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트럼프 '닮은꼴' 된 바이든…'내로남불' 위기

기밀 문건 유출이 미국 정가를 흔들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법 당국으로부터 자택을 압수수색 당한 데 이어 이번에는 현직인 바이든 대통령이 특검 수사를 받게 됐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바이든 대통령도 조만간 재선 도전 의사를 밝힐 걸로 전망되는 상황이어서 전∙현직 대통령을 둘러싼 기밀 유출 수사가 내년 미국 대선의 주요 쟁점 중 하나가 될 걸로 보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밀 문건 유출 사건은 이미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됐고, 또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통해 정치적으로도 유권자들의 1차 판단을 받았습니다. 아직 진행 중인 사안이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수사나 사법 처리 절차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 한 이 사건이 갖는 정치적 파급력은 상당히 제한적일 걸로 보입니다. (친트럼프 진영은 이미 해당 사건을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한 반면, 반트럼프 진영은 명백한 위법행위이자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달리 바이든 대통령의 기밀 유출 사건은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지난 9일, 바이든 대통령의 개인 사무실에서 우크라이나와 이란, 영국 등과 관련된 기밀 문건이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습니다. 부통령 재직 시절 문건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들이 사무실을 정리하다 발견한 겁니다. 백악관은 이를 국립문서보관소에 바로 보고했고 서류들은 다음 날 국립문서보관소로 이관됐습니다.


하지만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사무실뿐 아니라 사저에서도 기밀 문건이 추가로 발견된 겁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변호사인 리처드 사우버는 기밀 표시가 돼 있는 소량의 문건이 윌밍턴 자택의 차고에 있는 창고에서 발견됐고, 거기에 딸린 방에서도 문건 하나가 발견됐다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 기밀 문건이 발견된 뒤 바이든 대통령의 변호인들이 추가적인 기밀 문건의 존재 가능성에 대비해 자택 등을 지속해서 조사한 결과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즉시 문건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으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도 현지시간 12일 바이든 대통령의 기밀문서 유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로버트 허 전 메릴랜드주 연방 검찰청 검사장을 특별검사에 임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허 특검은 한국계로, 트럼프 정부 시절 법무부 수석차관보를 지낸 인물입니다. 파장이 더 커지기 전에 정공법을 택한 걸로 보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 퇴임 당시 기밀 문건 유출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바이든 대통령이었던 만큼 그에게 불어닥친 역풍 또한 컸습니다. 이번 중간 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이번 사건에 대한 의회 조사의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습니다.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 개인 공간에서 발견된 기밀문서와 관련해 의회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압박했습니다.

또 하원 감독위원장인 공화당 제임스 코머 하원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기밀 접근 권한도 없는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가 여전히 사저를 뒤지고 있다"며 "그곳은 범죄 현장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윌밍턴 사저를 '범죄 현장'으로 언급한 겁니다. 그러면서도 법무부가 임명한 특검에 대해서는 "특검이 임명됐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뒤"라면서 바이든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 조치에는 회의감을 나타냈습니다.


공화당에서는 당시 비밀 해제 권한이 있던 트럼프 대통령이 가지고 나온 문건이 문제라면, 그런 권한도 없던 바이든 부통령이 갖고 나온 문건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며 공세를 퍼붓고 있습니다. 매카시 하원의장은 특히 비밀 문건 유출 사건의 공개 시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바이든 정부 측이 지난해 11월 중간 선거 전에 문건이 유출된 사실을 알고도 두 달이나 지난 뒤에나 이를 공개했다는 겁니다.

매카시 의장은 "놀라운 건 기밀 문건 유출을 알게 된 것이 중간선거 전이라는 것입니다. 수사당국은 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했던 것과 다르게 하는 겁니까? 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습격했습니까?"라고 말하며 현 정부의 이중잣대를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 유출 문건이 발견된 시점은 지난해 11월 2일로 알려졌는데, 중간 선거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던 그 당시 해당 사실이 공개됐다면 선거 결과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걸로 추정됩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우 비밀 문건 유출 뿐 아니라 세금 문제와 의회 폭동 사태 책임론 등 여러 건을 두고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이번 사건만으로 수세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유리한 국면을 맞게 된 건 확실해 보입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래저래 타격이 불가피할 걸로 보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비밀 문건과 함께 발견된 문건 상당수가 기밀로 분류되지 않는 바이든 대통령의 개인적 문서들이라는 점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유출된 기밀 문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또 어느 정도의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냐'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바이든 대통령이 유출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수사 결과가 법적 책임에 대한 문제라면, 인지 여부는 법적 책임과 함께 도덕적, 정치적 책임을 동시에 져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알고 있었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한 것 자체가 미국판 '내로남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의식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바이든 대통령도 초기 해명부터 문건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4년간 쓰던 사무실을 정리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딸려 오는 문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에게 관대한 미국의 정치 문화도 이런 일이 생기는데 한 몫 했을 수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법적, 정치적, 도덕적 책임 앞에 답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두 전∙현직 대통령이 비슷한 혐의로 동시에 특검 수사를 받는 전례 없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내년 미국 대선 상황은 더욱 알 수 없게 됐습니다. 그만큼 미국과 안보, 경제를 함께 꾸려 나가야 하는 우리의 셈법도 복잡해지게 됐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