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 "정원 60명 배에 1만 4천 명 탑승"…'기적'의 흥남철수작전
...나섰는데 당시 미군의 병력은 총 3만명이었어. 반면 중공군은 총 12만명이었어. 1대 4로 싸운 셈이야. 그때 상황은 73년 전, 이 전투에 참전한 분께 직접 들어볼게.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학생들 소집하는 바람에, 학교 가는 도중에 징집돼서 군인, 카투사가 됐습니다. 카투사 1기 입니다. 우리가 겁을 좀 냈었어요. 왜냐면, 우리는 아군이 부상당하면 먼저 아군을 구하려고 하는데, 중공군은 총을 맞으면 시체들 위로 넘어오는 거예요. 죽어도 말이죠. 중공군은 후퇴가 없었어요. 들어올 적에 말이죠.&' -류영봉(92 세), 당시 이등 중사/장진호 전투 참전 중공군은 '인해전술'(우 세한 인력을 바탕으로 희생을 고려하지 않고 계속 공격하는 전술)로 밀고 내려왔어. 수적 열 세를 극복하기 힘들어. 이 전투의 더 큰 복병은 '추위'였어. 당시 장진호 일대 평균 기온은 영하 30도, 최저기온은 영하 45도였어. 사람도 무기도 차량도, 모든 게 얼어붙었어. &'군인들은요 거의 다 동상 걸린 거예요. 살았던 사람들도 말이죠. 피를 흘리면 피가 응고돼서 얼어서 그대로 죽은 사람도 많고. 들것에 들고 나오면 얼어붙어서, 앉아있는 걸 앉혀 놓으면 그대로 얼어버립니다.&' -류영봉(92 세), 당시 이등 중사/장진호 전투 참전 추위로 인한 사상자가, 전투로 인한 사상자보다 더 많았대. 인류역사상 가장 추운 전투였다는 말도 있어. 결국 UN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철수 명령을 내렸어. 작전상 후퇴를 감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야. 그런데 아주 큰 문제가 생겨. 육로가 끊긴 거야. 중공군 인원이 너무 많으니, 사방이 중공군이야. 퇴로가 없어. 그래서 흥남부두를 통해 바다로 나가기로 했어. 그렇게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흥남철수작전'이 시작된 거야. 무려 10만명의 군 병력이 흥남부두로 이동했어. 피란민들도 흥남으로 향하고 있잖아? 이 피란민들, 북한에서 왔잖아. 승기는 중공군과 북한군이 잡고 있는데, 왜 피란을 떠나는 걸까? 국군과 UN군이 이 지역에 왔을 때, 환영하고 협조한 민간인들이 있었어. 그런데 다시 북한군이 점령하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거야. 그리고 또 한 가지, 원자폭탄이 투하된다는 소문이 돌아. &'트루먼, 원폭 투하 신중 검토 중. 아직 명령은 미정&' -1950.12.01 '워싱턴 포스트' 기사 중 이런 이유로, 대탈출이 시작된 거야. ▲ 생이별의 현장, 20만 명의 피란민 칼바람이 부는 12월. 인재네, 정숙이네는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걸음을 옮겼어. 이렇게 이동하며 가장 무서웠던 건, 추위도 배고픔도 아니었어. &'머리에 이고 손에 짐 들고 했는데 손 놓칠 수 있죠. 손 놓치면 그걸로 끝입니다. 뒤에서 사람들이 막 밀고 하니까.&' -이인재(79 세) 당시 6살 &'생이별 하는 사람들 많아요. 손을 놓쳐 가지고. 연속극에 나오는 거 거짓말이 아니야. 진짜야. 그렇게 됐어. (안 잃어버리려고) 붙는 정도가 아니지. 묶다시피 했지.&' -임정숙(85 세), 당시 11살 인재네 가족이 힘겹게 길을 가고 있는데, 뭔가 이상해. 인재네 가족은 총 10명인데, 중간에 갑자기 12명이 됐어. 두 명은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그냥 인재네 가족이 챙긴 거야. 그 난리통에 아이들을 구해야 하니까. 험하고 정신 없는 피란길, 이런 식으로 가족과 헤어지는 경우는 정말 많았어. &'같이 피란 오다가 걸어오니까, 딸이 6살인가 먹었거든요. 어떤 아저씨 같은 사람이 그래. '아이고 아가야, 힘들겠구나. 다리 아프지? 내가 좀 업어줄까?' 그러니까 딸이 좋아서 얼른 업히는 거예요. 아저씨가 업고, 난 따라가고, 한참 가다 보니까 그 사람이 없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런 생각하면 눈물이 나. 그런 생각하면 뭐해요. 소용 없는 건데 그래도 부모니까 마음이. 내가 낳은 자식이고 그러니까 생각이 나…&' -오학연 씨, 2010년 인터뷰 中 인재, 정숙이 영숙이 같은 어린 아이들도 알았대. '지금 여기서 뒤쳐지거나 헤어지면 큰일난다'라고. 그래서 힘들다고 말도 못해. 얼굴이 얼어 붓고 발이 퉁퉁 부어도, 아프다고 말도 못해. 1950년 12월, 흥남부두까지 가는 길은, 몸도 가슴도 모두 시렸어. 그렇게 두 가족은 걷고 또 걸었어. 그리고 흥남부두에 도착했어. 이제 탈 배를 구해야해. 그런데 두 가족은 눈 앞에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어. &'모래 수인지, 사람수인지 몰라요. 바닷가니까 모래사장이 있어야 하는데 전부가 사람이었으니까. 아마 그거는 헤아릴 수 없을걸. 내가 그때 어려서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야. 실황이 그랬어.&' -임정숙(85 세), 당시 11살 &'눈 닿는 데까지 전부다 피란민. 동서남북 다 피란민으로 꽉 찼으니까요. 둘러보면 그냥 사람이 온 부두에 사람이 꽉 찼던 거죠.&' -이인재(79 세) 당시 6살 그렇게 흥남부두에 모인 사람들은 무려 20만명이었어. 이 사람들, 전부 탈출 할 수 있을까? 너무 춥고 배고픈데, 정숙이네도 인재네도 그저 항구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야. 밤이 되면, 하늘에서 함포 사격 소리가 들려. 중공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미군 함정에서 포를 쏘고 있어.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피란민들 머리 위로 포탄이 수없이 날아다녀. 근데 어린 정숙이는 그걸 보며 불꽃 같다고 생각했대. 그만큼 순수했던 거야. 전쟁의 고통, 아픔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니까. 그런데, 이런 피란민들이 유심히 보는 한 사람이 있어. 이름은 현봉학, 당시 미10군단 민사부 고문이야.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한 의사야. 그런 현 박사가 고민에 빠졌어. 미군이 이 많은 피란민을 다 배에 태워줄까, 싶은 거야. 배를 못 타면 이 수많은 사람들이 떼죽음 당할 텐데. 근데 미군 상황을 보니, 피란민들을 챙길 분위기가 아니야. 현 박사의 고향도 함경도야. 이 피란민들을 놓고 가자니,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기분이야. 결국 불가능한 도전을 하기로 해. 흥남철수작전을 책임지는, 미10군단의 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을 설득하자고 결심했어. 알몬드 장군은 '투스타' 계급이야. 이런 높은 사람이 일개 민간일을 만나주는 것도, 설령 만난다 해도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그래서 현 박사는 다른 사람을 먼저 찾아가. 이름은 에드워드 포니 대령. 당시 미10군단 부참모장으로, 해상 상-이륙 작전 전문가야. 현 박사는 포니 대령을 찾아가 피란민들을 배에 태워달라고 도움을 청했어. 포니 대령은 피란민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야. 그런데도 포니 대령은 현 박사의 말을 듣고, 적극 협조하기로 했어. 포니 대령과 현 박사는 알몬드 장군을 찾아가 설득했어. 현 박사는 &'장군님, 이들은 진심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신봉하면서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구출하지 않으면 공산당에게 모두 죽임을 당할 겁니다&'라며, 포니 대령은 &'장군님, 우리가 한국에 온 이유가 뭐였습니까. 이 사람들, 버리고 갈 순 없습니다&'라며. 그렇게 간절하게 설득하자, 알몬드 장군은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현재로선 군인들조차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어. 이 때 피란민 가운데에는 인민군 스파이들이 많이 섞여 있다는 소문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어. 전쟁 중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피란민을 탈출시킬 배가 부족하다는 거야. 철수해야 할 군인만 10만명이야. 피란민은 20만명이고. 총 30만명인 거야. 미군의 주력 수송함은, LST(Landing Ship Tank)라 불리는 전차 상륙함인데, 한 대의 정원이 200명 정도야. 그런데 30만명을 태우려면 LST가 1500척이 필요해. 근데 당시 투입 가능한 LST는 100척도 안돼. 물론 LST 말고 다른 배들도 있긴 하지만, 군수 물자도 실어야 하니 배는 턱없이 부족해. 일단 시간이 없으니, 군 병력부터 철수를 시작했어. 장진호 전투에서 용감이 싸웠던, 미 제1해병사단부터 배에 먼저 탔어. 그 뒤로도 속속 군인들의 철수가 계속되고 있어. 피란민은 이 상황을 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탄 사람들 중공군은 이제 흥남부두에서 16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함흥까지 왔어. 점점 피란민들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어. 피란민들 뒤에는 중공군이, 앞은 바다가 가로막고 있어. 사느냐 죽느냐,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갈림길이야....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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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2 |
방송/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