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수입 고기가 어때서"…힘 빠지는 '신토불이'

공산품 이어 농산품도 애국 마케팅 피로감

고철종 기자 sbskcj@sbs.co.kr

작성 2018.03.13 11:46 수정 2018.03.20 15:5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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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세청 적발 업소

네덜란드산 돼지고기를 국산으로 둔갑시켜 팔아 부당이득을 취한 판매업자가 최근 적발됐다. kg당 8천원에 팔았다는데, 국산이 1만 1천5백원선인 걸 감안하면 kg당 3천원 이상 불법 이익을 취한 셈이다. 이 기사에 붙은 댓글을 한 포털에서 살펴봤다. 판매업자에 대한 비난도 상당수 있지만, 전체적으론 네덜란드산 고기가 오히려 국산 제품보다 더 좋은 것 아니냐는 취지의 반응이 과반을 넘었다. 
[취재파일] '수입 고기가 어때서"외국산을 국산으로 둔갑시킨 행위가 나쁘다"란 주제가 논리적 당위성을 갖기 위해선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외국산이 국산보다 가격이 싸야 하고 두 번째로 품질이 낮아야 한다. 그런데 상당수 소비자가 선진 국가이면서 청정 환경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산 돼지고기가 품질로 볼 때 더 좋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보니 일반적인 반응이 아닌 의외의 반응이 많이 나온다. 오히려 크게 뛰어난 부분도 없이 비싼 가격을 받고 있는 국산 돼지고기를 비난하는 모양새다. 

일반적으로 공산품의 경우 소비자들이 국산 여부보다는 품질에 기초해 구매선택을 하는 게 진작 상식이 됐다. 그래서 직구가 성행하고 수입차와 아이폰이 인기를 끈다. 그런데 농축수산물에 관해서는 여전히 신토불이에 대한 신뢰에다, 애국심 마케팅이 상대적으로 주효해 왔다.

이런 마케팅에는 언론도 상당 부분 기여했는데, 명절 때마다 단골 기사로 농수산물에서 ‘중국산 구별법’을 소개하던 게 그런 것이다. 신토불이 마케팅에다, 약간의 견강부회성 근거로 국산 제품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그런 뉴스를 보면서 소비자들은 우리 것이 외국산보다 좋다는 인식을 은연중에 새겼고, 같은 값이면 당연히 우리 것을 사줘야 한다는 마음까지 다지게 됐다. 그러던 것이 최근 몇 년 사이엔 소비자 정서가 눈에 띄게 변해간다는 느낌을 이런 댓글을 보면서 받게 된다.
 
● 고도성장기 경쟁의식이 국산 선호 창출

이런 애국심 마케팅이 극에 달했던 것은 90년대 초중반이다. 이때 한국은 적게는 6%에서 높게는 10% 가까운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일본과 중국 제품과의 경쟁도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세탁기 냉장고 TV 전자레인지가 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주요 뉴스이자 국민의 자부심이었던 그 당시, 국산품에 대한 애국심 마케팅은 기업이 가장 즐겨 쓰는 기법이었다.
 

당시 화제가 된 제품 광고 가운데 하나가 준중형차인 아반떼 광고였다. 1995년 엘란트라의 후속으로 나온 아반떼는 미쓰비시 엔진을 버리고 국산 엔진을 장착했다. 디자인 역시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해 국산 디자이너 손에 이뤄졌다.

국산화 100%라는 광고를 내세운 아반떼는 애국심과 자부심을 효과적으로 자극했다. 일본만 떠올리면 흥분하는 우리 소비자들에겐, 성능 여부를 떠나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을 독자 개발해 일본으로부터 독립했다는 것은 큰 의미로 와 닿았다. 덕분에 당시로써는 기록적인 출시 첫날 3천7백여 대, 5일 만에 1만여 대의 계약고를 달성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농수산물에서도 신토불이 마케팅이 붐을 이뤘다. 신문과 방송들도 농수산 관련 국책 연구기관들이 내놓은, 국제적으론 타당성을 인정받기 힘든 내용의 ‘국산품 우수성’ 기사를 연일 내보냈다.

이른바 ‘중국산 구별법’기사도 극에 달했다. 중국산은 크고 그럴듯하지만 비위생적이고 맛없는 상품, 한국산은 작고 볼 품 없더라도 위생적이고 맛이 뛰어난 상품으로 포장돼 갔다. 국산품의 과대포장과 중국산의 과소평가는 급기야 중국의 무역 보복을 불러오기도 했다.
 
● 너무 비싼 가격이 '가성비'에 대한 의구심 유발

우리 농축수산물의 객관적 우수성이 실존한다 하더라도 애국심 마케팅은 우리 상품들의 본질적 가치를 과대 포장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본질적인 경쟁력을 젖혀두고 국산품 애용만을 호소하는 데 대한 피로감이 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촉발제는 비싼 가격이다. 공산품에선 현대기아차가 내수용으로 만든 차와 수출용 차가 같은 차종인데도 현격한 가격 차이가 존재한다는 의구심이 대표적이었다. 애국심 때문에 국산차를 사줬더니 국내에선 비싸게 팔고 외국에선 싸게 팔아 우리 소비자들을 호구로 만들었다는 피해 의식이 급속히 확산됐다.

제조업체가 현지 세금체계와 옵션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불신은 수그러들지 않고 국내에서 수입차 점유율 확대의 한 계기가 됐다.

농수산물 역시 국내산이 파격적으로 비싼 만큼 과연 그 품질에서 외국산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느냐는 의문이 많이 확산됐다. 수산물을 예로 들면 서해에서 중국 배와 한국 배가 잡은 생선이 뭐가 다르기에 몇 배의 가격차이가 발생하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달러를 벌기 위해 7,80년대에 크고 좋은 생선은 일본에 수출하고 상품성 떨어지는 것은 국내에 팔았다. 중국도 그렇게 했다고 본다면, 같은 바다에서 중국 어민이 잡아 한국에 수출한 생선이 크지만 맛이 없고 싸야 할 이유가 있을까. 반대로 한국 어민이 잡은 작은 생선이 작지만 훨씬 맛있고 비싸다는 게 상식일까.

이런 생각들은 외국산의 국내 점유율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소고기의 경우 한 때 광우병 파동까지 겪었던 미국산 소고기 판매가 급속히 늘면서 수입산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반면, 우리 소고기 자급률은 지난 2013년 50%에서 2014년 46%로 하락했다. 그리고 2016년 38% 로 급락했고, 2020년에는 30%를 훨씬 밑돌 것으로 예측된다.

앞서 돼지고기 댓글과 마찬가지로 소고기에 대해서도, “우리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자란 소에서 얻은 수입산 소고기가 우리 한우보다 못하다는 근거가 어디 있느냐?”는 여론이 많아지면서 실제 소비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신토불이의 힘을 빼고 있는 것이다. 여기다 글로벌 시대, 다양해진 입맛도 또 다른 요인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수입 소고기에 비해 월등히 비싼 한우 가격이 소비자의 입맛을 버리게 한다.

● 소비자 후생 차원서 상품 정보 늘려야

십수 년 전 시사프로그램에 몸담고 있을 당시, 소비자후생 차원에서 국산차와 수입차의 비교실험을 한 적이 있다. 이어 농축수산물에 대해서도 비교실험을 준비했다. 수십 가지 품목에 대해 맛과 품질을 지수화해 시청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틀림없이 국산이 우수하게 나올 것이기에 우리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의미도 있을 걸로 예단했다.

관련 기관에 실험을 의뢰하고 연구비용까지 지급했는데, 심야에 해당기관의 원장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실험을 하지 못하겠다는 대답이었다. 어이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샘플링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론 수입품이 더 좋게 나오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관련 생산단체의 반발과 시위가 극심할 걸로 예상되는 만큼, 그걸 감당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당시의 정서로 볼 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기관들 역시 실험을 거부해 프로그램을 접은 적이 있었다.

지금 그와 같은 실험을 한다면 어떨까. 어떻게 나오든 간에 소비자 후생 증진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는 의견이 그때보다 많을 듯하다. 정확한 정보가 우리 국민들의 현명한 소비에 도움을 주고, 생산자들로 하여금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내도록 독려하는 촉진제가 되지 않을까. 그것은 또 경제에서 수출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으로서 떳떳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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