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내부 제보자들의 힘…변화는 시작됐습니다

현대차 여직원 술자리 동원 기사 이후…줄 잇는 내부자들의 제보

김혜민 기자 khm@sbs.co.kr

작성 2018.04.17 10:25 수정 2018.04.17 14:3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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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 잇는 제보자들

보름 전인 이달 초, 현대차 여성 임원이 여직원들에게 술자리 참석을 강요하고, 이를 견디지 못하던 직원이 회사를 그만뒀다는 리포트가 방송을 탔습니다. (▶ [단독] 현대차 임원, 상급자 술 접대에 부서 여직원 억지 동원)
 
기사가 나간 뒤 며칠 만에 여성 임원과 함께, 그 자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남성 고위 임원 역시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제대로 된 조사나 징계 없이 사표를 받아준 회사의 처리방식에 아쉬움을 느꼈지만, 이것으로 일단락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도 현대차 내부 직원들의 ‘조용한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현대차 남성 고위 임원들이 젊은 여직원들만 불러 모아 정기적으로 술자리를 벌였다는 제보나, 여성 직원뿐만 아니라 남성 직원을 성희롱 성추행했다는 제보까지 수십 건에 달합니다. 하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이런 내용을 모두 다 후속 기사로 쓰진 못했습니다.

이 취재파일은 신원이 드러날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SBS와 기자를 믿고 회사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 치열한 고민 끝에 어려운 용기를 낸 현대차의 수많은 내부 제보자들을 위한 글입니다.

● '피해자 보호와 알 권리'

직원들의 추가 제보는 이미 기사로 나간 내용보다도 충격적인 내용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기자도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기 힘들어서 기자 스스로도 반신반의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도 빠짐없이 회사에 공식적으로 확인을 요청했고, 이 가운데 일부는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꼭 기사로 써서 알리고 싶다는 기자로서의 직업병이 또다시 도졌습니다. 다행히 제보자들의 신원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제보자를 색출하려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달라"는 기자의 요청을 들어준 것인지, 제보 내용이 너무 많아 회사에서 일일이 확인이 안 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피해자들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아직도 근무하거나, 이미 퇴직한 전직 직원이라도 자신의 피해 사실이 외부로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습니다. 심지어 제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기사가 나가는 것을 막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는 피해자도 있었고, 이미 나간 기사로 2차 피해를 호소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고통받는데도 기사를 써야하는 것인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기사로 또 다른 고통을 주면서까지 무리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단순한 흥미 위주의 기사가 회사의 성차별적 관행을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판단했습니다.

● '그래도…변화는 시작됐다'

"기사 나간다고 아무것도 안 바뀌어요. 절대 안 바뀌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회사는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어요."

한 피해자가 제게 한 말입니다. 기사 한두 꼭지로 큰 변화가 오길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식이 바뀌면 문화가 변하고, 이것이 지속되면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현대차 제보자들은 제게 “처음엔 너무 익숙한 일이라 문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기사를 보고선 사라져야 할 구시대적 문화라는 걸 느끼고 제보를 하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젊은 여직원을 동원하는 무리한 술자리가 만들어지지 않고, 회사도 예전보다 훨씬 더 조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현대차 측에서는 직원들의 추가 제보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문제제기가 됐던 부분에 대해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이 역시 수많은 제보자들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 '내부 제보자들의 힘'

사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현직 직원들이 회사 내부 문제를 제보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달린 직장을 고발하는 일은 '직장인'인 기자도 선뜻 용기 내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내부 제보로 인한 취재가 보편화 되고 있습니다. '불합리'에 맞서 직을 걸고 용기를 내는 제보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세례 갑질'로 논란이 되고 있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기사 역시 비슷한 사례입니다. 직원들의 끝없는 제보로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습니다. 제보 수십, 수백 개가 모이면 회사는 어느 순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제보를 했는지 색출하기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최근 대한항공의 또 다른 직원이 익명 커뮤니티에 올린 글 가운데 유독 가슴을 울리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위대한 용기 내신 내부 고발자들, 반드시 지켜 내겠습니다."

내부 제보자들을 뜨겁게 응원합니다. 제보자들을 지켜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절박함과 위대한 용기를 떠올리며 소중한 제보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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