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악마를 다시 만나도, 도망치는 건 내가 아닐 수 있도록"

권애리 기자 ailee17@sbs.co.kr

작성 2018.03.03 10:11 수정 2018.03.04 19:5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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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문단_내_성폭력'이란 소셜미디어상의 해시태그 묶음으로 번졌던 문단 내 성폭력 폭로의 바람은 일단 문학계의 해묵은 구조적 문제들을 바꾸는 태풍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 [8뉴스] 2년 전 미투 '#문단_내_성폭력'…구조는 안 변했다

그러나 분명히 '제한적인 성과'들을 낳았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 성과 중 가장 의미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폭행과 협박을 일삼던 한 전직 예고 교사를 법정에 서게 해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게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심 판결이 곧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 성범죄 관련해 징역 8년의 중형이 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이 '스승'이 장기간 어린 학생들에게 일삼았던 협박과 "나를 통하지 않고 문학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철저히 위계를 이용해 저질렀던 반복적, 변태적 성폭행을 여기서 다시 거론하지 않아도, 그 죄질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일을 '#문단_내_성폭력'이 거둔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라고 여기는 것은 단지 그 가해자 한 사람에 대한 처벌이 이뤄질 것으로 보여서가 아닙니다. 법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일종의 '추문'으로만 돌다 끝났다면, 그는 '추문'이 가라앉길 기다리다 다시 작품을 냈을 것이고, 그러는 사이 '추문'은 조금씩 '헛소리'로 윤색됐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그는 슬그머니 어느 예고의 교사 또는 대학교수가 되어 다른 '제자'들에게 똑같은 짓을 반복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단 언저리에서 피해자들을 다시 마주쳤을 겁니다. 연배나 경력상, 가해자가 어느 문학상의 심사위원이고 피해자는 후보작을 출품한 작가 같은 상황일 수도 있겠죠. 문학창작기금 같은 공모의 심사위원과 신청자로 만날 수도 있겠습니다.

지나친 비약, 상상의 나래 아니냐고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한 곳에서 정확히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용기 있게 나서서 폭로하고 고소하고 법정싸움을 벌임으로써, 피해자들 스스로 범죄자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비로소 마련한 겁니다.

이 소송을 맡고 있는 호루라기 재단의 이선경 변호사를 인터뷰했습니다. 이 변호사의 주장은 명확합니다. 1) 지금 '미투'에 나선 피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은 소송을 감당할 경제적 지원이고, 2) 분위기에 휩쓸려 잠깐씩 거론되다 상황을 피하곤 하는 '거물 범죄자'들이 다시 범행을 저지를 수 없게 하려면, 그들이 '바람'이 지나간 후에도 권력을 잡을 수 없도록 법적, 공적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선경 변호사와 나눈 얘기와 다른 취재 내용들을 엮어서, 최근 상황에 대한 다른 취재파일을 쓰기 시작했던 거였습니다. 그런데 글을 쓸수록, 혹시 지금, 오랜 시간 혼자서 눌러왔던 용기를 내 세상에 말한 뒤 각오했던 이상의 공황 상태에 놓였거나, 반대로 본인이 당한 '범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여전히 혼자서만 속앓이를 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막연한 공포나 거리감 때문에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걸 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습니다. 일단 기사로 무료 법률상담을 한 번 받아본 셈 치고 읽으셨으면 하는 생각에, 인터뷰 취재파일로 다시 씁니다. (성폭력에 대한 우리의 사법체계 안의 문제는…또 다른 장이 필요한 이슈라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 (기자) 성폭행 피해 사실을 세상에 공개한 분들 중 지금 큰 두려움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다. 사실을 알렸지만, 이 분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몇 달 뒤 가해자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경우를 '#문단_내_성폭력' 이후 여럿 봤기 때문이다.

▶ (이선경 변호사) 그런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말씀드린다. 일단 아주 유명인들은 고소를 안 할 거다. 왜냐하면, 명예훼손 고소를 하게 되면 그게 명예훼손이 맞는지 여부에 대해서 강제수사가 시작되니까. 그런데 덜 유명한 사람들이 고소할 수 있다. '#문단_내_성폭력' 때도, 덜 유명한 사람들이, 바로는 안 하고, 몇 달 있다 고소들을 하더라.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실제 명예훼손으로 판결 난 건은 거의 없다. 물론, 조사를 받으러 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 내가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과 수사기관에 가서 피의자 조사받는 방식으로 수사를 당하게 되는 건 크게 다르다. 그것 때문에 두려워하시는 건데, 그렇다고 명예훼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폭로를 하면 안 되는 건 아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가 존재하긴 하지만, 실제로 폭로가 허위 사실로 판명된 경우에만 명예훼손으로 처벌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 최근의 판례들에선 사실을 말했다고 처벌을 받진 않는다는 건가?

▶ 정확히는, ('명예훼손'은) 비방의 목적이 있어야 처벌받는다. 공익적 목적이 있다고 판단되면 비방 목적은 인정되지 않는다. 내가 속해 있는 작은 커뮤니티를 위한 공익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예를 들어 '(성폭력을 저지른) OO은 우리 동아리의 장이 되어선 안 된다' 이 정도의 목적이라도 인정해 준다. 지금 나와 있는 미투 폭로들은 이 공익 목적을 인정받기가 매우 쉬울 거다.
 
다만, 이게 허위사실이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성폭행 이후에도 단둘이 여행을 가서 즐겁게 놀고 있는 사진이나 연인 관계에서나 오갈 법한 다정한 문자가 남아 있으면 허위 사실이 되는 거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조직에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행사나 결혼식 같은 데 같이 참석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남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런 게 허위의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 걸 가해자들이 사건에서 증거로 많이 낸다. '내 생일파티에, 결혼식에 얘가 왔었어요' 하면서 사진을 낸다든가…. 그런데 그런 정도를 가지고 피해자의 주장을 허위라고 보진 않는다.

경찰이나 변호사와 상담을 받아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정확히 알아보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사실을 말했는데도 무고나 명예훼손에 걸리면? 부모나 주변에서 알게 되면? 이런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정신과 상담받는 분도 많다. 그런데 내가 얘기한 게 사실일 경우, 그렇게까지 되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기자가 알려주면 참 좋겠다.

지금 유명인사 중 (한숨) A씨가 가장 영리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분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과 피해 정도가 이윤택에 버금간다는데, 지금 이 사람이 제일 영리하게 사과하고 빠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문단 내 성폭력 폭로 당시, 그렇게 구구절절하게 사과문을 올렸던 예고 교사 역시 법정에서는 "그때 사과문을 올린 건, 경황이 없었던 때에 주변 지인들이 '사과문을 빨리 올리는 게 좋지 않겠냐' 조언해서 그냥 올린 거다. 그게 내 죄를 인정한 건 아니다" 그러면서 계속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말 바꾸기에도,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제일 좋은 건…사실 폭로는 피해자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상태에서 폭로하는 게 좋다.

▷ 그렇지만, 사실을 말했을 때 결과는 명예훼손이 되지 않더라도, 그걸 입증하는 과정이 지난하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 그렇게까지 지난하진 않은데. (경찰 등에) 한 번만 갔다 오면 된다. 물론 변호사나 기자 같이 경찰서 좀 다녀본 사람들에게나 간단한 일로 느껴지는 거고, 그런 일로 불려다니는 것 자체가 힘드신 건 안다…. 그러나 현행 법제 안에선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가해자를 사회적, 법적으로 단죄하려는 상황 아니냐. 수사는 수사기관에서 해야 하는 것이고."

▷ 문단 내 성폭력 때 예를 보면, 피해자가 (수사기관은 두렵고) 마땅히 찾아갈 곳이 없으니 SNS로 폭로를 해서 응원을 조금 얻다가 흐지부지된 경우들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폭로를 함으로써 가해자가 준 상처에 반격한 것보다, 가해자가 나중에 무고나 명예훼손 소송을 이용해 나를 상처입힐 수 있는 정도가 더 크다, 는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다.

▶ 보통 사람이 경찰서 한 번 가는 게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마음속의 막연한 두려움이 더 클 수도 있는 것 같다. 그 두려움 때문에 폭로를 못 하거나, 신고를 못 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피해자의 실명을 건 폭로를 권하는 건 아니다.

▷ 현행 법제 안에서 피해자를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은 뭐가 있을까.

▶ 저는 정말 피해자의 실명을, 얼굴을 공개하는 폭로를 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명을 공개해야지만 그 사람의 진술을 신뢰하는 듯한 분위기는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피해자가 실명을 공개하지 않으면 폭로의 신빙성을 인정받지 않는 분위기까지 갔는데…진짜 이러면 안 된다. 금기를 깬 거다. 인권위에 이것 관련해서 내가 공문도 보냈다. 가해자의 징역 8년을 받아낸 10명 가까이 되는 예고 피해 학생들, (SNS로 익명 폭로하고 고소한 뒤에도) 아무도 모르지 않나. 그래도 가해자 교사 감옥에 보내고 할 거 다 했다. 그리고 그 뒤에도 자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실명폭로,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또, 폭로를 해놓고 나면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실명 폭로를 하신 분들은 심리상담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생각해 봐라. 상사에 대해 동료들에게 뒷말을 좀 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내 게시판에 실명으로 상사에 대한 욕을 올린 다음에 출근했다고 생각해 봐라. 그런데 세상에 대고 실명 폭로를 한 피해자들은 그것과도 비교도 되지 않는 공황에 빠진다.

▷ 게다가 문단 내 성폭력 폭로 이후, 일각에서는 '그렇게 폭로가 이어졌지만, 가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까지 이어진 경우가 너무 적었다. 결국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반면 내가 겪은 괴로움은 너무 컸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면서 문단 내 성폭력 움직임이 흐지부지돼 버린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 말고, 현행 제도 자체에서 보완해야 할 것은 없을까.

▶ 문단 사건 터졌을 때도, 문단만 나왔던 게 아니라, 미술계 분들도 절 찾아왔었다. 그런데 처벌받은 사람이 몇 명 없는 건, 실제 고소까지 한 사람이 몇 명 없기 때문이다. 폭로한 뒤에 (피해자들이) 정작 가해자를 형사고소는 별로 안 하고, 그냥 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많이 당했다. 그러니까 처음에 사과했던 가해자들까지, '가만 보니 내가 감옥도 안 가네?' 하면서 치고 나온 게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일련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중에 형사처벌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변호사든, 경찰이든, 검찰이든, 피해자가 제 발로 찾아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못 한다. 저도 이런 사건 많이 하시는 형사, 검사들과 통화하면서 지켜보고는 있는데, 피해자들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까지는 하셔야, 도와드릴 수 있다. 그래야 수사가 시작이 된다. 앞으로 아까 말한 A씨 사건이 아무리 터져도, 수십 명의 폭로가 이어진다 해도, 단 한 명이 그를 수사해 달라고 하는 게 필요하다. 그냥 이러고 말면, 유야무야 될 거다. 그리고 (가해자들) 부자들 아니냐. 인맥 빵빵하고. 그냥 이윤택 하나, 누구 하나 날아가는 걸로 끝나면, 그 자리에 제2, 제3의 주니어들이 가서 앉게 된다. 그러면 그냥 의자의 주인만 바뀌는 것이다. 기왕 용기를 냈으면, 고소를 꼭 결정하진 않더라도, 경찰관에게든 변호사에게든 상담을 한 번 받아보셨으면 좋겠다. 본인이 주장하는 피해사실이 처벌이 가능한지 진지하게 상담을 해보셨으면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가장 영리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 A씨, 본인 소유의 이것저것 많지 않느냐. 자신이 대표를 사퇴하면 다른 사람 하나 자기 자리에 앉히고, 엔터테인먼트 회사 하나 따로 차리고, 자신은 해외에 나가 몇 년 놀다 돌아오면, 그 사람 자리 없어지지 않는다. 감옥에 갔다 와야 비로소 그의 자리가 날아갈 것이다. 그러면 각종 법령에 따라 법인의 임원이 못 될 테니까. 그걸 위해서, A씨가 사과야 100번이라도 더할 수 있는 거다. 유명한 B작가도 사과했잖아요? 그리고 지금 건재하다. 아무 제한도 안 받고 있고. 아예 싸우지 않거나, 싸우려면, 사생결단을 하지 않으면, (문단 때와) 비슷해질 수 있다…. 지금 솔직히 타이밍이 좋다.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수사할 준비가 돼 있다. A씨 피해자의 경우 비공식적으로 내사가 이뤄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형사고소를 하든, 접근금지 약속이라도 받든, 이 사건과 관련해 다시 다른 사람들한테 (꽃뱀으로 몬다거나 성관계 합의가 있었던 척하는) 허위사실 유포하는 것 금지시키든. 이런 다양한 방법으로 각서라도 좀 받아라. 그래서 어디서 다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내가 피하는 게 아니라 A가 나를 피하게 해야 한다. 앞으로 내 앞에 나타나면 나타날 때마다 1억씩 내라, 이렇게 공증이라도 받아라. 그래서 앞으로 나의 남은 인생 동안 A를 만나면 내가 도망치지 않을 수 있도록. 형사고소를 안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라도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건 해놔야 되는데, 이런 걸 잘 모르신다."

▷ 지금 정부가 피해자들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역할은 뭐라고 보는가?

▶ 정부가 피해자 지원 매뉴얼을 만든다고 하는데, 필요한 일이지만, 당장의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당장 필요한 건 피해자들에 대한 생계비, 그리고 법률비용 지원이다. 피해자가 한두 명이면 변호사들이 봉사 좀 할 수 있지만, 지금 대충 헤아리기만도 2~300명이 된다. 그러면 개별 변호사들이 그걸 희생과 헌신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생계비, 정신과 치료비, 법률상담비라도 시급히 지원해서, 이 공포스러운 한 달 만이라도 버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상담사실 확인서나 정신과 치료 기록 끊어가면 의료비 지원하는 방식 등이 있다. 제가 지난해에 펀딩을 한 번 해서 그런 지원을 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에겐 이게 절실하다. 가난한 연극인들이고, 지금 패닉일 것이다. 생각해 봐라. 이 사람들에게 주는 지원금은 그냥 돈이 아니다. 내가 너를 믿고, 너를 도울 것이다, 너를 지지할 것이다, 란 뜻이 된다. 생계가 안된다면 의료비 지원, 법률비용 지원이라도 하는 거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권력의 문제다. 성범죄만 있는 게 아니라 임금도 제대로 안 줬다. 갑질, 막말…. 성폭력이 따로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횡포 안에 있는 문제였다. 그걸 개개인의, 또는 개별 커뮤니티 안의 자정 노력만으로 바꿀 수 없다. 지난해 고은 시인 아시아문화페스티벌 위원장 했다. 문체부가 그 자리에 앉혔다. 지난 몇 년 동안 이윤택에게 흘러 들어간 공적 기금을 봐라. 국가가 집행하는 기금이나 주관하는 행사의 장, 또는 대학교수, 이런 자리에 이런 사람들을 앉히지 않으려는 노력을 국가가 할 수 있지 않은가.

▷ 참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 말씀하신 예술인들이 업계에서는 소문이 자자했던 사람들이라고는 하나, 사실 그동안은 딱히 피해자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그냥 소문만 있는 상태에서, 어떤 사람에게 소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공적 지위나 기금 지원에서 바로바로 배제하는 것도 부당한 취급을 받는 사람이 나올 수 있는 소지가 있지 않은가.

▶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소문이 그토록 있었으면, 확인을 하는 게 맞다. 소문이 도는데 확인도 안 해 온 게 문제다. 그리고 그럼 감태준 시인은 뭐냐. 성추행으로 해임됐고, 대법원까지 가서 성추행으로 인한 해임은 정당하다는 판결까지 나온 지 몇 년 됐는데, 그런 사람을 시인협회장으로 또 뽑았다. 몰랐다는 거냐. 시인협회장이 협회장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지 않느냐…그 명함을 갖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게 된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공동체에서 높은 자리를 주고…그러니까 그들이 계속 그러는 거다. 부끄러움 없이. 누가 나를 고소하겠느냐, 하면서.

물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사실 우리 사무실에도 있는 사진작가 C의 사진, 그에 대한 소문은 나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피해자가 나오지 않으니 (개인인 본인이 사실을 명확히) 알 수는 없었지. 지금 고은 시인에 대한 소문들도 전에 들으면서, 나 죽기 전엔 아무도 안 나오겠지 했는데 최영미 시인이 나왔다. 그런데 고은은 지금도 사과 안 한다. 가만히 물타기 하고 있다. 몇 년 후에 슬쩍 나올 거다, 아마도. 그래서 저는 고은 시인에 대해서도 누군가 고소하는 사람이 나오길 기다린다. 명확한 판결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 문화예술계의 경우, 피해자들과 법률가들을 이어주는 창구나 기구가 필요해 보인다.

▶ 여성문화예술연합에서 지난 1년간 그런 주장을 계속해 왔는데, 실현이 되고 있지 않다가, 이번에 문체부가 분야별로 신고센터 만들고 있다. 문단 내 성폭력 이후 계속 주장해왔는데, 안 만들다가, 갑자기 전격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아무튼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다행이겠다….

문화예술계의 실권은 문체부가 쥐고 있다. 아르코 문예진흥기금 같은 것 누구한테 줄 것인지 결정하는 심사위원을 임명하는 게 문체부 아니냐. 문체부에 권한이 없다면, 누구에게 권한이 있겠나. 문체부가 성폭력에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명확히 하면, 문체부의 지원을 받는 곳들, 출판사들, 문학상 주는 신문들, 그런 기조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강제력 비슷한 게 생기게 된다. 각종 기금 집행과 각종 장들의 자리를 제대로 선임하고 감독하는 걸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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