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부를 때는 국가의 아들, 아플 때는 당신의 아들?

박하정 기자 parkhj@sbs.co.kr

작성 2018.06.08 11:2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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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현충일에 어머니는 새벽부터 대전 현충원으로 향했다. 누군가를 만나려고 약속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곳에 올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었다. 거리에 현수막을 걸어놓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목청을 높였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하니 관심을 가져 달라고 외치던 어머니는 옆을 지나던 군인들에게도 목소리를 높였다고 했다. 아들을 보낸 엄마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냐,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도 없느냐, 당신들이 나서서 바뀌도록 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어머니는 왜 아들을 떠나보내고 그 자리에 서야 했던 걸까.

● "군병원 가고 있다" 3일 만에 떠난 아들

벌써 2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그 날을 잊지 못한다. 2016년 3월 22일 아침 9시 10분쯤, 어머니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입대한 지 7개월 정도 지난 둘째 아들 홍정기 일병이 몸이 아파 부대에서 군 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전화였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우리(부모)가 가야 하느냐’고 묻자 ‘일단 가서 진단을 받아보고 이야기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화를 바꿔달라고 해 아들과 잠깐 통화를 했다. 한 시간쯤 지난 뒤엔 아버지가 또 전화를 받게 됐다. ‘아무래도 가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홍 일병의 부모님은 아들이 간다는 군 병원으로 출발했다. 군 병원 검사 결과 백혈병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나왔다.

뇌 내 출혈도 의심됐지만 군 병원은 수용이 제한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홍 일병은 민간 대학병원으로 또 다시 옮겨졌다. 그곳에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민간 병원에 도착한 지 3일 만인 24일 밤, 결국 세상을 떠났다. 홍 일병 퇴원요약지에 적힌 주 진단은 급성뇌출혈, 기타진단은 급성골수성백혈병과 급성호흡부전증. 군에서 갑작스런 전화를 받은 지 3일 만에 어머니는 아들을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내게 된 것이다. 평소에는 물론이고 입대 뒤 체력검정에서도 특급과 1급을 받을 정도로 건강하던 아들이 왜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 어머니는 궁금했다.

 홍 일병 사망 뒤 군 검찰은 <사망사건 기록> 그리고 별지인 <사망사건 조사결과>를 작성했다. 홍 일병이 며칠 사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이 문서가 도출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 건 사망사건은 범죄로 인하여 발생하지 않았음이 명백하게 밝혀졌으므로 이상 사망자의 사망원인에 대한 조사를 종결한다.” 그렇게 ‘종결’된 조사 기록이 밝히고 있는, 홍 일병이 겪은 순간순간들은 이러했다.


● 이유 없이 멍들고 구토하는데 군 병원도 못 가

2016년 3월 13일, 홍 일병은 저녁 7시 불침번 근무신고를 마치고 동료 일병에게 등을 두드려 달라고 하며 화장실에서 구토를 했다. 여러 차례 화장실을 다녀왔고 그날 밤 10시, 사단 의무대로 후송됐다. 군의관 A는 급성 두드러기 약을 3일분 처방해 줬다. 생활관으로 돌아온 홍 일병은 주변에 ‘부딪힌 적도 없는데 멍이 생긴다’며 등과 어깨 쪽에 생긴 멍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틀 뒤 열린 사단 전면전 작계시행훈련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이유 없는 두통, 무기력증,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증상을 겪었다. 3월 20일에도 홍 일병은 행정보급관에게 멍이 든다며 몸에 든 멍을 보여줬고 두통이 심해져 저녁도 먹지 못했다.

3월 21일 오전 10시 반, 홍 일병은 연대 의무중대에서 군의관 A에게 또 진료를 받았다. 군의관 A는 증상을 본 뒤 혈소판 감소 질환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응급한 상황은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군 병원에 가서 혈액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다음 날로 예약을 해 줬다. 그리고는 감기약을 처방해주고 홍 일병을 돌려보냈다. 그날 오후 홍 일병은 행보관과 함께 부대 근처 민간 의원도 찾았다. 민간 의원 의사가 내린 진단은 “혈액암 가능성이 있어 즉각적인 혈액내과 내원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홍 일병과 행보관은 그대로 부대로 복귀했다. 오전에 군의관 A가 예약해 준 군 병원 외진이 다음 날로 이미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이날(3월 21일) 밤부터 홍 일병은 다시 심한 구토와 두통에 시달렸다. 잠에 들지 못해 책상에 엎드려 있다 다시 연대 의무중대에 갔고 연대 의무중대에서는 외진을 가야 한다며 사단 의무대로 홍 일병을 데리고 갔다. 가는 도중에도 홍 일병은 계속 구토를 했다. 사단 의무대에 있다 홍 일병을 진찰한 군의관 B도 혈액학적인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응급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군 병원으로 응급후송은 실시하지 않았다. 편두통 약이 처방됐다. 사단 의무대 병실이 가득 차 홍 일병을 수용할 수 없어서, 홍 일병은 다시 연대 의무중대로 돌아가야 했다. 연대 의무중대로 돌아온 시각은 이미 다음날(3월 22일)이 된 새벽 2시 40분. 구토를 하고 침상에서 바닥으로 쓰러지고 책상에 엎드려 있길 반복하며 날이 밝을 때까지, 홍 일병은 그대로 방치됐다. 

홍 일병 어머니

“저렇게 아프다고 하는 애를 그냥 팽개쳐서…. 그 9시간을 애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 생각하면요.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아요. 그 고통의 시간을 애가 버틴 걸 생각을 하면.”


● 제대로 진단했더라면, 빨리 후송했더라면

 3월 22일 아침 9시가 돼서야 홍 일병은 군 병원으로 가는 차에 오를 수 있었다. 이미 누군가 부축해야 걸을 수 있는 상태였다. 홍 일병이 다른 외진 환자 22명과 함께 군 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던 이때가, 바로 어머니가 아들이 아파 군 병원으로 간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였다. 처음 구토 증상을 호소했던 것이 3월 13일. 군 병원으로 후송된 건 3월 22일. 홍 일병은 9일이 지나서야 군 병원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군 병원에 도착해서는 검사를 통해 의심되는 증상이 어떤 것인지 확인이 됐지만 수용이 제한돼 곧바로 조치를 취할 수도 없었다. 민간 병원에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사망사건 조사결과>가 밝히고 있는 대로 “소뇌 출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늦게 와 이미 뇌압이 너무 높아 소뇌 쪽 시술은 하지 못하고 대뇌 쪽 시술을 통하여 뇌압을 다소 낮추는 정도의 시술밖에 하지 못한 채로 같은 날 15:50경 중환자 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홍 일병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말했다. 3월 22일, 군 병원에서 민간 병원에 조금이라도 빠르게 후송을 했더라면. 외진을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과 함께가 아니라 별도의 구급차로 사단 의무대에서 군 병원으로 조금이라도 빨리 후송을 했더라면. 구토와 두통에 시달리며 혼자 연대 의무중대에서 괴로워하던 아들을 누군가 밤중에 혹은 새벽녘에 바로 군 병원에 후송하도록 지시했더라면. 사단 군의관 B가 아들을 연대 의무중대로 돌려보낼 것이 아니라 곧바로 군 병원 후송을 지시했더라면. 부대 근처 민간 의원 의사가 큰 병원에 가 혈액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을 때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바로 병원에 갔더라면. 연대 군의관 A가 다음날 군 병원 예약을 잡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사단 의무대로 후송해 군 병원에 한시라도 빨리 보낼 수 있도록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아들을 보내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어머니의 숱한 가정들은 의문으로 이어졌다. 왜 바로 후송을 할 수 없었나. 왜 군의관들은 바로 응급 상황임을 판단하지 못했나. 왜 아들은 혼자 의무중대에 방치돼야 했나. 왜 민간 의원의 진단을 받고도 바로 복귀했나. 군의 의료 체계가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어머니가 하게 된 이유다.

홍 일병 어머니

“그 군의관으로 온 아이를 보니까요. 우리 아들 같은 아이예요. 그러면 제가 지금 그 군의관을 원망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그거 아니잖아요. (중략) 새파랗고 젊은 이런 금쪽같은 아이들을 맡기는데 국방부에서 그런 의료를 하는 의사들을 제대로 된 의학지식이 있는 사람들로 배치하거나 그렇게 배치 못하면 어떤 병원으로 빨리 뺄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야 하는데… 국방부의 잘못이지 그 아이(군의관)가 원망되지는 않더라고요, 저는.”


● "살릴 기회 3번 있었다"…그런데 군의관만 징계
군 의료체계군 의료 체계 속에서 홍 일병이 겪은 순간순간이 적절했을까. 당시로서는 최선이었을까. 군 검찰의 조사 내용과 홍 일병의 의료 기록을 토대로 파악해 보기로 했다. 취재진은 법의학자인 유성호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를 찾았다. 자료를 보여주고 의견을 물었다. ‘3번 살릴 기회가 있었지만 군 병원이 놓쳤다’는 게 유 교수의 판단이었다.

유성호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의사라면 이 정도의 꽤 오랫동안의 두통, 창백함, 여러 전신의 출혈, 그러면 굉장히 두려운 진단을 먼저 떠올리는 게 일반적인데 왜 (상급 병원에) 보내지 않았을까?”


먼저 3월 13일, 홍 일병이 화장실에서 구토를 한 이후 여러 차례 화장실을 다녀왔고 사단 의무대를 찾았을 때 군의관 A는 급성 두드러기 약을 처방했다. 그리고 3월 21일 홍 일병이 전신에 나타난 멍과 혈종을 보이며 다시 군의관 A를 만났지만, 군의관 A는 혈소판에 문제가 있다고 보면서도 응급상황은 아니라며 감기약을 처방하고 군병원 외진은 다음 날로 예약했다. 이 군의관은 혈액 관련 질환을 면밀하게 살펴 볼 수 있는 전공 전문의가 아니었다. 취재진이 만난 군의관 A는, 당시 자신의 판단에 잘못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간단한 혈액 검사 장비도 없고 의료 관련 면허가 없는 의무병들로만 구성된 의무대에서는 한계가 있다고도 말했다.

군의관 A

“저는 백혈병이라는 진단이 뭔지 알았지만 접해본 적이 거의 없었고 내과 전문의가 아니기 때문에 제 과에서 백혈병을 볼 일은 거의 없어요. 그런 사람들 앉혀놓고 ‘다 봐라 전문인 과가 아니지만 의사이지 않느냐’ (그렇게) 다 보라고 해 놓고 그렇다고 해서 그걸 보조해줄 수 있는 키트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의심되는 환자가 있으면 다 외진 보내라고 하지만 한계가 있죠. (중략) 민간병원을 갔다면 응급실을 갔다면 검사를 했을 거예요.

저희가 흔히 얘기하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수치 그 다음에 간 기능, 신장 기능 이런 건 기본적으로 해요. 그걸 했으면 바로 나오죠. 맞아요, 바로 나와요. 혈액 검사를 했다면, 민간 병원에 갔다면 바로 나왔을 거예요. (중략) 사실 더 엄밀히 말하면 이 증상만 가지고도 그날 밤에 일어났던 구토하고 어지럽고 정신 못 차리는 증상만 가지고도 얘는 그때 사실 이미 진단이 됐어야 돼요. 그건 맞아요.”


3월 22일 새벽, 부대 근처 민간 의원을 찾았다 돌아온 날 밤 홍 일병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연대 의무중대로 온 홍 일병을 보고 의무병이 체온을 쟀고 또 다른 의무병이 외진을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옮겨진 사단 의무대에서도 의무병이 문진을 했고 이후엔 배 부위를 엑스레이로 촬영했다. 그리고서야 군의관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군의관 B 역시 혈액학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생각했지만 역시 응급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응급 후송을 실시하지 않았고 사단 의무대엔 자리가 없어 홍 일병을 계속 두고 관찰하지 못했다. 홍 일병은 그 시각에 군의관도 없는 연대 의무중대로 돌아가야 했다. 군의관 B 역시 혈액 질환 관련 전문의는 아니었다.

군의관 B

“단계 단계 가게 돼있는 거고 그리고 단계를 넘어서려면 그…지휘 결심이 필요한 거죠. 후송을 가게 되면 옆에 동네 병원 가는 게 아니라 여러 인력들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후송을 결정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제 분야면 더 빠르게 판단할 수 있겠지만 해당 영역이 아닌 부분은 좀 판단하기 어려워지는 부분도 있고. (중략) 또 별거 아닌 걸로 만약 보냈다 그러면 또 이제 상부 측에서 안 좋은 피드백이 또 올 수도 있거든요. 뭐 이런 걸로 보내느냐고. (중략) 엑스레이랑 혈액 검사는 가능한데 그것을 과연 신뢰성 있게 볼 수 있느냐, 그 검사 결과를. 무자격자(의료 관련 면허 없는 의무병)가 이렇게 해서 해석을 믿을 수 있느냐를 좀 생각하게 되죠.”


결국 모든 증상이나 질환에 대해 전문일 수 없는 군의관들이, 제대로 된 의료 장비나 의료 지원 인력이 없는 의무대에서, 초기 조치를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인 것이다. 홍 일병 어머니가 생각했던 것처럼, 군의관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돌아가는 군 의료 체계 속에서 또 제대로 된 초기 조치를 받지 못하는 사병이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홍 일병이 세상을 떠나고 이 군의관 A, B만이 성실 의무 위반이라는 이유로 감봉 징계를 받았다. 의무대 차원 혹은 부대 지휘관 차원의 책임을 묻는다거나 의료 체계 개편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다른 변화는 없었다.

●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군 병원홍 일병이 겪었던 안타까운 시간 속에는 의무병들에게 맡겨진 의료행위, 연대·사단 의무대의 열악한 환경, 경직된 의사 결정 체계, 소수의 군의관 배치, 문제가 생겼을 때 일어나는 ‘꼬리 자르기’ 등 군 의료 체계가 드러내고 있는 많은 문제점이 집약돼 있다. 아들이 돌아올 수 없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명예롭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들을 가장 명예롭게 하는 건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도록 막는 것이라고, 어머니는 설명했다. 국가는 책임지고, 아들들을 입대했을 때 모습 그대로 부모 품에 돌려 보내줘야 한다, 군에 보낸 아들들이 아픈 걸 방치해 생명을 잃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게 어머니의 생각이다. 이제 어머니는 아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현수막과 전단지를 만들어 주말에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도심에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기로, 그래서 변화를 만들어 내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들이 떠난 뒤 어머니는 군에서 아들이 썼던 일기나 독후감 같은 여러 글들을 전해 받았다. 어머니도 몰랐던, 아들의 생각이었다. 글을  읽던 어머니의 눈에 유독 밟히는 대목이 있었다. ‘나에게 군대란?’이라는 질문에, 아들 홍 일병은 “대한민국이라는 좋은 나라에 태어난 운을 보답하는 것”이라고 썼다.

홍 일병 어머니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운 좋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했는데, 그죠? 그걸 보답하겠다고 하는데 보답을 국가에서는 이런 식으로 해준 거잖아요. 저렇게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했는데…. 이런 게 이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난 게 억울하다는 마음이 들면 안 되잖아요. 우리 애가 썼잖아요.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자랑스럽다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간 아이였는데.”


‘군대가 원래 그렇지’, ‘군대는 옛날에도 그랬어’, ‘군대는 사회와 달리 특수한 곳이니까.’ 이런 말로 모든 일이 무마되고 해결되던 시간은 지났다. 부를 때는 국가의 아들, 아플 때는 당신의 아들. 사람들은 이 말을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당연한 명제인 듯 무심코 그리고 냉소적으로 입 밖으로 꺼내지만 그러고서 이 문제를 넘기기엔 사병의 건강과 생명은 너무나 소중한, 보호받아야 할 가치다. 군 의료 체계가 가진 문제와 그로 인한 불신이 낳은 이런 말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도록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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