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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수출' 눈 감고, '성실실패'에 가혹…기울어진 방산 운동장 [취재파일]

'불법수출' 눈 감고, '성실실패'에 가혹…기울어진 방산 운동장 [취재파일]
▲ 유명 방산전시회에 설치된 국산 총기류 업체의 부스

모름지기 행정은 공정해야 합니다. 방산을 관장하는 방사청의 행정도 공정해야 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인데 업체에 따라 들쑥날쑥하다는 말이 들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엄격해야 할 불법에 관대하고, 관대해야 할 성실실패에 엄격한 사례들이다 보니 구설수에 아니 오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총기류 제조업체 D사가 1~2년마다 총기와 부품을 불법수출했어도 방사청은 적절히 제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반면, 한화오션이 1조 원에 달하는 한국형 3천 t급 잠수함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수십억 원짜리 부품 하나 다소 늦게 개발됐다고 방사청은 한화오션에 1천억 원에 육박하는 벌금을 물렸습니다.

방산비리 차단하고 국산무기 개발 독려하려면 불법에 엄격하고 성실실패에 관대해야 합니다. D사의 불법수출과 한화오션의 성실실패에 대한 방사청의 조치는 그 반대입니다. 국산무기 개발 의욕 꺾고, 방산비리 장려할까 걱정입니다.
 

업체의 불법수출과 방사청의 무사통과

국내의 한 방산전시회에서 국산 소총을 다뤄보는 육군 간부

경찰과 국정원은 현재 D사의 불법수출 위반 혐의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수년간 UAE에 총기류를 수출했는데 UAE 외 제3국으로 D사의 총기가 유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외무역법상 '최종사용자 승인' 조항 위반의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UAE의 정보 당국도 D사의 UAE의 협력사인 C사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정부 소식통은 말합니다.

D사의 불법수출은 또 있습니다. 2019년 방사청은 폴란드를 최종 사용자로 지정한 D사의 총기류 수출에서 불법 혐의를 포착하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D사의 유럽 지사 직원 2명에게 각각 수천만 원, 수백만 원의 벌금을 물렸습니다.

불법수출은 선의의 제3국 안보를 해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 방사청은 사법 당국의 처벌과 별도로 업체를 제재해야 하지만 D사 폴란드 불법수출은 손대지 않았습니다. D사의 유력한 소식통은 SBS에 "한 임원이 '처리'했고, 유야무야 끝났다"라고 털어놨습니다. SBS 취재가 시작되자 방사청 대변인실은 "경찰에서 사건 처분 통보가 오지 않아서 몰랐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경찰에 D사의 2019년 처분 자료를 요청해 제재를 검토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한 번이 아니었다

더 있습니다. D사는 2016년 8월 정부로부터 방산업체로 지정받기 2개월 전 대법원에서 미국 불법수출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산자부, 방사청, 방첩사 등은 방산업체 지정에 앞서 업체의 보안 조건을 정밀 점검해야 하지만 2016년 6월 D사 불법수출 판결을 놓쳤습니다.

D사는 업체 최대 규모의 기밀유출 사건의 주범으로도 유명합니다. D사의 기밀유출과 불법수출은 같은 시점에 벌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방사청은 D사 불법수출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의혹의 시선이 드리워지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군의 한 관계자는 "불법수출은 큰돈이 되기 때문에 한번 맛 들이면 깊이 빠져든다", "강력해야 하는 방사청의 제재가 없었다는 것은 방사청의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1조 잠수함에 30억 부품 개발 지연…948억 물렸다

첫 국산 3천톤급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의 진수식

성실히 개발했지만 역부족이어서 벌어진 작은 실패에 방사청은 가혹했습니다. 한화오션이 8년간 건조한 3천 t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에 방사청은 948억 원의 지체상금을 물렸습니다. 협력업체가 어뢰기만기를 110일 늦게 개발했다고 잠수함 전체 건조비용의 10%에 달하는 돈을 환수한 것입니다. 어뢰기만기를 외국에서 구입했다면 30억 원으로 충분했지만 돈 더 들여 독자 개발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협력업체 귀책 사유 또는 도전적 연구개발에 따른 기술적 한계로 개발이 지연됐을 때 지체상금을 면제한다"는 방사청 훈령 조항이 신설됐어도 방사청은 요지부동입니다. 한화오션의 한 임원은 "이런 식이면 외국에서 사다 쓰지, 무슨 영화 누리겠다고 도전적 개발을 하겠나"라고 한탄했습니다.

대한항공의 해상초계기 성능개량 사업, HJ조선의 검독수리-B batch-Ⅰ 건조 사업도 수백억 원의 지체상금을 맞았습니다. 대한항공은 소송을 벌여 기납입한 725억 원 지체상금 중 473억 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방사청은 473억 원에 더해 혈세로 막대한 이자를 뱉어내야 합니다. HJ조선도 지체상금 무효 소송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행정과 사법, 그리고 돈의 낭비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어떤 업체는 큰 잘못 저지르고도 무탈하고, 어떤 업체는 작은 잘못에도 벼락을 맞습니다. 그래서 방사청이 깔아놓은 국산무기 개발의 운동장이 기울어졌다는 업계의 반발이 나오는 것입니다. 방산비리 근절하고 국산무기 개발 권장하려면 방사청이 많이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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