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해군·해병대 끼워 맞춘 5·18 특조위…"3군 합동작전은 소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8.02.08 16:01 수정 2018.02.09 13:1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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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발족한 국방부 5·18 특조위가 5개월의 장정을 마치고 조사 결과를 어제(7일) 발표했습니다. 특조위가 1번 조사 결과, 즉 최대 성과라고 내놓은 것은 "육·해·공 3군의 합동작전으로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했다"입니다. 육군 특전사만이 아니라 해군과 공군도 치밀한 작전 계획 하에 광주 진압을 위해 병력과 화력을 운용했다는 뜻입니다.

아닙니다. 조사가 부실하다 보니, 없는 부대 들이밀어 억지로 끼워 맞춘 잘못된 주장에 불과합니다. 해병대는 5·18 진압에 참여한 적 없고, 해군 함정도 동원된 근거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공군 전투기들의 출격 대기는 목적지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이미 기정사실이었던 헬기 기총 사격만 기존 증인들과 군 자료를 통해 재확인했습니다. 그럼에도 특조위는 성긴 논리와 근거를 토대로 3군 합동작전으로 광주가 진압됐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특조위는 불행한 역사의 생채기를 키웠습니다. 5·18 진압과 관련해 추정과 소문의 영역을 조사해봤더니 확인이 안 된다면 역사의 다행입니다. 일 못 했다고 특조위 탓하지도 않습니다. 확인도 안 된 소문을 사실처럼 부풀리면 5·18 전체의 역사적 의의를 훼손할 뿐입니다. 인위적으로 역사의 불행을 증폭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309편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5·18 특조위는 "계엄사가 시민군 도주를 막기 위해 해군 309편대를 출항시켜 해상봉쇄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내용은 2군 계엄사령부의 80년 5월 22일 계엄상황일지에 나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해군 편대 하나 띄워서 해상차단, 해상경계도 아닌 해상봉쇄작전을 한다는 말부터가 어폐입니다.

확인 결과 해군 309편대는 80년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현재도 그런 편대는 해군에 없습니다. 특조위가 309편대를 인용할 생각이 있었다면 해군 측에 편대의 구성과 편대의 작전일지 등을 요구하는 최소한의 확인작업이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38년 만에 5.18 역사를 제대로 쓴다면서 유령 편대를 등장시키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취재파일] 해군·해병대 끼워 맞춘 5·18 특조위…'3군 합동작전은 소설2군 계엄사령부의 계엄상황일지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수로 편대 명칭을 잘못 썼을 수도 있고, 당시 담당 장병이 없는 내용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엉성하게 작성된 당시 5·18 당시 군 작전일지는 종종 발견되고 있습니다.

● 해병 33대대는 광주로 가지 않았다

특조위는 해병대의 광주 진입 계획 확인도 성과 중 하나라고 발표했습니다. 마산에 있던 해병 33대대가 광주로 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는 주장입니다. 이 역시 단정할 수 없습니다. 

특조위는 출동명령서 한 장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진술을 청취했다고 밝혔습니다. 이건리 특조위원장은 어제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33대대장과 장병들을 조사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33대대장이었던 박 모 예비역 장군은 "특조위 조사는커녕 특조위의 전화 한 통 받은 적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3연대장과 1사단 작전참모 등도 "조사받은 일 없다"고 확인했습니다. "정황상 광주로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하는 예비역 장병들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병 33대대가 광주로 갈 계획이었다고 결론 내릴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계엄사는 해병대를 광주에 보낼 생각조차 안 했을지도 모릅니다. 1979년 10월 부마 민주화 항쟁 때 일입니다. 해병 33대대와 어깨를 맞대고 있는 부대인 해병 1사단의 7연대의 71대대, 71대대, 73대대가 부산에 투입됐습니다. 7연대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의 강제 진압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7연대의 진압 방식은 '비무장 무력(無力) 행진'이었습니다.

7연대 장병들은 끈으로 서로의 팔을 동여매고 천천히 전진했습니다. 시위대가 던지는 벽돌과 돌멩이를 묵묵히 맞았습니다. 앞줄이 돌 맞아 쓰러지면 뒷줄이 나섰지만 이등병은 철저히 열외였습니다. 입대하자마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주입되는 '백성에게는 양, 적에게는 사자'라는 구호를 실천한 것입니다. 

● 특조위, '부실한 조사' 스스로 인정

어제 특조위의 발표로 해군, 해병대도 5·18 진압 작전에 참여했다는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이건리 특조위원장은 "5·18 특조위의 과제가 헬기 사격과 전투기 출격 대기에 맞춰져 있고, 조사기한에 제한이 있다 보니 해군, 해병대의 합동작전 참여에 관한 부분은 자세히 조사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위원장 스스로 보기에도 부족한 조사였습니다. 그럼에도 특조위는 해군과 해병대의 5·18 합동작전을 단정해서 역사로 만들었습니다.

공군 전투기 출격 대기 의혹도 그냥 의혹에 불과했습니다. 5개월 동안 특조위가 뒤져봤지만 '광주로 간다'는 뚜렷한 근거는 못 찾았습니다. "당시에 정황상 광주로 갈 것 같았다"는 몇몇 퇴역 조종사들의 진술이 전부였습니다. 소문의 진앙지에서도 소문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공군 전투기가 5·18 진압에 참여했다는 역사적 불행이냐, 공군 전투기는 5·18 진압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다행이냐의 선택 앞에서 특조위는 결정을 못 내렸습니다.

반면에 특조위는 제대로 조사 못 해서 근거도 가짜인 해군, 해병대의 5·18 진압 참여라는 역사적 불행은 과감하게 선택했습니다. 특조위는 조사 결과를 철회하든지, 다시 조사하든지, 적어도 해군과 해병대에게 사과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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