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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를 떠날 수 없어요, 다만…" [스프]

[주간 조동찬] 소아 암병동 지키는 의사의 마음과 고민

주간 조동찬 썸네일
세브란스병원 어린이 암병동에 들어서자, 위태로워 보이는 침상 하나가 환자용 엘리베이터로 향하고 있었다. 의료진 여럿은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신음하고 있는 어린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린이의 피부는 까맣고, 가슴과 배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팽창돼 있었다.

"대장암이 많이 진행돼 가슴과 배에 물이 많이 고여 있어요. 이것 때문에 아이가 숨을 잘 못 쉬어요. 영상의학과 중재(intervention) 센터로 가서 당장 흉수와 복수를 빼내는 관을 아이 몸에 넣어 줘야 해요."

한정우 소아혈액종양과 교수는 어린 암 환자의 어머니보다 먼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심폐소생술을 할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인데 언제라도 심장이 멈출 수 있을 만큼 아이는 위중했다. 보통이었다면 전공의가 있어야 할 자리이지만 지금은 한 교수가 직접 서 있어야 한다. 응급 시술이 이루어지는 중재 센터에 보호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엄마의 빈자리가 불안했는지 말이 없던 아이가 연신 말을 한다. 한 교수는 아이의 입에 귀를 밀착한다. 작고 아픈 몸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선명할 리 없었을 것이다. 한 교수는 토하고 싶은 건지 아이에게 몇 번이고 되묻는다. 토사물이 자칫 기도로 넘어가면 흡인성 폐렴이 생길 수 있다. 한 교수는 신속하게 아이를 옆으로 누인 후 토사물을 받아낼 그릇을 찾는다.

그런데, 한 교수의 말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 인턴(의대를 졸업한 새내기 전공의로 전공과목을 선택하기 전 여러 진료 과에서 1년 동안 수련받는 의사)이 떠났기 때문이다. 중재술 준비에 바쁜 간호사가 하던 일을 멈추고 그릇을 내온다. 몇 번의 구역질을 하던 아이가 맘대로 되지 않았는지 심하게 보챈다. 몸을 많이 움직이는 상태로는 배액관을 정확하게 삽입할 수 없다. 한 교수는 미다졸람(진정제)을 준비해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약물 처방은 간호사가 하면 불법이다. 파견 온 공중보건의가 해야 하지만, 그는 세브란스병원의 EMR 시스템에도, 소아과의 약 용량 처방법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소아 병동 간호사에게 물어 어렵게 처방은 냈으나 진정제를 투여하는 것도 문제였다. 어린이는 약의 용량뿐 아니라 투여 방법도 성인과 다르기 때문이다. 소아과 전공의의 빈 자리가 너무 컸지만, 한 교수는 지연되는 시간을 묵묵히 기다렸다. 본격적인 중재술을 위해 영상의학과 의료진이 아이 앞에 등장했다. 그런데 이들이 어린 환자에겐 그저 낯선 사람이었다. 신음하며 고통스럽게 몸을 가누던 아이의 손이 한 교수의 손목을 더듬는다. 한 교수는 아이의 손을 받아 꼭 잡는다. 그렇게 아이와 한 교수의 손은 시술이 끝날 때까지 감겨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는 환자를 떠날 수는 없을 거고요. 대부분의 의사들이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저희들의 사명감이나 자긍심이나 이런 것들도 모두 없어지는 그날이 온다면, 과연 이것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까, 이런 고민은 아마 그때는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세브란스병원 어린이 암병동 병실은 38개다. 항상 만실이었는데, 이번 사태로 병실 4개가 비어 있었다. 한 교수는 암 환자 주치의를 가장 많이 맡고 있는데, 34명 중 19명이 한 교수 환자이다. 자신의 암 환자 응급 콜을 24시간 대기하며 받고 있다. 5주가 넘어가고 있는데도 그는 힘들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몹시 지쳐 보였고 환자의 어머니는 이걸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

"진짜 불안해요. 한 교수님이 외래 진료 시간이면 저희 아이를 봐줄 의사가 병동에는 없어요. 한 교수님이 지금은 24시간 봐주시고 있지만 이게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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