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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백 개도 먹을 수 있다"…중국 최고 미인의 '최애' 과일은? [스프]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 ⑤] 리쯔와 또 다른 '소동파(蘇東坡)의 서호(西湖)'가 있는 도시 - 후이저우(惠州)

한재혁 중국본색
흔히 양귀비로 알려진 당나라 현종의 귀비(貴妃) 양옥환(楊玉環)은 중국 고전 미인의 대명사이다. 현종과 귀비와의 비극적 애정 스토리는 그녀의 미모에 대한 묘사와 함께 백거이(白居易)의 840자에 달하는 장편 서사시 '장한가(長恨歌)'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그녀가 미용 비책(祕策)으로 쓰던 것으로는 뽕나무잎 등 약재를 넣은 온천 목욕과 손바닥으로 얼굴 피부 가볍게 때리기, 목단피 등 자연 성분의 화장품 쓰기, 인삼 복용 등이 알려져 있다. 그중 최애 아이템 하나를 꼽으라면 리쯔(荔枝,여지)를 즐겨 먹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리쯔(lychee)는 아열대성 과일로 중국 남부인 푸젠(福建), 광시(廣西), 하이난(海南) 등에서도 생산되는데 중국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광둥(廣東) 성에서 나온다. 중국은 리쯔의 원산지이자 생산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 중국의 특색 있는 과일 하면 리쯔가 떠오르는 이유이다. 4월쯤 꽃이 피고 5월부터 8월까지가 수확기이다.

갓 딴 리쯔와 리쯔 종류
리쯔라는 명칭은 서한(西漢) 시기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책에서 무성한 가지를 떼어낸다는 의미의 이지(離枝)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하여, 동한(東漢) 시기에는 여지(荔枝)로 변화하였다 한다. 양귀비와 관련된 내용은 '신당서, 양귀비전'에 나오는데, 그녀가 '리쯔를 좋아하여 이를 신선하게 먹고자, 기마로 수천 리를 수송해 왔으며, 수도에 도착해서도 맛이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리쯔만 따서 운송한 것이 아니라 신선도 유지를 위해 아예 나무 뿌리째 뽑아 과실과 가지가 마르지 않게 겉을 싸서 수분을 조절하며 운송하였을 것으로 후세 사람들은 추정한다.

만당(晩唐) 시인 두목(杜牧)은 '화청궁(華淸宫)을 지나며'라는 시에서 '말 한 마리가 붉은 먼지를 내며 달려오니 귀비가 웃는데, 아무도 리쯔가 도착한 것은 모르는구나'라고 풍자했다. 당나라 때의 한 문헌에서는 양귀비가 수천 리를 달려 가져온 리쯔가 광둥 일대의 남방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보았는데, 송대에 소동파(蘇東坡)는 양귀비의 출생지인 촉(蜀) 땅에서도 리쯔가 생산되었으므로 지금의 쓰촨(四川) 지역에서 시안(西安, 당시의 長安)으로 운송해 갔을 것이라고 보았다. 소동파는 리쯔와 관련해 광둥 유배 시절 '하루에 리쯔 300알을 먹는다면, 계속 남방 사람으로 살라고 해도 마다치 않겠네(日啖荔枝三百顆, 不辭長作嶺南人)'라고 호방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소동파와 연관된 도시를 얘기하면 주로 항저우(杭州)와 항저우의 서호(西湖)를 얘기한다. 하지만 소동파에게 있어 후이저우(惠州)와 후이저우 서호(西湖) 역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서호는 서쪽의 호수란 의미의 일반명사이다. 항저우의 서호가 워낙 유명해 중국에서 '시후(西湖, 서호)'라고 하면 항저우의 서호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는 구이린(桂林), 푸저우(福州), 션양(瀋陽), 란저우(蘭州), 하이커우(海口) 등지에 도합 31개의 서호가 있다. 소동파도 그 시절 '천하에 36개나 되는 서호 중 최고는 항저우 서호'라고 적은 바 있다. 그럼 후이저우 서호와 소동파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

후이저우 시내와 서호
소동파는 왕안석(王安石) 등의 신법파의 개혁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고 지방에 유배되었다 복권되었다를 반복한다. 후이저우(惠州)는 그가 58세 때인 1094년 9월 도착하여 1097년 4월 지금의 하이난(海南) 섬인 단저우(儋州)로 다시 유배되기까지 2년 8개월간 머문 곳이다. 이 기간 동안 587편의 작품을 남기면서 첫 번째 유배되었던 황저우(黃州, 753편)에 못지않은 왕성한 문학 창작 활동을 하였다.

후이저우에는 소동파와 조운(朝雲, 짜오윈)간의 이야기와 함께 관련된 유적도 많다. 조운은 본명이 왕조운(王朝雲)으로 집안이 빈한하여 가녀(歌女)가 되었으나 12세 때 소동파가 시녀로 받아들였고, 그 후 소동파의 세 번째 부인이 된다. 소동파가 오태시안(烏臺詩案)이란 사건으로 황저우(黃州), 후이저우(惠州) 등지에서 유배 생활로 어려웠을 때 따라와 지기(知己)처럼 곁을 지켰다. 황저우 유배 기간 중 소동파의 넷째 아이를 낳았으나 반년 만에 잃었고, 후이저우로 유배와서는 2년이 채 안 되어 본인이 34세로 요절하는 운명을 맞는다.

소동파는 27세로 일찍 사별한 첫째 부인 왕불(王弗)을 기리며 "삶과 죽음으로 나뉜 10년, 서로 아득하기만 한데, 생각지 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구나(十年生死兩茫茫, 不思量, 自難忘)"로 시작되는 불후의 추도시(追悼詩)를 남겼다. 어려서부터 본인 곁에 있었고 특히 어려운 시기를 함께해 준 조운에게도 애틋한 감정을 갖고 비롯한 여러 편의 시를 지었다. "시대와의 불화 속에 유일하게 나를 이해하는 이, 홀로 옛 곡조를 타는데 저녁에 내리는 비가 그리움을 더욱 사무치게 하네(不合時宜, 惟有能識我; 獨彈古調, 每逢暮雨倍思卿)"라는 대련(對聯)은 대표적이다. 아울러 역병으로 먼저 떠난 그녀를 기리면서 함께 했던 후이저우 서호 주변에 탑과 제방을 쌓고, 매화나무를 심어 기렸다.

서호 야경과 서호변의 조운 기념상과 정자
그 후 서호변에는 조운의 묘지를 비롯한 소동파와 그녀의 유적들이 조성 및 복원되었고 현재도 많은 관광객들과 문학 애호가들이 찾고 있다. 후이저우 서호는 그 규모는 작지만 호수 위 섬들과 다양한 종의 초목과 희귀한 조류들이 서식하면서, 화려하게 개발된 항저우 서호와는 또 다른 한적하고 고매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소동파는 후이저우를 비롯한 유배 생활과 관련해 이런 명문을 남겼다.

"마음은 이미 재가된 나무요, 몸은 줄을 매지 않은 배와 같네(心似已灰之木,身如不系之舟); 내게 평생 이룬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황저우 후이저우 단저우 라고 답하리(問汝平生功業,黃州惠州儋州)."

다시 리쯔 얘기로 돌아와서,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따르면 리쯔는 간을 보호하고 보혈, 진통의 기능이 있다하여 한약재로 쓰이기도 했다. 현대적 성분 분석에 의하면 포도당, 자당과 단백질, 지방, 각종 비타민 및 엽산 등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신진대사 촉진이나 불면증 예방, 노화 방지, 피부 미용에도 좋다고 하며, 다만 당분이 많아 당뇨 환자 등은 섭취에 유의해야 한다고 한다. 리쯔를 언뜻 보면 다 비슷비슷하게 보이지만 사실 그 종류가 10가지가 넘는다. 일반적으로 여름 출하 시기에는 가격이 1kg에 약 100위안(한화 약 2만 원) 정도 하지만, 희귀하거나 우수한 품종의 경우에는 고급 백화점에서 한 알당 100위안 내외에 판매되기도 한다, 광둥 쩡청(增城)의 시위안(西園) 꽈뤼(掛綠) 종은 2002년 경매에서 한 알에 55만 위안(한화 약 1억 원)에 판매되어 기네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리쯔 문화제와 교역시장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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