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북 리용호 외무상이 남북외교장관회담을 거부한 이유

김수영 기자 swim@sbs.co.kr

작성 2018.08.06 10:4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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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북 리용호 외무상이 남북외교장관회담을 거부한 이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은 전통적으로 북한이 참여하는 몇 안 되는 다자회의입니다. ARF가 열릴 때마다 전 세계 언론들이 북한 대표단을 보기 위해 모여듭니다. 얼굴 자체를 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언론에 공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매년 빠지지 않고 참가했습니다.

특히 장소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싱가포르였습니다. 뭔가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북한 대표단의 입국부터 숙소 이동까지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이었습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따라다니며 대북 제재, 종전선언 관련된 질문이 쏟아졌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강경화 리용호 조우● 남북 외교장관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싱가포르에서 취재진의 가장 큰 관심은 남북, 북미 외교장관회담이었습니다. 특히 남북 외교장관은 지난 2007년 이후 공식 회담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 회의를 계기로 만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먼저 싱가포르에 도착한 강경화 장관도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고, 외교 당국자들도 희망을 갖고 보자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특히 북한의 외교 특성상 미리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만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지켜보다가 유리하다고 판단이 되면 통보하는 식이어서 오히려 끝까지 기다려보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접촉은 있었지만 공식 회담은 없었습니다. 접촉은 환영 만찬 때 강 장관이 리용호 외무상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 나눈 대화뿐입니다. 공식적인 전언은 "허심탄회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입니다. 서로의 입장과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소개해 줄 수 있냐는 질문에 강 장관은 비공개로 한 대화를 이야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다만, 리용호 외무상이 현재 외교당국이 나설 입장, 상황은 아니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따져보면 리용호 외무상은 이번 회의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한반도 정세가 정상끼리 만나 큰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이행하는 '탑 다운' 상황에서 더욱 그랬을 겁니다. 보통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 혹은 위임을 받아 움직이는 데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덜컥 강경화 장관과 폼페이오 장관을 만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미국과는 비핵화 과정과 대북 제재를 두고 여전히 이견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 달라진 분위기…북한 리용호 외무상의 역할은?

지난해만 해도 ARF 참가국들이 북핵 미사일 이슈 때문에 우려를 많이 했는데, 이를 공식적으로 규탄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리 외무상은 싱가포르에서 양자 외교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지난해는 참가국들이 대부분 리 외무상을 만나주지 않았지만, 올해는 10개가 넘는 나라들과 양자회담을 가졌습니다. 역할 자체가 오히려 그동안 소원하고 단절됐던 아세안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복원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공식 회담 없었다고 ARF 외교전 실패?

다른 국가 외교 수장들은 만났지만, 끝내 북한은 우리와 미국이 내민 손은 거부했습니다. 결국 기대했던 남북 외교장관회담과 북미외교장관회담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회의장에서 리용호 외무상은 북미가 합의한 비핵화 과정에서 동시적 단계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핵실험장도 없애고 미군 유해도 송환하는 등 성의를 보이고 있는데, 미국은 대북 제재 유지 같은 말만 한다며 불만을 드러낸 겁니다. 미국 입장에서 '제재'는 북한과 협상에 필요한 사실상 마지막 카드로 아직은 거둘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서로 다른 생각만 재확인한 채 각자의 입장을 다른 나라에게 설명하는 치열한 외교전만 펼치다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정체된 비핵화 과정을 변화시키는 작은 성과를 내길 내심 바랐습니다. 적어도 서로 마주 앉아 종전 선언의 로드맵을 구체화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럼 ARF 외교전은 실패로 끝난 걸까요? 다시 대결 구도로 돌아가는 걸까요? 하지만 이번에도 남북, 북미는 접촉하고 인사하고, 친서까지 교환했습니다. 대화 의지는 여전히 있는 겁니다. 사실 북핵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긴 호흡으로 보면 이제 비핵화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한 지도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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