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취약성 1위' 한국, 극복 방안은? [SDF다이어리]
...있던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의 미·중 관계는 마치 큰 나무에 등나무가 얽혀 있는 형국인데, 등나무를 떼어 내면 큰 나무의 가죽도 벗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온 얘기가 '스몰 야드 하이 펜스(small yard high fence)'입니다. 미국은 모든 분야가 아닌 특정 분야, 특히 기술 집약적 분야, 신산업 분야를 스몰 야드로 정한 뒤, 이 영역에서만큼은 장벽을 높이 세워 중국을 완전히 고립시키고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동맹국에게도 이 흐름에 동참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투명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배터리 산업에서 미국이 어느 정도 중국과 분리할 것인지, 새로운 기술 혁신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가 높다면, 그래서 의존도를 줄이는 비용이 너무 크다면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 우리는 잘 고려해야 합니다. 미리 마련된 청사진을 가지고 대응하기보다는 국제 정세를 보면서 적응력(adaptability)을 키우고 민첩성(agility) 있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우리나라가 수입 취약성 1위, 다시 말해 공급망 교란에 가장 취약한 국가로 나타났는데, 원인이 뭐라고 보십니까?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과 국민 경제는 상품을 값싸고 우수한 품질로 만들어 수출하는 데에 최적화돼 있었습니다. 부품이나 원재료의 수입 구조가 우리에게 어떤 취약성을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고려를 해야 할 필요가 크게 없었습니다. 왜? 그 당시는 세계화의 시대였으니까요. 하지만 중국으로부터 사드 제재를 받고 일본으로부터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당하고 나서 '특정 국가에게 많은 것을 의존하는 게 효율적일 순 있지만 정치적 리스크가 클 수 있겠구나'라는 걸 알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안보의 시대가 왔음을 깨달은 거죠. 그런데 저희가 분석을 하다 보니,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 등 신산업이라 부르는 9개 분야에선 의미 있는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우리나라가 여전히 취약한 구조인 것은 맞지만 신산업에서는 상당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확인된 겁니다. 이 분야에선 우리가 4~5위 정도의 수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기술 경쟁이나 신산업 경쟁에서 우리가 상당한 수준의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다, 상대국에 맞서 중요한 방어 장치를 지니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Q. 수출 권력 1위인 중국과,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까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다만 중국의 공급망 지배력을 너무 과도하게 판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중국이 실제 물건을 만들어 전 세계에 유통하는 중요한 국가임은 틀림없지만, 기술, 아이디어, 디자인 등은 이 공급망 지배력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애플 제품이 최종적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로 뿌려지는 곳은 중국이지만, 애플 제품에서 가장 큰 이윤을, 가장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입니다. 독일, 일본, 한국도 애플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국가들로 큰 이윤을 가져가고요. 이 숨은 부가가치 흐름까지 우리는 함께 봐야 합니다. 원천 기술, 소프트웨어, 디자인 파워를 지닌 미국과, 제조의 중심인 중국이 우리에게 주는 이익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당장 수출에서 손해 보더라도 부가가치 증가가 기대되는 기술 선진국과 협업할 것이냐, 수출과 고용 증가를 위해 제조업에서 강점을 가진 국가와 협업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결국 위기를 관리하면서 경제안보에 맞는 전략으로 그때그때 대응해야 합니다. 이때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안보적 측면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 입장에선 안보적 존립 기반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Q. 경제안보 지수를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을 보완할 계획인가요? 지금까지 주로 상품 교역을 들여다봤다면, 정확성을 더 높이기 위해 핵심 부품, 원자재, 기업의 해외 직접 투자 등 미시적인 자료를 더 찾아 분석하려고 합니다. 또, 신산업 분야에서 누가 중요한 플레이어인가, 국가와 기업들이 어떤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느냐도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망 변화도 추가 연구 주제입니다. 저희가 발견한 것 중 하나는, 러시아에 수입을 의존하는 있는 국가들이 대러시아 제재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겁니다. 러시아에서 에너지, 곡물, 공산품, 무기를 수입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유엔 총회에서 진행된 여러 차례 투표에서 대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인 자세를 나타낸 거죠. 이를 통해 러시아 경제권이 다른 세계 경제권으로부터 이탈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임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자국에 의존적인 국가들과 더욱 친밀해질 것이고, 반대급부로 다른 나라들과는 관계가 멀어져 러시아권 블록의 고립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Q. 경제안보 관점에서, 나아가 기후 위기, 인구 고령화 등 복합 위기와 맞물려서 볼 때 우리는 어떤 방향성을 견지해야 할까요? 경제적 관계를 안보적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은 국가들이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충돌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거기에 참여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됩니다. 또, 경제안보를 지나치게 사용하면 상대국이 방어적인 수단으로 똑같은 자세를 취하려하기 때문에 무기 경쟁과 같은 소용돌이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가장 빠르게 성장한 나라 중 하나인 만큼 숨 쉴 수 있는 공간, '브리딩 스페이스(breathing space)'를 최대한 넓히는 게 중요합니다. 경제안보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 나라들끼리 자유와 규칙에 기반해 협력하는 이른바 '협력적 경제안보'를 확보해야 합니다. 세계 경제 10위권인 우리는 그런 밑그림을 그리는 데 훨씬 큰 존재감이 있는 나라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내부적으론 앞에서 언급한 적응력(adaptability)과 민첩성(agility)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 원인과 해결책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사회가 양분됐다면 쉽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고령화라든지, 저출생이라든지, 양극화라든지 지나친 대립은 우리의 민첩성과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겁니다. 사회적 합의와 신뢰를 모아낼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때입니다. 경제안보 때문에 피해를 입은 기업과 국민을 구제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안보적인 이유로 특정 국가와 무역이 끊길 경우 그건 개인의 사업상 실수나 경영 판단 잘못으로 빚어진 피해가 아니잖아요. 우리 사회가 이런 피해를 일정 부분 보상해 준다면 사회적 신뢰가 생길 수 있습니다. AI를 비롯한 신기술을 둘러싼 전 세계 경쟁이 뜨겁습니다. 여기에 미·중 패권 경쟁, 코로나 펜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례 없는 대전환기를 알리는 신호음이 곳곳에서 요란하게 울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한국은 경제 급성장에 따른 비용을 뒤늦게 치르고 있습니다. 효율과 시장 논리를 쫓다 '수입 취약성 1위'라는 값비싼 청구서를 받아 들었습니다. 최근엔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또다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미국의 한 석학이 머리를 부여잡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탄식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습니다. 여느 때보다 위기 극복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시기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경제안보가 우리에게만 닥친 과제는 아닌 것도 분명합니다. 우리는 외환위기를 보란 듯이 극복한 나라입니다. 올해 SBS D포럼(SDF)의 주제처럼 경제 패러다임을 다시 쓸 것으로 자신합니다. 아래는 박종희 교수의 말입니다. &'우리는 대외적 환경 변화에 굉장히 적응을 잘해 온 국가입니다. 오일 쇼크가 왔을 때 중동 건설에 뛰어든다든지, 중화학 공업화를 통해 자체적 산업화 기반을 확보했고, 3저 호황 때는 재투자로 새로운 전자산업을 육성했습니다. 중국이란 큰 시장이 WTO에 가입하자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으며, 거대 선진 경제권과 한발 먼저 동시다발적 FTA를 체결해 FTA 모범 국가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적응력과 민첩성. 우리가 세계 10위 경제권으로 올라선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미래팀 김지성 기자 jis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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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9 |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