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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참던 전공의의 발언과 울 수조차 없는 환자의 마음 [스프]

[주간 조동찬] 우리 의료는 어디로 가고 있나

조동찬 주간 조동찬
"계급장부터 뗍시다"

육군 27사단 79연대 의무중대장으로 복무할 때 일이다. 간부 5명, 사병 50여 명이 소속된 단체의 수장이 된 건 이번 생 가장 큰 영예였지만 공짜는 아니었다. 병사들의 사고 조짐을 수시로 파악해야 했는데, 특히 부대에 갓 배치돼 계급이 가장 낮은 이등병은 일주일마다 상담한 후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어느 가을날 아침, 콧노래를 부르고 출근하는 과정에 두 병사가 눈에 띄었는데, 얼굴이 얼룩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병 5개월 차와 상병 1개월 차로 중대 내에서 가장 핵심적인 일을 하고 있어서 예사롭지가 않아 보였다. 두 병사를 따로 불러 물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니?"
"저는 어제 밤 근무 후 복귀하다가 넘어졌습니다."
"저는 아침에 축구하다가 골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들에게 불행하게도, 신경외과 전문의는 부딪치고 넘어졌을 때와 주먹질했을 때 상처의 차이를 감별할 수 있다. 연대장에게 부대 내 폭행 사고가 있었음을 보고하고, 자체 세미나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연대장은 사흘을 허락했는데 모든 일과를 접고 '부대 폭력 줄이기 끝장 토론회'를 시작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병장이 손을 들어 발언을 시작했다.

"중대장님, 우리끼리 계급장 떼고 얘기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렴, 다만 마지막 날까지 나에게 A4 용지 반 장 이내로 결과물을 갖고 와라."


그들의 세미나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지만, 어떤 병사는 차분하게, 어떤 병사는 피를 토하듯 얘기하는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사흘 뒤 그들은 일곱 가지 정도 세부안을 가지고 왔다. 몇 가지가 지금도 기억나는데, '선임과 24시간 매칭됐던 이등병에게 취침 시간만큼은 그들끼리 잘 수 있게 하고', '병장 1개월 차부터는 서로 존대하며', '일반적으로 병사 간 얼차려는 없애지만, 녹색 견장을 찬 분대장에게는 허락한다'는 것 등이다. 이 안을 연대장에게 그대로 보고했고 연대장은 당시 폭력 병사에게 일반적이었던 징계를 면해주었다. 그 이후 의무중대에서 더는 폭력 사고를 감지할 수 없었다.

기자가 된 직후 부족한 인문 소양을 메우기 위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들었다. 뜬금없어 보이는 철학 문장들을 꾸벅꾸벅 졸며 넘기고 있을 때 눈에 확 띄는 구절이 펼쳐졌다. 존 롤스의 정의론에 나온다는 '무지의 장막'이라는 개념이었다. 무지의 장막은 어떤 문제에 대해 모든 조건을 백지화하고 따져 보자는 것인데 그래야 정의로운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 조건은 가장 약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이다. 계급장 떼고 얘기했더니, 이등병의 권익까지 반영된 결과가 도출되는 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지혜는 가방끈의 길이, 나이 그리고 계급과 상관없다는 것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의료대란을 '무지의 장막'에서

조동찬 주간 조동찬
의료대란 이전 서울의 대형 병원들은 조직 검사까지 마친 환자 중에서 침습성이 높으면 초진을 최대한 당겨 한 달 이내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급한 암 환자를 효율적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원칙이었다. 최근 한 지인이 2차 병원에서 암을 진단받았는데 조직 검사 결과 침습성이 높다는 소견이 나왔다. 서둘러 빅5 대학병원 진료를 알아봤는데 세 곳은 예약 날을 받을 수 없었고, 두 곳은 8월 이후로 잡혔다. 국내외 연구에서 침습성 암의 수술이 한 달 지연될 때마다 사망률이 대략 8%씩 높아진다.

빅5 병원은 포기하고 해당 암 수술이 가능한 수도권 모든 병원을 상대로 예약을 알아봤다. 가장 빠른 곳이 한 달 뒤라서 이미 사망률 8% 상승의 불이익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전공의의 공백이 가져온 여파만 해도 이미 대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의대 교수의 사직이 시작됐다. 보건복지부는 '교수들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을 것이며, 의료 공백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두 달 전 병원을 사직한 1만 명 넘는 전공의의 사직서도 수리된 게 현재까지 없다. 그 사이 50대 교수도 야간 당직을 열흘에 한두 번꼴로 서야 하는 판국이 됐다.

게다가 교수들의 사직 여파가 크게 우려되는 건, 병원에 남은 교수의 야간 당직이 더 늘어날 터이고, 그러면 연쇄 사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 현장은 더 가파른 의료대란의 변곡점을 맞고 있는데,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 구도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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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료는 어디로 가고 있나

4월 30일 서울대병원에서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여기에는 서울의대 학생 대표, 서울대병원 전공의 대표 등 발언에 이어 안상호 선천성심장병 환우회 회장, 유미화 녹색소비자연대 상임대표 등 현 의료대란의 가장 약자들, 환자의 발제도 마련됐다. 먼저 서울대 의대생 대표와 서울대 전공의 대표에 기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현 의료대란 쟁점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여러 학문적 근거들을 활용하며 펼쳐 나갔다.

그런데 혈액종양내과를 전공하다가 사직한 전공의의 마지막 3분 발언에서 현장이 술렁거렸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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