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아베 정권 '되살아난 스캔들에 휘청'

성회용 기자 ares@sbs.co.kr

작성 2018.03.12 16:21 수정 2018.03.13 18:2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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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두 번째 집권 중이다. 첫 번째까지 포함하면 재임기간이 6년을 넘기고 있다.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 한차례 집권 실패까지 겪으면서 그 동안 나름대로 여러 정치적 역경을 그럭저럭 무사히 넘겨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상치 않은 난관을 만났다.
 
지난해 2월 불거졌던 비리스캔들이 되살아났다. 우여곡절 끝에 진화된 줄 알았던 일이다. 모리토모 학원 국유지 불하 사건이다.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씨가 모리토모라는 오사카 지역 유치원 운영자 가족하고 엮이면서 벌어진 사달이다.
아베 아키에 여사핵심은 헐값 불하다. 감정가가 9억5천6백만 엔인 오사카 소재 국유지를 그 동네 모리토모 학원이 2016년 6월에 1억3천4백만엔이라는 싼 값으로 사들였다. 매각 주체는 당연히 일본 정부였다. 감정가 보다 무려 8억천9백만엔이나 내려간 금액이다. 싸게 판 명분은 해당 부지에 쓰레기가 많이 묻혀 있었다는 것. 쓰레기 처리비용을 감안해 매각 대금을 낮게 책정했다는 게 일본 정부의 변명이었다. 그러나 실제 쓰레기 처리 비용은 1억엔 남짓에 불과했다. 누가 봐도 특혜다. 6개월이 지나 지난해 2월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치스캔들로 번져나갔다.
                      
모리토모 학원은 어떤 곳인지 살짝 알아보자. 한마디로 극우 성향의 기행을 일삼는 수상한 유아,초등 교육기관이다. 황당한 극우교육의 예를 보자.

1. 지난 2016년 12월에는 한국과 중국을 비하하는 가정통신문을 유치원 학부모들에게 보내 비난을 받았다.

2. 이 학교가 운영하는 츠카모토 유치원은 “‘중대 사태’가 일어나면 천황에게 목숨을 바치라”는 표현이 있는 1800년대 후반의 교육칙어를 아이들에게 읽도록 한 적도 있다.

3. 2016년 가을 유치원 운동회에서는 어린아이들에게 “아베 총리 힘내라!”를 합동으로 외치게 했다.

 
군국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모리토모 학원 가고이케 이사장은 일본 최대 극우단체 ‘일본회의’멤버다. ‘일본회의’는 공개적 활동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현재의 일본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아베 총리를 포함한 유력 정치인 상당수가 멤버다. 제과재벌2세 출신인 부인 아키에 씨도 ‘일본회의’ 멤버다. 모리토모 학원재단과 아베 정권은 같은 정치적 성향으로 연결된 사이인 것이다.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 모리토모 학원은 아키에 씨를 제대로 활용했다. 명예교장을 시키면서 학원 행사에 끌어들였다. 일년 전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는 아키에 씨를 보호하는 척 했다.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언론의 집요한 추적이 시작되자 곧바로 자세를 바꿨다. 아키에 씨와의 친분을 대놓고 드러낸 것도 모자랐다. 자신들은 전혀 잘못한 게 없고 아베 총리 쪽에서 알아서 편의를 제공한 것처럼 떠들었다. 당연히 여론은 아베 총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아베 총리는 지난해 3월 초강수를 뒀다. 만약 아키에 씨가 모리토모 국유지 불하와 관련이 있다면 총리를 그만두겠다고 공언했다. 그것도 국회라는 공개석상에서다. 당시 재무성 책임자인 사가와 노부히사 이재국장도 기다렸다는 듯이 부정이 없다고 강변했다. 아베 총리 측의 압력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야당이 의혹을 제기한 관련 서류는 남아있는 게 없다고 큰소리를 쳤다. 구체적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야당과 언론은 주춤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부족했다. 일본 언론은 공무원들이 알아서 긴 것 아니냐며 ‘손타쿠(알아서 배려한다는 일본어)’라는 말로 상황을 비아냥거렸다. 이 말은 지난해 일본에서 손꼽히는 유행어가 됐다. 그리고 몇 달 간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위기에 몰렸던 아베 총리는 운 좋게 판세를 뒤집는다. 일등 공신은 북한이다. 고비마다 연이은 장거리미사일과 핵실험으로 모리토모 스캔들을 가라앉혔다. 다른 인허가 스캔들이 하나 더 터졌지만 그마저도 북핵이라는 ‘공포’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디플레이션 탈출’과 ‘북한 발 위기’라는 아베의 창과 방패 앞에는 어떤 스캔들도 무력해 보였다.
 
자신감을 되찾은 아베 총리는 작년 10월 중의원 해산과 총선이라는 역공을 취했다. 아베의 라이벌로 떠올랐던 고이케 도쿄도지사(이 사람은 아베 총리 보다 훨씬 극우성향이며 혐한에 가까운 발언을 수시로 한다.)는 초반 여론조사 결과에 취해 스스로 무너졌다. 다시 한 번 아베 총리의 압승. 여당 의석은 해산전보다 더 늘었고 국회 장악력은 더 높아졌다. 이어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과 대북 긴장감의 고조. 올해 1월초까지만 해도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지지율은 50%를 넘어 탄탄했다.
 
그런데 3월 봄바람이 시작되자 난데없는 미사일이 날아왔다. 북한이 아닌 아사히신문이 한 방을 날렸다. 재무성이 보관하고 있는 모리토모 관련 문서가 조작된 흔적이 있다는 보도가 3월2일 터져 나왔다. 여당인 자민당은 당황했고 야당은 정기국회(일본은 회계연도가 4월 1일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예산을 심의하는 정기국회가 1월에 시작된다)에서 공세를 시작했다. 모리토모 사건의 정부측 주역인 사가와 국세청 장관(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승리한 다음 아베 정권은 사가와 이재국장을 권력 핵심인 국세청 장관에 임명한다. 일본의 장관은 우리나라로 치면 차관급 청장에 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을 국회로 불러내 모리토모 관련 문서의 조작 여부를 추궁했다.  7일에는 2016년 모리토모 학원이 국유지를 불하 받을 때 실무자인 긴키 재무국 직원이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불이 꺼진 줄 알았던 모리토모 사건 잿더미에서 다시 거센 화염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일본 특유의 도마뱀 꼬리 자르기가 등장한다. 지난 9일 저녁 사가와 국세청 장관이 갑자기 사임을 발표했다. 다음날 아사히신문은 사가와 장관이 모리토모 문서 조작에 개입했다는 기사를 1면 톱으로 실었다. 꼬리는 잘랐는지 몰라도 여론은 더 들끓기 시작했다. 사가와 장관의 직속상관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에게 화살이 겨눠졌다. 전직 총리이기도 한 자민당 중진 아소 부총리가 국유재산 관리 총책임자인 재무상이니 모리토모 사건과 관련 문서조작 건도 책임을 지라는 거다. 상황은 가볍지 않다. 늘 아베 정권에 역성을 들던 방송과 신문들이 대대적인 보도를 시작했다. 야당의 공세도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한국 같으면 책임을 통감한다며 그만둬도 시원치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일본은 내각제 국가다. 여당 내부 권력 구도는 파벌정치로 정한다. 본인 스스로 주요 파벌의 보스이기도 한 아소 부총리는 9일부터 사퇴 여부를 묻는 언론의 질문에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버티는 중이다. 아소 부총리를 물러나게 하려면 현실적으로 자민당 내 여러 파벌이 동의를 해야 한다. 아베 총리가 결정하는 형식이지만 그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다. 각 파벌의 보이지 않는 타협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소 부총리가 화살을 맞고 나가 떨어지면 아베 총리 앞에는 더 이상 보호벽이 없어지게 된다. 아베 총리가 야당과 언론 앞에 맨 몸으로 나설 수 밖에 없다. 자민당은 별로 유리할 게 없어 보인다. 모리토모 스캔들의 실체가 워낙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버텨온 게 신기할 정도다.  국유지를 불하하면서 우리 돈으로 80억원 이상 싸게 팔았는데 전혀 잘못이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그걸 어떻게 방어 하겠는가.
 
그래서 자민당 내 주요 파벌은 지금 고민 중이다.  도마뱀 꼬리는 잘랐지만 재생속도가 워낙 빨라서다. 이제는 꼬리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목을 내주지 않으려면 몸통이라도 던져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늘 그렇듯 아베 1강의 장기 독주는 뚜렷한 넘버2를 키우지 못했다. 자칫하면 정권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다.  대안이 없다는 것은 내부 불안을 증폭시킬 수 밖에 없다. 각 파벌들로서는 분주히 손익을 계산하면서 서로 곁을 기웃거리고 있다.
 
일본 우익도 점점 몸이 달 수 밖에 없다. 아베 총리는 일본 우익의 오랜 숙원인 ‘전쟁 가능한 국가’를 만들 수 있는 개헌안을 올해 밀어 붙이겠다고 공언했다. 한 때 강력했던 개헌반대세력 야당은 지리멸렬 상태다. 최근 총선에서 세 번이나 대패를 거듭하면서 잔뜩 움츠러든 상태다. 차세대 주자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군국주의’를 꿈꾸는 개헌세력으로서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위기를 맞았으니 ‘일본회의’를 포함한 우익진영에서는 걱정어린 한숨이 터져 나올 수 밖에 없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치 환경은 ‘라니냐’, ‘엘니뇨’ 보다 더 거칠고 예상 불가다. 거함 아베 호는 불과 한달 전까지 순풍에 돛 단 것처럼 여론의 바다를 항해했다. 그러다 잠깐 사이에 민심은 돌변하기 시작했다. 거칠어진 여론은 책임이라는 제물을 요구한다. 아베 정권은 당분간 북핵 방패도 쓰지 못하는 처지다. 북미정상회담을 앞 둔 북한이 아베 정권을 위해 다시 장거리탄도미사일을 일본 하늘 위로 쏘아 올릴 확률은 최소한 5월까지는 0에 가깝다.
 
아베 총리는 4월 초 미국을 방문하겠다고 했지만 작년과는 상황이 다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는 장면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 2년 동안 어수선할 때마다 ‘무서운 북한이 위협한다’며 민심을 달랬던 게 아베 정권이다. 이번에는 어떤 공양물로 여론을 달랠 지, 과연 그게 통할 지 둘 다 관심사다.
 
더욱 중요한 건 일본의 정치 상황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은 미국 정치판과 중국 권력의 향배는 손바닥 보듯이 잘 알지만 일본 정치판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그렇지만 일본은 한국의 현재 그리고 미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나라다.

역사와 영토문제로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웃 나라.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개헌을 꿈꾸는 우익이 있는 나라. 일년에 7백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방문하는 국가. 또 우리에게 최대 무역적자를 안겨 주는 나라다. 일본 정권의 향배는 당연히 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베 정권의 위기를 정밀하게 지켜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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