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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멈춘 지 15년…남은 가능성은?

민간 전문가들 뤼순감옥 현지 답사…"둥산포가 매장지로 가장 유력"

정영태 취재파일
지난 2008년 4월 남북 합의와 중국의 협조로 랴오닝 성 다롄시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작업 진행한 뒤 올해로 꼭 15년이 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발굴 작업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우리 국가보훈처가 안 의사 유해발굴을 위한 새로운 자료를 확보했다며 보도자료를 내놨습니다.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발행한 신문과 간행물을 확인해 "하얼빈산 소나무로 만든 관에 안 의사 유해를 안치했다."라는 기사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소나무 관'이라는 물질적 단서 나온 만큼, 만약 발굴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낼 수 있는 추가적인 근거가 더해진 셈입니다. 하지만, 2008년 발굴작업 실패 이후 정부 차원의 추가 발굴 시도가 이뤄지지 못한 만큼, 지난 15년간 유해 발굴에 큰 진전은 없는 상태입니다. 특히 지난 2019년에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가 남북공동 유해발굴 사업을 추진하려 했지만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중국 다롄 뤼순감옥 박물관 내에 있는 안중근 의사 추모공간

2008년 발굴지 위안바오산 아닌 둥산포일 가능성


2008년 발굴된 지역은 다롄 옛 뤼순 감옥 근처의 위안바오산(원보산, 元寶山)이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당시 이곳을 유력 매장지로 지목하게 된 데는 2장의 사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10년 안 의사가 순국한 뒤 1년이 지난 1911년 뤼순 감옥 뒤편 묘지에서 사형수 천도재를 지낸 뒤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제공자는 당시 감옥 형무소장의 딸인 이마이 후사코 씨였습니다. 당시 8살이었던 후사코 씨는 "사람들이 관을 메고 감옥 뒷문으로 나와 뒷산 묘지로 갔다."라며 안 의사 사형 집행 날 상황을 증언했고 사진에 안 의사의 매장 지점을 추정되는 곳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뤼순 감옥 북쪽에서 매우 가까운 지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발굴 결과, 깨진 그릇과 생활 폐기물 등만 나왔을 뿐 감옥 공동묘지의 흔적으로 볼 수 있는 단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2008년 발굴 당시 근거가 된 뤼순감옥 사형수 천도재 사진
당시로써는 그래도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가 실패했다고도 볼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뤼순 감옥 공동묘지 위치가 아예 다른 곳이 아니냐는 의문이 계속돼 왔습니다. 뤼순 감옥 북쪽의 위안바오산이 아니라 동쪽에 있는 '둥산포(동산파, 東山坡)' 즉 동쪽 고개라고 불리는 지역일 가능성이 제기된 겁니다. 더구나 뤼순 감옥이 위치한 중국 다롄시가 지난 2001년에 이 지역을 뤼순 감옥 옛 묘지 터로 인정하면서 둥산포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둥산포 지역에 다롄시가 만든 '뤼순감옥 옛 묘지' 비석

민간 전문가들이 다시 찾은 뤼순 감옥 일대…"둥산포 안장 가능성 가장 크다."


정부 차원의 안 의사 유해발굴 사업이 사실상 멈춰 있는 상황에서 최근 민간 전문가들이 현지 조사에 나서 중국 측 관계자들을 면담해 결과가 주목됩니다. 국가보훈처장을 지내 과거 유해발굴 사업의 경과를 잘 알고 있는 황기철 국민대 석좌 교수와 안 의사 연구에 전념해 온 김월배 하얼빈 이공대학교 교수, 김이슬 하얼빈 이공대 학교 박사가 그들입니다. 이들 세 사람은 '안중근 의사 찾기 한중 민간 상설위원회'를 결성하기 위해 지난 5월 14일부터 18일까지 중국 다롄을 찾았습니다. 특히 뤼순 감옥 박물관 관계자와 과거 유해발굴 실무 참가자, 향토 연구자 등 중국 측 인사들과 면담을 갖고 안 의사 유해 매장 추정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후보지 중 하나인 반다오인상 지역
중국 측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둥산포 지역이 안 의사 유해가 매장된 후보지'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과거 이 지역에 대한 중국 측 자체 발굴 작업에서 10여 구 정도의 유해가 이미 나온 적이 있기 때문에 당시 뤼순 감옥 공동묘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2001년 다롄시는 이 지역을 국가 문화재 지역으로 지정해 놓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현재 600제곱미터 정도의 면적으로, 5개의 90미터 길이 도랑에 과거 뤼순 감옥에서 숨진 사형수들의 유해가 매장돼 있습니다. 중국 측 의견과 현장 확인, 과거 발굴 작업 분석 등을 종합한 결과, 우리 쪽 민간 인사들은 둥산포에 안 의사가 안장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후보지 중 하나인 둥산포 지역

중국이 협조에 나설까?…한중 관계 변수


지난 2008년 공동발굴 조사의 실패를 거울삼아 둥산포 지역에서 안 의사의 유해를 찾을 가능성에 작은 희망이라도 걸어야 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갈수록 지형이 변하고 인근 지역의 개발도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남은 시간이 많지도 않습니다. 관건은 중국의 협조가 없으면 발굴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발굴 전에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높이기 위해서 중국이나 일본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과거 자료도 확보하면 좋겠지만 이 역시 양국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중국 다롄 뤼순감옥 박물관 내 사형장 복원 모습
이번에 우리 쪽 민간 인사들이 만난 한 중국 측 인사는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마음 깊이 존경한다."라면서 "안중근 의사가 중국 사람이 아닌 것이 아쉽다. 두 분은 영웅이다."라는 인사말을 했다고 합니다. 안 의사와 윤 의사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정작 유해 발굴을 재개하는 문제에 대해 중국 측 관계자들은 현재 한중 관계와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을 들어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역 당국자나 전문가 차원에서 추진 동력을 갖기는 어렵고 중앙 정부나 상부 기관에서 지시가 없으면 어렵다는 겁니다. 다롄시에 안중근 의사 거리나 동양평화공원을 조성하는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의견 교환이 이뤄졌지만 역시 변수는 한중 양국 관계라며 중국 측의 반응은 조심스러웠습니다.
 
물론 정치적 상황과 외교 관계가 국가 간의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양 국민 모두의 존경을 오랫동안 받아온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어떤 정치적 고려도 배제하고 추진할 수 없는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달라."라는 안 의사의 유언이 순국 113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사진 제공 : 황기철 국민대 석좌 교수(전 국가보훈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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