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10년 전에 예고된 재판거래 : 신영철 사태의 해피엔딩

임찬종 기자 cjyim@sbs.co.kr

작성 2018.08.01 10:07 수정 2018.08.01 14:0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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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라는 조직이 법조계 밖의 사람들에게 알려진 건 최근의 일이다. 상고법원을 추진하기 위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정치권과 거래할 수 있는 대상으로 삼았다는 정황들이 속속 공개되면서, 법원행정처는 법조계에 관심 없는 사람도 아는 불명예스러운 고유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과연 법원행정처와 법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때부터 갑자기 이런 일을 시작한 것일까? 반드시 그렇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지기 10년 전, 이미 오늘의 사태를 예고하는 또 다른 사법파동이 있었다.

● 2008년 촛불 재판 개입 의혹과 신영철 법원장

2008년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광우병 촛불시위 재판에 개입한 의혹을 받았다. 당시 가장 뜨거웠던 쟁점은 광우병 촛불시위 참가자들을 검찰이 기소하면서 적용했던 야간집회 불허 조항의 위헌 여부였다. 2008년 10월 9일 광우병 촛불집회 관련 재판을 맡고 있던 서울중앙지법의 박재영 판사는 해당 조항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다음 날인 10월 10일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해당 조항이 문제가 된 구속 피고인의 보석신청을 허가하고, 또 다른 피고인에 대해서는 보석을 직권으로 허가한다. 해당 조항이 위헌으로 판단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에서 피고인을 구속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검찰과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이명박 정부가 반길 리 만무한 조치였다.

그런데 보석 허가 조치가 이뤄진 3일 뒤인 2008년 10월 13일 오전 11시경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촛불시위 관련 보석을 심사하는 한 판사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시국이 어수선할 수 있으니 피고인에 대한 보석을 신중하게 검토하라'는 취지로 말했다. 2009년 관련 의혹을 언론이 폭로한 뒤 구성된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2009년 3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전화를 두고 "재판에 내용에 관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신영철 당시 법원장은 이메일도 보냈다. 광우병 촛불시위 피고인 보석과 관련해 판사에게 전화를 건 다음날인 2008년 10월 14일에 신영철 당시 법원장은 형사단독판사들에게 이런 이메일을 보냈다.

"오늘 아침 대법원장님께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가 있어, 야간집회 위헌제청에 관한 말씀도 드렸습니다.

대법원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도 않지만 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으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1. 위헌제청을 한 판사의 소신이나 독립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2.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논쟁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법원이 일사분란한 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의하여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는 두 가지 메시지였습니다.

구속사건 등에 대하여 더 자세한 말씀도 계셨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참고로 우리법원 항소부에서는 구속사건에 대하여는 선고를 할 예정으로 있는 것 같습니다(저와 상의하여 내린 결정은 아닙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시면 제가 잘못 전달한 것으로 해 주십시요."


● "(대법원과 헌재 포함) 여러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

2008년 11월 6일에는 이런 이메일을 보냈다

"확신하기는 어려우나 야간집회 위헌 여부의 심사는 12월 5일 평의에 부쳐져 연말 전 선고를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 2월이 되면 형사단독재판부의 큰 변동이 예상되기도 합니다. 모든 부담되는 사건들은 후임자에게 넘겨주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또 우리 법원의 항소부도 위헌 여부 등에 관한 여러 고려를 할 것이기 때문에, 구속사건이든 불구속사건이든 그 사건에 적당한 절차에 따라 통상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것이 저의 소박한 생각입니다. [중략]  또, 제가 알고 있는 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법원과 헌재 포함)의 여러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기도 합니다."

2008년 11월 25일에는 해당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재 결정이 2009년 2월 공개변론 이후로 미뤄졌다면서 "피고인이 조문의 위헌 여부를 다투지 않고, 결과가 신병과도 관계없다면 통상적인 방법으로 종국하여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주십사고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11월 26일에는 부담되는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해달라면서 "머물던 자리가 아름다운 판사로 소문나기를 바란다"고 썼다.

서울중앙지법 소속 판사의 위헌심판제청에 개의치 말고 현행법대로 광우병 촛불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재판 결과를 신속하게 발표하라고 독촉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들이다. 당시 신영철 법원장이 원한대로 재판이 진행되면 대부분의 경우 이명박 정부 뜻대로 유죄 판결이 날 가능성이 컸다. 이에 대해서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2009년 3월 "합헌 위헌의 구별없이 재판 진행을 독촉하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메일을 반복적으로 보냈고, 실제 그와 같은 취지로 이해한 법관들이 일부 있었던 점 등을 종합하면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재판 진행에 관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음"이라는 결론을 발표했다.

또, 신영철 당시 법원장은 광우병 촛불시위 관련 재판 106건 중 44건은 몇몇 재판부로 범위를 제한해 배당하거나, 아예 특정 재판부를 지정해서 배당했다. 이에 대해서도 대해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배당은 배당 주관자의 임의성이 배제되는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는 배당예규의 취지를 벗어나는 사법행정권의 남용으로 볼 소지가 있음"이라고 결론내렸다.

● 재판거래 의혹의 예고편
국회 재판거래 의혹대법원 진상조사단,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내용 관여, 진행 관여....10년 전 사건에 대한 설명인데 이번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된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재판거래 의혹의 핵심인 사법행정권을 가진 고위법관이 권한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의혹이 이미 2008년에 문제가 됐던 셈이다.

실제로 2009년 출판된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패밀리가 사는 법]이란 책에서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행정처의 중앙집권적 법원 운영이 단순히 재판 절차에 대한 권고를 넘어서고 있다면서 신영철 사태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김두식 교수는 이와 관련해 판사 2명의 의견을 소개하면서 마치 지금의 논쟁구도를 예고하듯이 이런 말을 했다.

"공성원 판사가 '법관의 독립'을 강조했다면, 김승헌 부장판사는 '사법부의 독립' 쪽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외부의 압력에 맞서서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야 했던 권위주의 시대가 끝나자, 비로소 개별 법관의 독립성의 한계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선언하여 오래전부터 '법관의 독립' 쪽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할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이지요."

- 김두식,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패밀리가 사는 법], 243-244 pp, 창비, 2009.


** 김두식 교수가 언급하고 있는 공성원 판사와 김승헌 부장판사는 김 교수가 집필을 위해 인터뷰한 실존인물들의 가명이다.
  
● 신영철의 '해피엔딩'과 반복되는 역사

이런 일은 왜 반복됐을까? 해답은 10년 전 신영철 사태의 결말에 이미 제시돼있다.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었던 신영철은 언론이 광우병 촛불재판 개입의혹을 폭로하기 직전인 2009년 2월 대법관이 됐다. 그러나  의혹이 폭로되고,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재판 개입 소지와 사법행정권 남용 소지가 있다고 결론내리고, 판사회의에서 500명 가까운 판사들이 재판권 침해라고 결론내렸으며,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신 대법관에 대한 경고와 주의를 촉구했지만, 신영철은 끝내 대법관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 사퇴 여부에 관심이 쏠렸던 2009년 5월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언론과 여론의 관심은 크게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2008년 당시 신영철 중앙지방법원장의 행위가 법원행정처 또는 대법원장과 교감 속에 이뤄졌는지 여부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신영철 대법관이 이메일에 쓴 "대법원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도 않지만 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으신 것으로 들었습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당시 이명박 정부가 희망하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큰 방향으로 재판 절차를 이끌기 위해 개입한 구체적인 동기도 끝내 규명되지 않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흘러간 역사가 되어버렸다.

2015년 2월, 6년 임기를 모두 채운 신영철 대법관은 양승태 대법원장 앞에서 이런 퇴임사를 남기고 법원을 떠났다. 그에게는 해피엔딩이었다.

"저는 앞으로 법원 밖에서,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 속에 법과 질서의 옹호자로서 또 국민의 인권신장의 최후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데 필요하다면 저의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습니다."

● 그들은 '신영철'을 기억하는가?

재판거래 의혹이 근거 없다고 발표한 "대법관 일동"과 재판거래 의혹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발표했던 판사들은 신영철 대법관의 해피엔딩을 기억하는 것일까?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당한 검찰이 방법을 찾지 못하고, 국민들 관심이 또 다른 큰 사건으로 돌아가길 기다리는 것일까? 여론의 비난은 한때뿐이고 법원의 질서는 영속된다는 교훈을 10년 전 그 사태에서 배운 것일까?

분명한 것은 10년 전 그때처럼 이번 재판거래 의혹을 진상 규명 없이 희미한 역사의 그림자로 흘려 버린 다면, 재판거래의 그림자는 더 크고 비극적인 형태로 다시 나타날 것이란 사실이다.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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