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룸] 북적북적 145 : '가르강튀아 풍'의 흥청망청 지성여행! - 다치바나 다카시 '사색기행'

권애리 기자 ailee17@sbs.co.kr

작성 2018.07.08 09:05 수정 2018.07.08 13:3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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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패턴화는 여행의 자살이다. 여행의 본질은 발견에 있다. 일상성이라는 패턴을 벗어났을 때 내가 무엇을 발견하는지, 뭔가 전혀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데 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겸 문필가, 다치바나 다카시. 그의 평생에 걸쳐서 중요했던 몇몇 여행들과 출장취재로부터 탄생한 밀도높은 기록들을 모은 '사색기행'입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에게는 늘 '현대 일본 지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데, 제 마음 속에서 혼자 붙여준 별명은 살짝 다릅니다.

고고한 엘리트 느낌이 먼저 풍기는 '거장'보다는 오늘도 어딘가 동굴에서 나와 知를 찾아 떠나는 '지의 사냥꾼' 같은 느낌이랄까요. 커다란 동물-영양덩어리 지성!-을 사냥해다가 동굴에 돌아와 척 내려놔서 식솔들 먹으라고 하고 자기는 또 휙 떠나는... 아주 본능적이면서도 쿨한 사냥꾼 같은 사람.

이런 거야말로 편리하게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인 건 알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입니다. 지식, 미지의 것, 새로운 것, 그리고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어마어마한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찾아나서고, 파헤치고, 알아보고,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무엇보다 중심에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심지어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냉정함, 저널리스트의 태도를 한순간도 잃지 않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온몸으로 부딪쳐 흡수한 지식을 자기 위장으로 통째로 소화해 참으로 냉정하고 참신한 통찰에 이르는데, 그 과정에 묘하게 담백한 유머감각, 순수한 인간의 냄새가 한 소끔씩 들어가 있어요.

그런 다치바나 다카시의 성향과 그가 일본의 무인도부터 팔레스타인, 유럽, 미국 등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남긴 이 여행기, 취재기는 어쩌면 가장 찰떡궁합의 글 종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무엇보다도 '책'이라는 매체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이 여행기가 우리나라에서 무려 절판!되어.... 재출간을 바라면서 북적북적 145번째 책으로 골랐습니다.

"그 대성당의 거대하고 성스러운 공간에 앉아 있으면, 인간은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기 존재의 왜소함을 깨닫게 될 것 같다.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오르간 소리가 그렇게 인간을 압도하는 듯한 울림으로 가득차는 음향공간도 드물 거라고 본다.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는 거기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그곳이 엘 에스코리알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토카타와 푸가'가 아니었다면, 그토록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러나오지는 않았으리라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역시 이 세상에는 가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직접 그 공간에 몸을 두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그런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는 바로 그 순간에 내 육체를 그 공간에 두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 최근에는 정보화시대니 IT시대니 하면서, 이제는 리얼한 현실을 접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정보전달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 모양인데,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몇 군데 몇 페이지씩 발췌해 읽는 발췌낭독으로는 그가 내리는 여러 결론들의 과정에 대해서 충분히 전달할 수가 없어 이번엔 낭독할 부분으로 선택하지 못했지만, 오늘날 국제 테러리스트들의 필연적 탄생과 그 양태에 대해 날카롭게 예견하는 1972년 팔레스타인 취재기나 뉴욕이 세계 제1의 도시였던 1980년대, 그 도시의 흥, 성 뿐만 아니라 망, 쇠의 그림자를 또한 예견하는 뉴욕 취재기는 참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뉴욕의 쓰레기 하치장을 찾아간 파트는 조금 읽습니다.)

이번에 주로 낭독한 여행기는 다카시 본인이 '가르강튀아 풍의 폭음폭식 여행'이라고 이름붙인 프랑스 와인산지 취재깁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다카시가 '가르강튀아'를 언급한 게 정말 재밌었습니다. 다카시와 가르강튀아가 굉장히 닮은 데가 있다고 느꼈거든요.

가르강튀아는 16세기 프랑스 소설가 라블레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식가 뚱뚱보 거인입니다. 미친 듯이 먹고 마시고, 세상의 식도락을 탐닉하는 이 캐릭터는 쾌락과 경험을 끝간 데까지 추구하는호쾌하고 거대한 인물,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 역시, 어쩌면 게걸스러울 만큼 중독적으로, 호쾌하게, 스스로와 세상의 호기심을 먹여살려온 현대판 '지성의 가르강튀아'가 아닐까요. 부디 재출간돼 좀더 많은 분들이 손쉽게 구해 읽으실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낭독 중간에 감사한 댓글 남겨주신 분들, 그리고 너무 예쁜 손편지와 함께 본인의 에세이를 보내주신 분께 드리는 감사의 말씀을 좀 섞었습니다. 그분들과 들어주시는 분들 모두, 이번주 '영혼의 가르강튀아'가 된 것 같은 풍성하고 풍부한 나날들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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