 징후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에 이수곤 교수는 사고 5개월 전 의견서에서 △시추 지질조사를 더 철저히 할 것 △현재 암반을 직접 채취해 조사할 것 △이를 통해 공사 지역의 단층을 고려해 경사면 안정성을 재검토할 것 등을 제안했습니다. 구청과 시공업체 측은 "의견서 내용을 반영해 보강 공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붕괴 현장의 단면을 본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이렇게 땅 밑에 뭐가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계획과는 달리 보다 저렴한 공법으로 흙막이 공사 방식이 바뀌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SBS가 취재한 공사 하청업체 관계자는 "원래는 CIP공법으로 흙막이를 시공하기로 돼 있었는데, 감리사가 하청업체 반대에도 공법을 '락볼트-숏크리트 공법'으로 변경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공사 비용을 아끼기 위한 조치였으며, 하청업체는 시키는 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토목 전문가인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장호면 교수는 "통상 사고 지반처럼 단단한 돌이 없고 토사가 많은 곳에서는 CIP공법으로 흙막이 공사를 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CIP 공법은 락볼트-숏크리트 공법보다 통상 시공 비용과 기간이 2배가랑 더 드는 공법입니다. 이에 장 교수도 "현장에서 비용과 공기 단축을 위해 무리하게 공법을 변경한 것은 아닌지 조사해야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공법 변경이 사고의 결정적 원인이었는지는 추후 분석이 더 필요하겠지만, 제대로 된 지질조사도 하지 않고 공법까지 변경한 것은 '안전 불감증'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관할 동작구청 관계자는 "설계자가 CIP 공법 시공이 어렵다고 해 심의 때 락볼트-숏크리트 공법을 통과해 줬다"고 밝혔습니다. 꼼꼼한 수사로 책임 소재를 가려내야 할 대목입니다.

●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세월호…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사회

건물 벽에 금이 가고, 필로티 기둥이 내려앉기 직전인 9월 6일 저녁에도 유치원 안에는 일부 아이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붕괴 시점이 조금만 일렀더라면 상상도 하기 싫은 참사가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가 유치원에 다닐 때 텔레비전을 통해 겉으론 멀쩡해 보이던 성수대교가 내려앉고, 강남 한복판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봤던 기억이 납니다.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그 때의 교훈을 아직 잊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멀쩡해 보이던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내려앉고, 학생들이 탄 여객선이 침몰해도 '안전제일'은 말 뿐. 서울 한복판에서 유치원이 또 무너지는 나라에서 구성원들에게 출산과 보육을 말할 수 있을까요? 사고 수습도 수습이지만, 붕괴의 원인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책임 규명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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