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인데 웃돈이 문젠가요…피난 H.O.T. 예매 전쟁

SBS뉴스

작성 2018.09.08 06:0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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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월, 방학을 맞은 중학생 자매는 서울 종각역 제일은행 앞에서 밤을 꼴딱 새웠다. H.O.T.의 세종문화회관 콘서트 티켓 예매를 위해서였다. 밤새 줄을 서는 두 딸을 보며 아버지는 "H.O.T.를 보면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고 꾸짖었고, 어머니는 혀를 끌끌하면서도 김밥을 배달했다.

표는 순식간에 매진됐다. 자매 손에 떨어진 표는 3층 구석자리뿐. 오빠들은 저 멀리 손톱만 한 크기로 보였지만 한 공간에 있다는 감격에 엉엉 울면서 "H.O.T. 포에버"를 외쳤다. 1985년생 직장인 오모씨가 기억하는 근 20년 전 추억이다.

오씨는 지난 7일 오후 8시 또 한 번 예매전쟁에 뛰어들었다. 10월 13일과 14일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리는 H.O.T. 콘서트를 위해서다. 이제는 돈도 있고, 학교 보충수업을 빠지지 않아도 되고, 신랑이 차로 태워다줄 수도 있는데 정작 표가 없었다. 오씨는 취소표가 풀리기만 애타게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H.O.T. 콘서트 예매 화면(사진=옥션티켓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17년 만에 열리는 H.O.T. 콘서트 표가 매진됐다. 주최 측은 회당 4만석, 총 8만석 가량을 준비했지만, 예매를 개시하자마자 모두 팔려나갔다.

예매처였던 예스24와 옥션티켓은 문의 전화 폭주에 대비해 전화상담원을 늘리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숨돌릴 틈 없이 바빴다고 한다. 예스24 관계자는 "서버 증설을 포함해 대형 콘서트 티켓 오픈을 앞두고 진행하는 사항을 모두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표를 놓친 팬들은 허탈한 표정이다.

경기도 여주에 사는 정모(33)씨는 학창 시절 토니의 팬이던 아내를 위해 '깜짝 선물'로 콘서트 티켓을 구하려 했지만, 흐른 세월만큼이나 티케팅 방법이 바뀌어 곤욕을 치렀다.

정씨는 "예전에는 은행 앞에 미리 길게 줄을 서서 입금하는 식이어서 일찍 나가면 표를 끊을 수 있었다"며 "그런데 이제는 '광클' 시대가 돼 솔직히 손에 익지 않아 어렵다. 웃돈을 주고 암표라도 구해야 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대전에 사는 김모(32)씨는 "친구들과 PC방에 집결해 예매에 도전했는데 실패했다. 대학 수강신청 이후 PC방에서 뭘 신청한 건 처음이었다"며 "모의 예매 프로그램으로 클릭 연습도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의 회사원 이모(33)씨는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암표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자동 클릭 프로그램 매크로를 써 표를 싹쓸이한 뒤 웃돈을 얹어 파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플미충'(프리미엄+벌레 충)이라는 경멸적인 호칭으로 불리면서도 영업을 이어간다. 실제로 예매가 개시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인터넷 사이트 중고나라와 티켓베이에는 'H.O.T. 표 팝니다'라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이씨는 "이번 아니면 언제 H.O.T. 완전체를 또 보겠냐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웃돈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현역 아이돌 콘서트 표에 붙는 웃돈은 보통 5만∼10만원대인데, 이번엔 희소성 때문인지 20만원도 넘게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푸념했다.

변종 암표상도 있다. 일종의 용병이다. H.O.T. 콘서트를 앞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자칭 티케팅 고수들의 영업글이 숱하게 올라왔다. "대리 취켓팅(취소표를 대신 티케팅해준다는 뜻)", "수고비 선입금, 환불 절대 안됨" 등 광고 문구로 마음이 조급해진 팬들을 홀린다.

이와 같은 온라인 암표상 문제는 1997년 인터파크가 인터넷 예매를 처음 시작한 이후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이렇다 할 해법이 없다.

오프라인 암표상은 경찰에 현장에서 적발될 경우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즉결심판을 받고 2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낸다. 이와 달리 현행법상 온라인상 거래되는 암표는 처벌할 수 없다.

H.O.T. 팬들은 오늘도 눈물을 머금고 표를 찾아 인터넷을 헤맨다.

(연합뉴스/사진=옥션티켓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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