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비축통장' 만들어 대학원생 인건비 횡령"…혐의 추가 적발에도 서울대 징계위는 '요지부동'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작성 2018.05.05 14:38 수정 2018.05.05 16:0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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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비축통장 만들어 대학원생 인건비 횡령"…혐의 추가 적발에도 서울대 징계위는 요지부동
지난해 SBS 8뉴스는 서울대 사회학과 H 교수의 '갑질' 폭로를 보도해드렸습니다. 서울대 인권센터 조사 결과, H 교수는 대학원생들에게 냉장고 청소, 세탁물 맡기기 등 잡일을 시키고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엔 자동차 정기 점검, 내비게이션 업데이트까지 시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평소에는 수시로 폭언과 욕설을 하고, 대학원생들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일삼았다는 진술도 나왔습니다. 인권센터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학 징계위에 정직 3개월 처분을 권고했습니다.

▶ [관련 8뉴스] '갑질 교수'에 정직 3개월…다시 만날까 두려운 학생들 (2017.06.22)

그런데 H 교수의 비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 교육부 감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SBS 취재 결과 H 교수는 연구비와 인건비 등 1천 500여만 원을 부당하게 사용한 것이 교육부 감사에서 적발됐고, 형사 고발까지 의뢰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교육부가 국립대학법인이나 국립대 교수에 대해 형사고발을 의뢰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교육부는 H 교수에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업무상횡령 혐의'가 있다고 보고 대검찰청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 사회발전연구소 학술지 편집장 재직 시 '비축통장' 만들어 대학원생 인건비 횡령 혐의

교육부 감사에서 적발된 H 교수의 횡령 혐의는 단순 착오나 실수라고 보긴 어려운 수준입니다. H 교수는 연구비 1천 538만 120원을 부당하게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중 편집 간사와 연구보조원의 인건비 333만 8천 120원을 부당하게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H 교수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발간하는 『Development and Society』의 편집장 재직 시절 저지른 것으로 조사된 횡령은 사안의 심각성을 잘 보여줍니다. 이 학술지를 발간하는 비용은 대부분 한국연구재단이나 서울대학교 측에서 계약을 통해 지원했는데, 계약 내용에 따르면 지원금은 대학원생 편집 간사 인건비와 제반 인쇄비용에만 사용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편집장이자 교내 정교수로 고용된 H 교수가 따로 돈을 지급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H 교수는 매월 45만 원 정도의 편집장 인건비를 요구했고, 이를 위해 대학원생 간사 중 한 명이 '비축통장'이라는 별도 개인 계좌를 만들어 대학원생 인건비 일부를 돌린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한국연구재단에 제출한 예산서에 편집 간사 인건비를 실제 지급되는 것보다 많게 기재하고, 받은 돈 중 일부를 '비축통장'으로 빼돌리는 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H 교수는 편집장으로서 예산을 정기적으로 재단이나 학교 측에 보고해야 했기에, 이 과정을 모르긴 힘들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교육부도 이러한 비위 수준이 도가 지나치다고 판단해 현직 서울대 교수를 형사 고발하기까지 한 겁니다.
제자 돈 10억 빼먹은 교수● 형사 고발 수준 혐의 추가됐지만 징계 수위는 그대로…'솜방망이', '제 식구 감싸기'

하지만 지난 1일 서울대 징계위가 내놓은 H 교수에 대한 징계 수위는 인권센터 권고와 같은 '정직 3개월'이었습니다. 인권센터 조사 뒤 교육부 감사에서 횡령 혐의가 새롭게 드러났고, 이 감사 결과가 서울대학교 측에 통보됐음에도 징계 수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겁니다. 새롭게 드러난 횡령 혐의는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감사를 진행한 교육부도 이례적으로 형사 고발 조치까지 한, 심각한 수준의 비위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요지부동인 징계위의 결과에 대해 서울대 총학생회는 성명을 내고 강하게 규탄했습니다.

서울대 징계위는 '징계위 논의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며 자세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육부의 형사 고발 사실은 징계위에서 통보받지 못했다는 궁색한 발표를 내놨습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를 자랑하는 서울대학교에서 정교수가 연구에 사용된 인건비를 횡령한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추가 징계가 없었다는 것. '솜방망이 처벌',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 총장도 갸우뚱…'세계사적 소명'을 실천하겠다는 서울대, 걸맞는 결정 내릴까

징계위의 다소 어처구니없는 결정은 서울대 총장의 고개도 갸우뚱하게 만들었습니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새로운 비위 사실이 적발됐음에도 그대로 유지된 징계 수위가 너무 약하다며 징계위에 재심을 요구했습니다.

횡령 혐의까지 추가돼 이제 '갑질 교수'에 '비위 교수' 오명까지 쓰게 된 H 교수에 대한 재심 개시 여부는 오는 24일 징계위 회의에서 논의될 전망입니다. 서울대학교는 '세계사적 소명을 실천하는 창의적 지식 공동체'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학내 비위에 대한 자정작용에 이미 한 번 물음표가 찍힌 서울대학교가 표방하는 가치에 걸맞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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