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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깔창 · 몽유병"…한국에 거칠어지는 중국의 입

[월드리포트] "깔창 · 몽유병"…한국에 거칠어지는 중국의 입
한국에 대한 중국의 발언이 최근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약속이나 한 듯 중국 외교부 대변인과 관변 언론인, 관영 매체가 잇따라 거친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통일적 메시지를 강조하는, 관영 매체 보도에 당국이 개입하는 중국의 특성상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의도가 반영됐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한국이 중국을 멀리하고 미국에 가까워지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는 일종의 시그널로 읽힙니다.
 

중국 외교부, 박진 장관에 "말참견 용납 못해"


첫 스타트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었습니다. 중국 외교부 마오닝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비판하며 '부용치훼'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했습니다. 부용치훼(不容置喙)는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상대방을 강한 어조로 비판할 때 사용됩니다. 외교 관계에서는 자주 쓰이는 표현이 아닙니다.

김지성 취재파일 - "깔창·몽유병"
▲ 중국 외교부 마오닝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한국에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가 문제 삼은 발언은 박진 장관이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 무력에 의한 일방적인 현 상태 변경에 반대한다"고 말한 대목이었습니다. 중국의 타이완 침공에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박 장관은 나아가 "타이완 해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해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할 경우 한국이 모종의 입장이나 행동을 취할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타이완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우리 정부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더 나간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중국이 발끈한 이유입니다. 이날 관련 질문을 한 것은 중국 기자였습니다. 게다가, 박진 장관의 인터뷰가 보도된 것은 지난달 22일이었습니다. 5일 전 보도된 내용을 중국 기자가 묻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답한 격인데, 일종의 짜여진 각본으로 볼 여지가 다분합니다. 중국 외교부 브리핑에서는 이렇게 중국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싶은 사안이 있으면, 종종 자국 기자와 사전 조율해 질문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마오닝 대변인은 "타이완 문제는 중국의 내정으로 타인의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며 "한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려 한다면 중국의 주권과 영토 완전성을 존중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수해야 한다"고 작심 발언을 쏟아 냈습니다. 한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수하지 않으면, 즉 타이완을 중국 영토로 인정하지 않으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타이완 문제는 중국의 자칭 '핵심 이익'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사안입니다.
 

후시진 "한국, 미국 군화 속 깔창 될 것"


바통을 넘겨받은 건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인입니다. 후시진은 중국의 대표적 관련 언론인으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계열사인 환구시보의 총편집인을 오랫동안 지냈습니다. 코로나19 대책 등과 관련해 일부 다른 목소리를 낸 적도 있지만, 외교 문제에서만큼은 여전히 당과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외교 관례상 중국 정부가 내지 못하는, 선명하고 자극적인 강경한 목소리를 대신 내고 있다는 겁니다. 후시진은 2일 자신의 SNS 계정에 '한국은 자신의 안보를 미국 군화의 깔창으로 만들지 말라'는 글과 동영상을 게재했습니다.

김지성 취재파일 - "깔창·몽유병"
▲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인. '한국은 자신의 안보를 미국 군화의 깔창으로 만들지 말라'는 게시물을 SNS에 올렸다.

그는 한국의 한·미·일 공조 강화 행보,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한국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 참여, 박진 장관의 타이완 발언 등을 두루 나열한 뒤, "한국이 미국만 포용하고 나머지를 헤아리지 않는다면 한국의 안보는 미국의 허리춤에 걸린 물건처럼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미국 군화 속 깔창이 돼 자주성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후시진은 "복잡한 동북아시아 바둑판에서 한 명의 기사가 돼야 할 한국이 미국의 '바둑돌'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적었습니다. '바둑돌'이라는 표현은 중국 외교부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중국 관영 매체 "한국 정부 몽유병 상태"


중국 관영 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이 매체는 일본을 '파트너'로 규정하며 한·일 협력을 강조한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한국 내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고 썼습니다. 이어 "한국의 대통령이 일본에 비위를 맞추는(fawning) 발언을 하는 건 이례적"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외교 정책에서 최면에 걸려 몽유병 상태에 빠졌음을 보여준다"고 적었습니다. "중국의 전문가들은 한국이 외교 정책에서 몽유병을 피하고 미국의 볼모 역할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고 훈수했습니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소속 한반도 전문가 뤼차오는 글로벌타임스에 "국치(national humiliation)일로 기록될 것"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김지성 취재파일 - "깔창·몽유병"
▲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일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다.

중국도 일제의 침탈을 받긴 했지만, 관영 매체가 나서 자국과 관련 없는 타국 정상의 기념사를 이렇게 비난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입니다.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중국 당국이 보도를 용인하거나 묵인한 건 최근 한국에 대한 일련의 불편한 감정 분출의 연장선으로 해석됩니다. 박진 장관의 타이완 발언이 도화선이 됐을 수도 있고, 마침 공격 거리를 찾고 있던 차에 3·1절 기념사 등이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외교 갈등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상호 비자 발급 중단 등으로 악화했던 한·중 관계가 한국의 중국발 입국자 제한 조치 완화로 회복되는 듯하다가 다시 악화로 돌아서는 모양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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