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히잡 쓴 아랍 소녀들은 어떻게 K-POP을 즐겼나?

임태우 기자 eight@sbs.co.kr

작성 2018.05.06 09:01 수정 2018.05.13 11:0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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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2018 K-POP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요르단 내 자생 K-POP 팬클럽인 '요르단 한류 사랑'이 자체적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마련한 겁니다. 올해로 벌써 6년째입니다. 그곳 현지인 팬클럽 회장이 요르단 내 K-POP 열기가 어떤지 궁금하지 않느냐며 저를 초청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복까지 입고 오면 더욱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흔쾌히 그날 하루 한국 홍보 자원 봉사자가 되기로 하고, 아내와 함께 한복을 차려입은 뒤 행사장으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4월 27일 요르단 수도 암만의 레인보우 극장 입구에 'K-POP 페스티벌'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K-POP 페스티벌 열기는 어땠을까요? 당시 팬들은 500석 규모의 극장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좌석 양쪽으로 서서 '스탠딩'으로 즐기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극장 대형 스크린에서 K-POP 뮤직비디오가 나올 때마다 팬들은 비명을 지르고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동영상을 보시죠. 해당 동영상 18초부터 보시면 방탄소년단(BTS)의 'Mic Drop' 한국어 가사를 떼창합니다. 이 모습을 봤을 때 솔직히 온몸이 떨리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대체 얼마나 BTS 노래가 좋았길래 아랍인이 발음하기도 힘든 한국어 가사를 저렇게 훌륭하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건지 참 놀랍기만 했습니다. 또 39초쯤에는 많은 팬들이 샤이니 종현의 'Lonely'를 따라 부르면서 추모 의미로 핸드폰 불빛을 흔들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토요일과 같은 휴일입니다. 무슬림들은 금요일이 되면 대개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사원에 가서 기도하거나 일가친척들과 가족 모임을 갖곤 합니다. 그런 중요한 금요일에 무슬림 소녀들이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와서 K-POP 행사를 참석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반드시 부모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소녀 팬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도 수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였다는 건 K-POP 을 향한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일부 팬들은 직접 무대 위로 올라와서 갈고 닦은 K-POP 댄스와 노래 실력을 선보였습니다.페스티벌 공연은 2시간가량 진행됐습니다. 진행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BTS, 엑소, 슈퍼주니어, 샤이니, 워너원, 트와이스, 빅뱅, 소녀시대 등 뮤직비디오를 대형 스크린에 틀어놓고 이를 목청껏 부르면서 단합된 팬심과 축제 분위기를 느끼는 게 다입니다. 이곳에서도 BTS의 굳건한 인기를 반영하듯 BTS 뮤직비디오가 나올 때마다 극장 안이 떠나갈 듯한 열창이 터져 나왔습니다. 뮤직비디오 중간중간에는 일부 팬들이 직접 무대 위로 올라와서 갈고 닦은 K-POP 댄스와 노래 실력을 선보였습니다.

무슬림 여성은 히잡을 착용한 채로 춤을 추는 행위를 율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행동이 자유로운 소년 팬들이나 히잡을 쓰지 않는 개방적인 가정의 무슬림 소녀들이 춤을 즐깁니다. 댄스를 선보였던 남학생 중 한 명을 만나봤습니다. 요르단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아흐마드는 9살 때부터 K-POP을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틴탑, 빅뱅, BTS와 같은 그룹들 안무를 좋아해서 틈틈이 유튜브를 보고 한 동작씩 따라 익혔다고 했습니다. 왜 유독 K-POP 댄스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노래 시작부터 끝까지 열이면 열, 모든 멤버들이 자로 잰 것처럼 딱딱 맞춰 칼군무를 추는 게 너무 멋있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9살 때부터 K-POP을 좋아했다는 요르단 대학교 4학년생 아흐마드는 한국인 친구들이 많습니다.저희 부부는 행사 시작 전부터 아랍 팬들과 셀카를 한 100여 장 정도 찍었습니다. 상당수 아랍 소녀들은 셀카 찍는 걸 즐깁니다. 한복을 입고 온 저희 부부를 보자 수줍게 카메라를 들어 보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당당하게 인사를 건넨 뒤 함께 셀카를 찍자고 요구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눈짐작을 해봤는데 그날 행사장에 온 이들 80%가량이 10대 소녀들이었습니다. 남녀 비율은 100명 중 99명이 여성이었을 정도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올해 17살 고등학생인 윤나는 "유튜브를 비롯해 SNS 이용이 많은 아랍의 10대 또래들 중에서 K-POP을 접해보지 않은 이들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K-POP의 어떤 점이 좋냐고 묻자 다른 음악들과 비교해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존 아랍 대중음악과 차별되는 빠른 댄스 비트와 화려한 군무 등이 매력적이라고 부연했습니다.
행사장에서 만난 아랍 소녀들은 K-POP이 '특별하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더 어린 팬도 만나봤습니다. 중학생 15살 파티마는 "3년 전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다"며 "아이돌 춤을 따라 하고 싶은데, 히잡을 쓰고 있어서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그녀는 한국어 가사를 이해하고 싶어서 틈틈이 인터넷에서 한국어 강좌를 보면서 독학하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차 의대생이 되는 게 꿈이지만, 또 다른 꿈은 성인이 됐을 때 한국에 가보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중학생 파티마는 K-PP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종종 미디어에 비치는 아랍 세계는 테러가 난무하고, 여성들은 불합리한 희생을 강요 당하는 곳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아랍 세계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런 이미지의 편린과 전혀 다른 일상이 있습니다. K-POP과 한국을 좋아하는 아랍 소녀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곳 아랍에서도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글로벌 한국 기업들이 한국을 알리고 국가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K-POP은 그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한국이란 나라를 알립니다. K-POP은 아랍 10대 소녀들에게 한국에 대한 강한 애착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한글을 배우게 하고, 한국 방문의 꿈을 꾸게 합니다. 저는 한국이 무조건 최고라는 식의 '국뽕'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그날만큼은 솔직히 국뽕에 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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