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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2024년 美 인태전략은? 한국에 미칠 영향

'아시아그룹'에게 듣다

[월드리포트] 2024년 美 인태전략은? 한국에 미칠 영향
2023년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한 해였습니다. 미국의 한마디에 기존 강대국들도 못 이기는 척 따라줬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 그리고 이어진 강 대 강 대치… 미국은 '외교의 힘'을 믿는다고 외쳤지만 어느 것 하나 뜻대로 풀린 건 없었습니다. 천문학적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조차 번번이 미국의 요구를 묵살하기 일쑤였고 미국의 맹방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의 태도도 전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2024년 새해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나라와 직결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요? 미 백악관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좌우하는 핵심 인물은 커트 캠벨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입니다. 지난해 바이든 정부의 핵심 성과로 꼽히는 한미일 정상회의를 실질적으로 이끈 사람 역시 그였습니다. 현재 미 국무부 부장관에 지명된 상태로 앞으로도 한반도를 포함한 국제정세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걸로 예상됩니다.

청문회를 거치는 등 임명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캠벨의 구상을 직접 듣기는 어렵지만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지난 2013년 그가 설립한 컨설팅 회사, 아시아그룹(The Asia Group)입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기업 등을 상대로 각종 자문을 수행하는 곳으로, 현재 이 분야에서는 이른바 가장 영향력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렉슨 류 아시아그룹 회장과 만나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평가와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남승모

2개의 전쟁 수행 美…몇 점?


전쟁 억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또 해를 넘겼고 허를 찌른 하마스의 기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 전쟁 역시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시아에서도 미국은 중국과 극도의 긴장감 속에 대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갈등이 아닌 경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상은 총성 없는 전쟁이나 다름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현재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수행에 대해 류 회장은 세계는 복잡하고 위험한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개별 도전을 극복하는 게 쉽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는 후한 점수를 줬습니다. 무엇보다 나토와 한미일 협력 등 동맹-파트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외교 안보뿐 아니라 핵심기술 보호, 공급망 구축 등 경제적 분야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시스템을 마련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내에서도 지적되고 있는 미국의 영향력 쇠퇴 지적에 대해서는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다극체제로 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미국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류 회장은 30년 전보다 오늘날 국제무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들이 늘었다는 건 이상할 게 없다면서, 다만 이것이 미국의 쇠퇴를 의미하는 신호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은 정치적, 종교적, 역사적 맥락에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지만 어떤 시나리오가 됐든 미국이 앞으로 이 지역의 해결 방법을 찾는데 여전히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현직 핵심 인사인 캠벨, 또 그의 생각과 궤를 같이하는 아시아그룹의 특성상 평가가 바이든 정부 측에 우호적일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 무역 시대 복귀 불가…중국 의존도 낮춰야


남승모

경제와 안보가 분리되지 않는 현시점에서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전략도 물어봤습니다. 현실적으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한국과 똑같지는 않지만) 미국과 유럽, 호주, 일본 등에서도 비슷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는 각국이 선택하는 것이며 미국 역시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과 경쟁하겠지만 중국과 깊은 경제 관계를 유지할 걸로 내다봤습니다.

중국 내 한국 공장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다른 나라로 이전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냐고 보다 직설적으로 물었습니다. 직접 '탈중국'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서구 전역에서 그런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첨단 기업들이 본국에 재투자할지, 미국에 할지, 제3국에 할지 다양한 선택을 하고 있다며 인도, 베트남, 멕시코 등을 대안 투자처로 언급했습니다. 이어 미국과 다른 많은 나라 정부들이 첨단 산업 분야를 더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기업들에게 다양한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고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그럼 한국 기업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겠다고 물었습니다. 류 회장의 답은 '다양화'였습니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미국과 한국 등 동맹국 안보에 분명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라며 (기자가 질문 때) 반도체를 언급했지만 다른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지고 기업들은 다른 곳에 투자할 걸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다양화'라고 말했지만 적어도 첨단 기술 분야에서만큼은 중국 투자는 피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대신, 한미일 정상회의 합의를 언급하며 캠프 데이비드 선언은 비단 안보에 관한 게 아니라며 첨단 기술과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이 업체의 자문을 받는 곳 중에는 삼성전자와 SK도 포함돼 있습니다. 중국 내 반도체 공장 운영하는 기업으로 이 문제로 고민이 적지 않은 곳입니다. SBS와의 인터뷰에서는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아시아그룹이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지정학적 위험을 컨설팅하면서 어떤 제안을 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아 보아 보였습니다.

류 회장은 이런 결정이 비단 미국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중국도 미국처럼 자국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거라고 말했습니다. 21세기, 일부 핵심 기술이 국가의 힘과 번영을 이끌 거라며 특정 부문에 대해 더 많은 통제를 유지하게 될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좁은 영역에 높은 울타리를 치는 전략입니다. 이어 중국이 어떤 면에서 미국과 유사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중국은 미국의 수출통제에 맞서 반도체와 배터리 핵심 광물인 갈륨과 흑연을 수출 통제 대상에 올린 바 있습니다.

류 회장은 국가 간 무역관계 개념이 지난 몇 년간 분명히 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변화의 과정에 있다면서, 분명한 건 적어도 특정 분야에서는 세계 자유무역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어려워졌다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해 국가 안보와 경쟁력이 걸린 특정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앞으로 통제가 더욱 강화될 거란 얘기입니다. 첨단 제품 수출이 주력이면서 동시에 원천기술은 미국에, 시장은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수출 주도형 국가에게는 험로가 예고된 셈입니다.
 

트럼프 당선 대비해야…한미일-북중러 실체 없다

남승모

2024년은 미국 대선이 있는 해입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전 세계가 상당한 영향을 받을 거란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차기 대선 결과에 따라 우리나라가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류 회장은 바이든이 승리할 경우 동맹 중심의 현 기조를 중심으로 외교 무대에서 보다 실질적 행보를 보일 걸로 내다봤습니다. 글로벌 동맹 구조가 미국의 힘이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이기면 어떻게 될까? 류 회장의 답은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였습니다. 트럼프 첫 임기 때 한미 관계가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면 앞으로도 또 다른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1기 정부 때와 달리 2기 정부에서는 '제약'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자신의 견해와 동기에 따라 결정을 내릴 거라고 말했는데, 쉽게 말해 1기 정부 때 눈치를 보며 주저했던 일들을 거침없이 밀어 부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한미군 철수나 방위비 분담금 인상 같은 문제를 트럼프가 다시 들고 나올 수 있느냐는 물음에도 역시나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등 한국 등 동맹국들이 트럼프 당선에 대한 사전 대비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 한미일 공조 강화 등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동북아 지역의 한미일-북중러 대립구도에 대해 물었습니다. 신 냉전 기류 속에 최근 동북아 지역에서 지정학적 위험으로 꼽히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류 회장은 (한미일-북중러) 3대 3으로 가는 동맹 구도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한미일-북중러가 결코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먼저 한미일의 경우, 단지 한미일 3개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호주와 인도, 유럽 국가 등과 연계 및 협력이 가능하며 더욱 확장돼 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북중러의 경우 그들 간 협력에 분명히 (넘어야 할) 과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며 몇 가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제질서에서 이탈한 러시아와 어떻게든 국제질서의 틀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중국과의 입장 차를 지적한 걸로 보입니다.

새롭게 시작된 2024년이 복잡했던 2023년의 국제 정세를 풀어내는 희망의 한 해가 될지 아니면 분쟁만 더욱 악화하는 시련의 해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미국 중심의 체제에서 여러 강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다극 체제로의 이행이 빨라지면서 각국이 국익이라는 이름 하에 안보와 경제 모든 면에서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쉽지 않은 해가 될 거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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