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오구라 컬렉션 환수, 이제는 정부가 나서라"

김명진 기자 kmj@sbs.co.kr

작성 2018.03.03 11:0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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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있는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방 하나, 거실 하나 자그마한 오피스텔입니다. 대표인 혜문 스님이 반갑게 취재진을 맞아줍니다. 내부는 깔끔하게 정돈돼 있습니다. 거실엔 수백 권 문화재 서적과 사진 자료가 빼곡합니다. 그가 모시는 불상 앞에서 차 한 잔을 나누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의 성과가 우선 궁금합니다. 도대체 몇 점이나 되는 문화재를 되돌려 받았을까?

여기에 2013년 문정왕후어보, 2014년 대한제국 국새 반환까지 합치면 모두 4건, 유물로는 1천 3백여 점 환수에 성공했다는 설명입니다. 모두 국보, 보물급 유물들입니다.

거저 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 여기 있어요." 하면서 순순히 내주지 않습니다. 발로 뛰고, 또 뛰었습니다. 약탈당한 것은 분명한데 워낙 오래전 일이어서 자료가 남아 있질 않습니다. 증언해 줄 사람도 자꾸 사라져 갑니다. 수년간 현지 도서관을 뒤지고, 관련자들을 탐문 했습니다. 때론 소유자를 설득하고, 때론 재판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시민들과 손잡고, 국회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시위일본 정부에 의궤반환 촉구문화재 환수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 번 치고, 두 번 치고, 세 번 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틈새가 보이더라는 겁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파악한 우리의 국외 문화재는 16만 8천 330점에 이릅니다(혜문은 근세 이후에만 1백만 점이 넘는다고 말합니다만). 일본이 7만 1천여 점으로 가장 많고, 미국 4만 6천여 점, 그리고 독일과 중국이 각각 1만여 점씩이나 갖고 있죠. 이 많은 문화재를 모두 환수할 수 있을까요?

혜문 스님의 목표는 현실적입니다. 우선, 외세의 약탈이나 도굴, 절도처럼 부당하게 반출된 문화재가 환수 목표입니다. 그중에서도 불법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아직 남아 있는 문화재가 직접 대상입니다.
 

조선 대원수 투구조선 제왕 갑옷조선 국왕 익선관위 유물들은 이른바 '오구라 컬렉션'의 일부인데요, 고대 왕릉에서 출토됐거나 조선 국왕이 소유했던 국보급, 보물급 문화재들이죠. 일제 강점기 '도굴왕' 별명을 갖고 있던 오구라가 갖은 불법을 동원해 수집했다가 해방 직전 제 나라로 빼돌렸습니다. 현재 도쿄 국립박물관이 기증받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65년 한일협정 당시에도 '사유재산'이란 이유로 환수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이제 '국립' 박물관이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우리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혜문은 이 밖에도 오쿠라 호텔에 있는 고려 석탑과 평양 율리사지 석탑, 미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 중인 라마탑형 사리구, 중국 뤼순 박물관의 금강산 종에 대해서도 반환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율리사지 탑 (일본 오쿠라 호텔 소장)라마형탑 사리구 (미국 보스턴대 소장)최근엔 미 하버드 대학교에 있는 '핸더슨 컬렉션'에도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레고리 핸더슨은 6·25를 전후해 주한 미대사관 직원으로 근무했던 인물인데요. 한국의 고관대작들한테서 뇌물, 선물로 받은 고려청자 등 도자기 150여 점을 미국으로 빼돌렸습니다. 혜문은 불법 반출의 뚜렷한 증거를 찾았다고 말합니다.
핸더슨 컬렉션 도자기들 (미국 하버드대 소장)


달변입니다. 논리정연하고 막힘이 없습니다. 정부의 문화재 환수 방식과 태도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며 거침이 없습니다. 날짜 하나, 수치 하나까지 소상히 기억하더군요. "문화재 환수는 단지 '우리 것이니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소유 운동이 아니다"는 지론이 참 인상적입니다.
 

혜문은 스님이면서도 스님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비승비속(非僧非俗)'이라 말합니다.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석사를 마친 1998년 '부처님과의 인연'으로 봉선사로 출가했다가 만 18년 만에 불문을 나왔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에 복잡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 또한 '인연의 고리'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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