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올림픽 끝난지 얼마 됐다고…날벼락 맞은 한국 썰매

평창 슬라이딩센터 올해 폐쇄-상비군 해체

최희진 기자 chnovel@sbs.co.kr

작성 2018.03.10 09:4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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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이 지난 7일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평창 올림픽 폐막일이었던 지난달 25일 은메달 획득이라는 쾌거를 이룬지 열흘 만이었습니다. 당시 기쁨과 감동의 순간을 다시 돌아보고 한국 썰매의 미래 청사진을 밝히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기자회견 초반부터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 앉았습니다. 평창 슬라이딩센터의 사후 활용 방안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 감독은 침울한 표정으로 의외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올해 평창 슬라이딩센터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뜻밖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유는 정부가 올림픽 이후슬라이딩센터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천억원을 들여 만든 만큼 우리 선수들이 계속 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못 하게 되면 앞으로 시즌 준비에도 막대한 차질이 불가피합니다."

슬라이딩센터를 운영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1년에 20억원 정도입니다. 총길이 1,376미터의 트랙에 얼음을 얼리기 위해 암모니아 냉매와 냉각 장치를 가동해야 하고, 얼음을 관리하는 아이스메이커 등 운영요원들의 인건비 등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정부의 지원으로 이를 충당했지만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지원이 중단된 것입니다. 대표팀은 당초 3월과 4월에 슬라이딩센터에서 유망주 육성 훈련을 진행하고, 오는 9월말부터 새 시즌 준비 훈련을 할 계획이었는데 이런 계획도 물거품이 됐습니다.
슬라이딩센터봅슬레이 트랙 관리2016년 10월 완공된 평창 슬라이딩센터는 전 세계 16개 트랙 가운데 유일하게 실내 육상 트랙을 설치해 선수들이 경기 전 편하게 몸을 풀 수 있게 했고, 우리 국가대표 전용 라커룸과 실내 아이스스타트 훈련장까지 갖춰 세계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평창올림픽의 대표적인 유산(legacy)입니다.

올림픽 이후 경기장 시설 관리 책임을 맡게 된 강원도는 아직 시설을 위탁받아 운영할 주체조차 정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강원도는 한국체육대학과 올림픽 이후 시설 활용에 관한 MOU를 체결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논의는 못 하고 있습니다. 한체대는 사후 활용 방안과 관련해 대표팀과 상비군의 전용 훈련장으로 활용하고 국제 대회를 유치하는 것은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봅슬레이 체험' 같은 레저 시설로 활용하고 아직 썰매 종목이 보급되지 않은 아시아 국가 사람들을 초청해 강습회를 열어 저변을 확대한다는 방안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도 슬라이딩센터를 운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운영 주체 선정 과정에서 한체대와 경쟁하게 됐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과 대회 유치를 위해서는 연맹이 직접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연맹 후원사인 현대자동차와 함께 슬라이딩센터 안에 '봅슬레이 연구소'를 만들어 썰매와 썰매 날 등 장비 연구와 개발, 그리고 시험까지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강원도가 신속하게 협상에 나서 운영 주체를 누구로 할지 정하고 관리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 정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용 봅슬레이 감독그런데, 기자회견에서 이용 감독의 충격적인 답변은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는데, 지금까지 평창 올림픽에 대비해서 상비군 팀을 운영해왔는데 대한체육회에서 등록 선수가 적기 때문에 상비군 팀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유망주들의 산실인 상비군 팀이 해체되면 한국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의 미래는 없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봅슬레이-스켈레톤 상비군 팀은 2016년부터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아 운영됐습니다. 규모는 선수 15명, 지도자 4명입니다. 이들은 한국 썰매 종목의 미래로, '제2의 윤성빈'으로 기대를 모으는 남자 스켈레톤의 정승기 선수(관동대 1학년)도 상비군에서 훈련해 왔습니다. 그런데 상비군을 운영하는데 소요되는 한 해 8억원의 비용을 아끼기 위해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바로 해체한 것입니다. 썰매 종목 실업팀은 강원도청 한 곳 뿐이고, 대학팀도 한체대와 관동대 밖에 없는 저변이 취약한 상황에서, 상비군 팀의 운영은 썰매 종목 발전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상비군 선수들은 대표 선수들처럼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체계적으로 훈련할 수 있었고, 대표팀 훈련 파트너 역할도 해오며 국가대표의 꿈을 키워왔습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의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뿔뿔이 흩어진 것입니다. 당장 훈련할 곳도 없어졌습니다.

평창 올림픽에서의 쾌거를 발판으로 썰매 강국의 지위를 이어가고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평창 슬라이딩센터의 사후 활용과 썰매 종목의 저변 확대,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어렵게 된 것입니다. 올림픽의 기쁨과 영광은 잠시. 한국 썰매는 폐막 열흘도 안 돼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4인승팀의 파일럿 원윤종과 푸시맨 전정린, 브레이크맨 김동현도 이런 현실에 한 목소리로 안타까움을 토로했습니다.

"간신히 슬라이딩센터가 생기고 저희가 실전 훈련을 할 수 있는 장소가 국내에 유일하게 생겼는데 이제 올림픽 이후에 그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하면 정말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즌 전에 주행 훈련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면 다시 과거처럼 외국에 나가서 해외 썰매장을 빌려야 하고 거기서 훈련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것은 분명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기를 뛰어야 국가대표 선수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대회가 국내에서도 유치됐으면 좋겠는데 만약에 슬라이딩센터가 폐쇄되면 그런 기회조차 없어질 뿐더러 이제 아시아에서 조금씩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이 싹을 트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 싹마저 이제 다 없어지고 죽어버릴까봐 우려가 되고 걱정이 됩니다. 저희가 이번에 좋은 결과를 낸 만큼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 정말 저희가 훈련할 수 있게끔 경기할 수 있게끔 도와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원윤종

"지난 10년간 많은 변화를 느꼈고 그 속에서 희망을 봤고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는데 경기장을 폐쇄한다는 것은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이제야 희망을 알았고 이제야 어떻게 하면 더 발전하는지 알게 됐는데 다시 되돌아간다는 것은 시대를 역행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안타깝고 앞으로 저희 뿐만 아니라 많은 후배들이 함께 발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습니다. 앞으로 확실한 발전 방안이 나온다면 저희가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김동현

"봅슬레이 4인승 메달은 단지 저희 4명이 딴 게 아니라 전체 팀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한테도 많이 얘기했어요. 우리가 메달 따면 더 많은 지원을 받게 되고, 같이 열심히 훈련할 수 있다. 이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저희가 당장 3월 15일부터 진천선수촌에 입촌해 훈련을 시작하면 몇몇 선수들은 못 볼 것 같아요. 왜냐하면 상비군 선수들 중에 참여를 못 하는 선수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그 선수들한테 미안하고 볼 면목이 없고 다시 같이 운동했으면 좋겠습니다." - 전정린

그동안 평창 올림픽 준비를 위해 상비군 선수 3명이 국가대표팀에 합류해 훈련 파트너로 함께 땀 흘려왔는데 이번에 상비군이 해체되고 지원이 끊기면서 이들 3명은 더 이상 함께 훈련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에 대해 전정린 선수가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봅슬레이 4인승이밖에도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이 평창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스켈레톤 윤성빈)와 은메달 1개(봅슬레이 4인승)를 따는데 크게 기여했던 외국인 코치 7명도 모두 계약이 종료돼 자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들과 재계약 여부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한 상황입니다.이용 감독과 선수들이 늘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번 평창올림픽은 한국 썰매 종목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불과 8년 전까지만 해도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렸던 불모지에서 시작해 평창 올림픽에서 기적을 쓴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은 어렵게 일궈놓은 썰매 강국의 위상을 이어가기 위해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을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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