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주민이 쫓겨나는 도시재생의 그늘

소음, 오물, 사생활 침해에 "관광객 오지 마라"

고철종 기자 sbskcj@sbs.co.kr

작성 2018.06.15 08:2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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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주민이 쫓겨나는 도시재생의 그늘
관광의 대상이 바뀌고 있다. 유적지나 유명 건물, 대형 레저시설 등을 둘러보던 데서 벗어나 여행지의 작은 일상이 관광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재미있는 풍경이나 스토리가 방송 혹은 SNS를 통해 알려지고 그곳의 일상을 즐기려고 사람들이 몰리면서 작은 골목이나 낙후된 마을이 관광 명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를 더 가속시키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사업이다. 기존 건물을 모두 허물고 새 건물을 세우는 막무가내식 재개발이 경제적 이유로 혹은 도시 경관상의 이유로 제동이 걸리면서, 대신 재생의 개념을 도입해 기존의 전통을 살리면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것인데, 현 정부는 5년간 5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낙후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를 창출해 해당 지역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목적을 가진 도시재생이 모두의 환영을 받을 것 같은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당장 서울 시내만 본다면, 요즘 언론에 주민들의 불편함이 부쩍 부각되고 있는 종로구의 북촌 한옥마을, 벽화로 유명한 이화마을, 새롭게 재단장 하려는 낙원상가 등이 도시재생의 숨겨진 그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미 유명해져 버린 한옥마을이나 이화마을에선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일상이 파괴됐다며 주민들이 연일 시위에 나서고 있다. 한적하던 골목길이 관광객의 소음과 쓰레기에 신음하고, 수시로 드나드는 외지인들 때문에 사생활 침해도 극에 달한다며 주민들은 관계당국에 대책을 호소한다.
 

설상가상으로 관광객이 몰리면서 주변 임대료가 크게 오르자 미용실이나 세탁소, 목욕탕, 반찬가게 같은 생활편의시설도 거의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주거여건이 크게 나빠지면서 주변 인구는 해마다 줄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이 있는 계동의 인구는 지난 2014년 1천398명에서, 2016년 1천234명, 지난해는 1천196명으로 줄었다. 벽화가 그려진 이화마을 역시 2014년 8천814명에서 2016년 8천436명, 지난해는 8천249명으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인다. 반면, 관광객 수는 해마다 급증세인데, 계동의 경우 하루 평균 7천 명 정도로 주민수의 6배를 넘을 정도이다.
 

주민과 관광객의 충돌뿐만 아니라 더 심각한 건, 주민들 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이 심화돼 공동체의 붕괴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관광객을 늘리는 재생사업을 반기는 반면, 조용한 주거권을 중시하는 주민들은 극구 반대 입장을 보이면서 맞서고 있다.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도시재생 사업, 그런데 그 활력의 수혜자가 돼야 할 주민들은 삶이 피폐해졌다며 마을을 떠나고, 다른 입장차 때문에 서로 다투면서 수 십 년 이웃이 원수가 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겉만 그럴듯하고 속은 갈등으로 곪아가는 도시재생의 그늘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일까.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도시재생이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통영의 동피랑 마을에서 작은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마을이 관광시설이 아닌, 사람이 실제로 사는 주거지역임을 관광객들에게 사전에 충분히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 더불어 주민들과의 충돌이 발생하지 않게끔 관광객의 활동 시간과 동선을 차별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관광객 때문에 임대료가 크게 올라 주민들을 위한 시설들이 사라지는 것도 막아야 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경우처럼 도시재생 권역에 있는 미용실이나 세탁소, 철물점 같은 생활편의시설을 행정적으로 보호해주는 정책이 시급하다.

주민이 행복하지 않은 도시재생사업은 재생이 아닌 마구잡이 개발일 뿐이다. 낙후된 지역을 허물어 없앤 그 간의 수많은 개발이 주민들의 눈물을 희생으로 삼아왔다. 전통과 포용, 조화를 표방하는 도시재생사업이 성공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주민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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