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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러시아, 대북 제재 손 댈까 못 댈까

[월드리포트] 러시아, 대북 제재 손 댈까 못 댈까
미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만났습니다. 예상대로 끈끈한 관계를 과시했는데, 이번 회담을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당장 필요한 탄약 등 무기를, 북한은 식량과 함께 군사 정찰 위성이나 핵 잠수함 관련 기술을 얻게 될 걸로 보입니다. 특히 러시아는 회담에 앞서 북한을 향해 유엔 대북 제재 문제를 논의할 수 있고 밝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러시아는 왜 이런 얘기를 꺼냈고 또 이런 조치가 실제 가능하기는 한 걸까요?
 

러시아 측 "우리가 왜 대북 제재를 지키고 있나"

지난 12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북러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필요하다면 북한동무들과 대북 유엔 제재에 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유엔 제재 완화'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대북 유엔 제재에 손을 댈 수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실제로 러시아의 한 신문은 지난주 "서명은 취소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신문에 실린 러시아 외교·국방정책협의회 의장의 말은 보다 구체적입니다. 그는 "우리가 왜 이 제재를 지키고 있느냐는 질문이 오래전부터 있었다"면서 "지금 국제 관계 시스템 전체가 완전히 대혼란 상태"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우리가 유엔 제재에 투표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가 던진 표를 취소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러시아가 안보리 결의에 대해 일방적 조치를 취할 수 없다며 이런 움직임을 일축했습니다.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고 해도 5개 상임이사국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킨 결의안을 단독으로 허물 수는 없다는 겁니다. 미국은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은 복수의 유엔 결의 위반이라면서 필요하다면 (북한과 러시아에) 책임을 묻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러시아, 대북 제재 완화 꺼낸 이유…가능할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P, 연합뉴스)

러시아가 대북 제재 완화 가능성을 언급한 건 북한에 대한 호의 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번 회담의 의제로 알려진 양국 간 무기 거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현재 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대량살상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의 수출입, 판매, 이전이 모두 금지돼 있습니다. 또한 우주발사체를 포함해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어떤 형태의 대북기술협력도 금지돼 있습니다. 미국이 지적했던 것처럼 러시아가 북한과 무기-군사기술 거래에 나설 경우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것이 됩니다.

앞서 러시아 용병 기업인 바그너 그룹이 북한 포탄을 제공받은 바 있지만 이건 용병기업과 북한 간 거래로, 러시아 정부가 직접 구매한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러시아 정부 개입이 있었을 걸로 추정되지만 명목상으로 나마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만나 무기거래와 군사기술 협력에 나설 경우, 러시아가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됩니다. 러시아 측에서 결의안 채택 당시와는 국제 정세가 완전히 달라졌다며 결의안 취소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미국의 말처럼 러시아가 혼자 유엔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해 유엔 안보리에서 다시 의결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제재 결의를 이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재를 어긴 들 수천 발의 핵무기를 보유한 러시아를 어찌할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요?) 러시아가 말한 '제재 완화 논의'가 북러 두 나라 간 논의라면 얼마든 가능합니다. 미국은 북러 간 무기 거래 시 제재 조치를 주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인 만큼 유엔 차원의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미국 vs 러시아 대결 구도 속 승자는

사실 유엔 안보리 무용론이 나온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북한이 아무리 미사일을 쏘고 도발을 일삼아도 안보리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 미국 등 서방 대 중국-러시아의 대결 구도가 원인입니다. 이미 형해화한 유엔 대북 제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실질적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해도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불법이라는 국제사회의 공인이라는 점에서 절대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국제무대에서 힘만큼이나 중요한 게 명분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P, 연합뉴스)

러시아가 실제 대북 제재 완화를 공식화할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만큼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 재편을 외치고 있는, 다시 말해 다른 형태의 리더를 자처하는 러시아가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무작정 깨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중국이 북한 도발 때마다 미국 책임론을 주장하고 안보리에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을 제출하면서도 공식적으로 안보리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결론적으로 놓고 보면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자국 안보를 앞세운 강대국 간 힘겨루기가 낳은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등의 한가운데에서 전쟁에 휩싸인 우크라이나의 피해가 가장 크겠지만 이번 전쟁으로 체면을 구긴 러시아 역시 타격이 작지 않습니다. 이런 대립 구도에서 가장 득을 보는 건 누구일까요? 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북한도 그중 하나로 보입니다.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절치부심하다 다급해진 러시아가 손을 내밀면서 목말라했던 군사 기술과 첨단 무기, 나아가 대북 제재 약화까지 노릴 수 있게 됐으니 말입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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