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중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는?…국가주석 연임 폐지의 상징성

활짝 열린 '시진핑 장기집권 시대'

박진원 기자 parkjw@sbs.co.kr

작성 2018.03.12 19:03 수정 2018.03.13 10:5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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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가 어제(3/11) 예상대로 국가 주석의 임기제한을 폐지하고, 서문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삽입한 헌법 수정안을 찬성률 99.79%의 압도적인 표차(찬성: 2958, 반대: 2, 기권: 3, 무효: 1)로 가결했다. 중국 헌법 79조 3항의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부주석의 매회 임기는 전인대 매회 임기(5년)와 같고, 임기는 2회 연속 회기를 초과하지 못한다”는 문구 중 “임기는 2회 연속 회기를 초과하지 못한다”는 부분(한자로 10자)을 삭제한 것이다.

● 국가주석 연임 폐지의 의미

이를 두고 ‘시황제의 등극’, ‘종신집권의 문 열렸다’는 등의 평가가 나오는 것은 헌법 조항의 실질적 의미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1993년 장쩌민 당시 공산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국가주석을 겸임한 이후 중국의 최고지도자(중국에선 최고영도인(最高領導人)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공산당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국가주석 3개의 직책을 겸임해왔다(당 군사위 주석과 국가 군사위 주석을 분리해서 보면 4개). 각각 취임시기가 조금씩 다르더라도 집권 중 세가지 직책 모두를 겸임해왔다. 이 3개의 직책 가운데 가장 실질적인 권력과 가장 거리가 먼 자리가 국가주석직이다.

현행 헌법(82년 헌법)상 국가주석은 대외적으로 국가원수의 자리이긴 하지만 그 권한은 법률 공포, 외교사절 접수·파견 등 의례적, 상징적 자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공산당 총서기는 헌법상 국가를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최고지도자이고, 중앙군사위 주석은 중국 군(중국인민해방군)의 최고통수권자다. 중국의 최고 권력자가 당 총서기나 국가 주석을 겸하지 않은 경우는 있어도 군의 통수권을 놓은 적은 사실상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 헌법 수정에서 국가주석 임기제한 폐지를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이들 3가지 직책 중 임기 조항이 있었던 것은 국가주석뿐이기 때문이다. 이번 임기제한 폐지를 통해 시진핑 주석이 집권 2기가 끝나는 2023년을 넘어서도 중국을 이끌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 꾸준히 이어온 절대 권력화 작업

이처럼 국가주석 임기제한 폐지가 상징적인 화룡점정이었다면, 보다 강한 권력을 갖기 위한 실질적인 작업은 시 주석 취임 이후 꾸준히 이뤄져 왔다. 지난 5년간 부패척결을 내세워 자신의 정적들을 무력화해 온 시 주석은 2016년 10월 공산당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에서 당 중앙의 ‘핵심’이란 칭호를 받았다. 전임자인 후진타오 전 주석도 부여받지 못한 호칭이었다. 당시 덩샤오핑이 마오쩌둥 개인숭배 같은 1인 독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도입했던 집단지도체제와 국가주석 임기제한의 붕괴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어 작년(2017년) 집권 2기를 여는 공산당 19차 전국대표회의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시진핑 사상)이란 표현을 중국 공산당의 당헌에 해당하는 당장(黨章)에 넣으면서 “1단계로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하고, 2단계로 2050년까지 중국을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만들겠다”며 자신의 임기 이후의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이어 열린 19기 정치국 중앙위 전체회의(1중전회)에선 차차기 지도자를 지정해온 격대지정(隔代指定)의 관례를 25년만에 깨고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헌법 수정을 통해 헌법 서문에도 ‘시진핑 사상’을 집어넣는데 성공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론(장쩌민의 이론)의 지도"라는 문구에 "과학발전관(후진타오의 이론)과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추가한 것이다. 지금까지 최고지도자들의 지도이념을 다 명기한 셈이지만 마오쩌둥과 함께 사상이란 표현으로 들어간 것은 시진핑뿐이다. 덩샤오핑은 '이론'이며 장쩌민, 후진타오의 경우는 이름도 명기되지 않았다. 이런 시주석의 장기집권 포석에 대해 외국 언론이나 중국 인권운동가를 중심으로 “지난 40년 중국 개혁개방의 부정이자 역사의 퇴보” 등 강도 높은 비판이 일고 있다. 하지만 중국 내부에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우세하다는 것이 복수 외교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이런 가운데 이론적으로 종신집권의 문을 연 시 주석이 실제로 이 길을 걸을지에 대해서는 경제적 지위상승에 수반한 중국인들의 정치적 욕구 분출과 권력의 부패 여부, 많이 위축됐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중국 공산당 내 반대세력 등 아직도 지켜봐야 할 변수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어서 역대 중국 최고지도자들이 어떤 직책을 바탕으로 최고 권력을 행사했는지를 살펴보자. 중국(중화인민공화국)에는 49년 건국 이래 지금까지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5명의 최고지도자가 있었으며 중국에선 통상 이들을 제1~5대 최고영도인이라고 부른다. 마오쩌둥에게 발탁돼 마오 사후 2년여동안 공산당 중앙위 주석을 맡았던 화궈펑은 보통 여기에 포함하지 않는다.왼쪽부터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초대 마오쩌둥(毛澤東 1949~1976): 당 중앙위원회 주석직과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사망할 때까지 유지했다. 건국과 함께 맡았던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국가주석직(54년까지는 중앙인민정부 주석)은 1959년 류사오치(劉少奇)에게 넘겼으나 문화대혁명으로 류가 실각한 1968년 이후에는 공석이 됐으며 1975년 헌법개정으로 폐지. 이후 1978년 헌법개정으로 전인대상무위원장이 의전적, 대외적 국가원수 역할을 맡기도 했다(주더(朱德), 예젠잉(葉劍英) 역임)

2대 덩샤오핑(鄧小平 1978~1989): 국가주석직(덩이 주도한 1982년 개헌에서 의전적 국가원수직으로 부활)은 물론 통상 최고 실권자로 여겨온 당 중앙위 주석이나 총서기직(82년 개헌 이후)도 맡지 않고 중앙군사위 주석직만 1989년 후계자인 장쩌민에게 넘길 때까지 유지했다. 덩의 중앙군사위 주석 취임은 81년이지만 문화대혁명을 부정하고 개혁개방노선을 채택한 1978년 12월 제11기 3중전회(공산당 제11기 중앙위 제3차 전체회의) 이후 그를 최고 지도자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집권 중 후야오방(胡耀邦, 당 주석: 1981~1982, 당 총서기: 1982~1987), 자오쯔양(趙紫陽, 1987~1989)이 당 총서기를, 리셴녠(李先念, 1983~1988), 양상쿤(楊尙昆, 1988~1993) 등이 국가주석을 맡았다.

3대 장쩌민(江澤民 1989~2002): 1989년 6월 당 총서기직을, 같은 해 11월에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맡았으며 1993년 3월부터 10년 동안 국가주석직 역임.

4대 후진타오(胡錦濤 2002~2012): 2002년 11월 당 총서기직, 2003년 3월 국가주석직, 2004년 9월 중앙군사위 주석직 각각 장쩌민으로부터 승계

5대 시진핑(習近平 2012~현재): 2012년 11월 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2013년 3월 국가주석직을 후진타오로부터 승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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