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세영, 기적을 부르는 '신기'의 아이콘…"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

김영성 기자 yskim@sbs.co.kr

작성 2018.07.11 08:04 수정 2018.07.11 10:12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김세영, 기적을 부르는 신기의 아이콘…"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
● 장면 1
2013년 4월 KLPGA 투어 롯데마트여자오픈 최종라운드. 15번 홀까지 선두 이정은에 2타 뒤처져 있다가 17번 홀 버디, 18번 홀 이글로 극적인 역전 우승. (KLPGA 투어 데뷔 첫 우승)

● 장면 2
2013년 9월 KLPGA 투어 한화금융클래식 최종라운드. 선두 유소연에 3타 뒤처져 있다가 17번 홀에서 기적 같은 홀인원을 기록하며 연장 끝에 역전 우승.

● 장면 3
2015년 2월 미국 LPGA 투어 퓨어 실크 바하마 클래식 최종라운드. 16번 홀 덤불에서 그림 같은 로브 샷으로 파를 세이브 한 뒤 연장 끝에 역전 우승. (LPGA 데뷔 첫 승)

● 장면 4
2015년 4월 미국 LPGA 투어 롯데챔피언십 최종라운드. 18번 홀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리고도 극적인 '칩인 파'로 승부를 연장전으로 몰고 간 뒤 연장 첫 홀에서 기적 같은 '샷 이글'로 박인비를 꺾고 우승.

● 장면 5
2018년 7월 LPGA 투어 손베리 크리크 클래식. 4라운드 합계 31언더파로 우승…LPGA 투어 역대 72홀 최다 언더파· 최저타 신기록 달성.

'빨간 바지의 마법사' 김세영이 프로 데뷔 후 지금까지 만들어 낸 드라마틱한 우승 장면들입니다. 한 번 터지면 무섭게 몰아치는 능력 때문에 주변 동료들부터 '신기(神氣)'가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 김세영은 이번 손베리 크리크 클래식에서도 마치 마법을 부리듯이 31언더파라는 경이적인 대기록을 만들어냈습니다. 우승 당일 밤늦게까지 전화기에 불이 났다는 그녀는 기자와 전화가 연결되자 특유의 '유쾌한 수다'로 우승 뒷얘기를 시작했습니다.
LPGA 김세영"제가 원래 1년에 한두 번씩은 '크레이지(crazy)~' 확 미쳐서 몰아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는 4일 동안 계속 미쳐 있었어요. '작두'를 탄 거죠(웃음). 완전히 경기에 몰입이 됐는데 제 어릴 때 우상이었던 소렌스탐을 넘어서 신기록을 달성했다니 정말 기분이 '크레이지' 하네요(웃음)."

여자골프의 '전설' 아니카 소렌스탐도 SNS를 통해 김세영의 신기록 달성에 축하 메시지를 전했고,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는 '세영 언니가 코스를 갈기갈기 찢어놨다'는 표현을 쓸 만큼 김세영의 이번 우승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거잖아요. 제가 소렌스탐의 최다언더파 기록을 17년 만에 깼는데, 나중에 또 누군가가 제 기록을 깨겠죠. 아, 그 기록도 제가 깨면 좋겠네요. 하하."

국내 무대 KLPGA 투어에서 올린 5승을 모두 역전 우승으로 장식한 김세영은 2015년 미국에 진출해 LPGA 투어 데뷔 첫해부터 3승을 올리며 신인왕을 차지했고 이후 매년 우승 기록을 이어가며 통산 7승을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14개월 만에 7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까지 남모르는 마음고생이 있었습니다.

"6월에 마음고생이 가장 심했어요. US여자오픈, 숍라이트, KPMG 챔피언십 때 샷감이 아주 좋았는데 잘 나가다가 막판에 고꾸라지고 뭔가 2%가 부족한 느낌이 오더라고요. 이게 뭘까? 멘탈의 문제일까? 하도 답답해서 유튜브에 '멘탈을 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검색어로 쳐 봤어요. 그랬더니 많은 처방 글들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거기서 제가 가장 공감했던 말들은 딱 세 3개였어요. '겸손해라, 자신을 사랑하라, 항상 감사해라!'"

"제가 오죽 답답했으면 유튜브에서 이런 검색까지 했겠어요? 그만큼 절박했던 거죠. 이 단어들만 생각하고 공을 쳤어요. 그랬더니 저도 모르게 제 안에서 미묘한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예전엔 미스 샷이 나오면 속으로 '너 또 왜 이러니? 세계 최고 또라이 아냐?' 라고 허벅지를 꼬집고 때리고 자책했었는데 어느새 '괜찮아, 다음 샷은 잘 될 거야. 하던 대로만 해.' 이렇게 긍정의 마인드로 변해있는 거예요."

마음고생을 딛고 신기록 달성과 함께 자신감을 한껏 충전한 김세영은 올 시즌 목표를 묻자, '4승과 메이저 우승'이라고 밝혔습니다.

"제가 2015년 루키 때 3승 한 게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인데 그걸 또 넘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메이저 우승을 아직 못 해봤는데 브리티시 여자오픈이나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꼭 우승컵에 키스하고 싶어요."

김세영은 자신의 우승과 같은 날 PGA 투어에서 우승한 재미교포 케빈 나에게도 축하 메시지를 전하며 한국 남자 선수들의 선전도 기원했습니다.

"한국인의 피에는 정말 '전사'의 DNA가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스트롱' 한 것 같아요. 케빈 나 축하드리고요, 김민휘 선수는 제 이웃집(댈러스)에 사는 친구인데 같은 연습장 다니거든요? 김민휘 선수도 준우승까지 해봤으니 조만간 꼭 우승하면 좋겠어요. 아, 김시우 선수도 집 가까워요. 김시우도 화이팅!"
LPGA 김세영김세영은 럭비 선수였던 할아버지, 태권도 선수였던 아버지의 '통뼈'를 물려받아 어린 시절부터 힘에서는 남에게 뒤지지 않았습니다. 태권도 공인 3단인 그녀는 탄탄한 하체에서 뿜어내는 장타가 일품입니다. 이번 대회 드라이버 샷 평균 비거리는 275야드였습니다.

문득 김세영의 아버지 김정일 씨가 3년 전 기자에게 들려준 딸의 어린 시절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세영이가 태어나고 100일쯤 됐을 때 세영 엄마가 세영이를 안고 길에 서 있는데 지나던 스님이 걸음을 멈추고 아기인 세영이 얼굴을 뚫어지게 보더래요. 그러면서 '이놈이 고추만 달고 태어났으면 세상을 호령할 녀석인데… 수천만 명 중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장사가 될 녀석입니다'라고 말씀하셨대요. 그리고 엉덩이를 까 보더니 튀어나온 꼬리뼈를 보고는 '잘 키우세요.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릴 아이입니다'라고 귀띔해주고 가셨답니다."

▶ [취재파일] 김세영 아버지가 털어놓은 우승 뒷 얘기 "세영이는 세상을 호령할 장사"

31언더파라는 전인미답의 대기록 달성으로 세상에 이름을 크게 떨친 김세영은 상승세를 이어 이제 '메이저' 대회를 정조준합니다. 그리고 메이저 우승 사냥에 앞서 이번 주 열리는 마라톤 클래식에서 상승세를 이어 2주 연속 우승에 도전합니다. 
페이지 최상단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