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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IRA 보조금' 개악 '조 맨친'…또 발목 잡나

[월드리포트] 'IRA 보조금' 개악 '조 맨친'…또 발목 잡나
올 한 해 경제 분야 10대 뉴스를 꼽자면 그 중 하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일 겁니다. 이 법으로 발생한 전기차 보조금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국 정상에서부터 고위급, 실무자까지 잇따라 머리를 맞댔습니다. 현대차라는 한 대기업의 피해 구제 차원을 넘어 양국 간 신뢰가 걸린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인 지라 선거를 앞두고 정권 차원에서 밀어 붙인 법을 통과 직후 고친다는 게 말처럼 쉬울 리 없었습니다. 사실상 연내 법 개정이 물 건너 가면서 이제는 하위 규정인 시행 지침을 통해 우리 기업의 이익을 지키고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와 기업도 미 재무부에 2차례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현대차, 전기차

전기차 문제로 좁혀 본다면 ①현대차 같은 미국 내 투자 예정 기업에 대해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도록 한 규정 3년 유예 ②북미에서 일부 조립만 해도 보조금 지급 ③보조금 지급에 별다른 조건 없는 '상업용 전기차' 범주에 렌터카와 리스 차량도 포함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사실 위 3가지 모두 미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유연하게 해석하지 않는 한 수용하기 어려운 조항들입니다.
 

"엄격한 규정 우회 안 돼"

맨친 미국 의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올 연말 안에 법 하위 규정인 미 재무부 시행 지침이 발표될 예정이어서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제가 통화한 관계자 대부분이 연말 휴가 계획을 접은 상태였습니다.) 시행 초기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EU도 국가보조금 제도 개편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대미 압박 수위를 놓이고 있습니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예상치 못했던 암초가 나타났습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제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민주당 소속 조 맨친 상원의원이 우리 정부의 요구사항에 반대하는 서한을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에게 보낸 겁니다. '여당 내 야당' 혹은 키맨(Key Man)으로 불리는 맨친 상원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었던 '더 나은 재건(BBB) 법안'에 반대하며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 인물입니다. BBB 법안은 그의 요구에 따라 훨씬 축소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통과됐습니다.

맨친 상원의원은 법안 합의 과정에서 미국 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자신의 입장을 반영해 이번에 문제가 된 보조금 조항, 그러니까 북미산 최종조립, 배터리, 광물 조건을 BBB 때보다 한층 강화해 집어 넣은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커스틴 시네마 상원의원의 탈당으로 상원 내 의석이 50석으로 줄면서 맨친 의원 동의 없이는 법안 처리가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맨친 상원의원은 이번에 옐런 재무장관에게 보낸 서신에서, 유감스럽게도 일부 차량 제조사와 외국 정부가 재무부에 해당 규정을 넓게 해석해 미국 자동차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렌터카, 리스 차량, (우버 등) 공유 차량에도 (보조금을) 허용해주기를 요청하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이는 엄격한 규정을 우회하는 것으로 이를 허용할 경우 기업들이 북미 지역 투자를 늘리지 않고 대신 기존과 같이 사업을 이어가고 미국 자동차산업의 위험성은 심화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이달 초 미 정부에 제출한 2차 의견서를 통해 렌터카나 리스 차량으로 쓰이는 전기차도 상용차로 폭넓게 인정해 세액 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렌트∙리스 등 임대 기간이 끝난 전기차 구매 시 중고차에 적용되는 최대 4천 달러, 우리 돈 약 520만 원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는데, 이를 정면으로 반대한 것입니다.
 

"미국 돕고 더 강력하게"…그렇게 될까?

미국국기, 전기차

업계에서는 맨친 상원의원이 미국 내 자동차 업계에서 요구를 받았을 가능성이 큰 걸로 보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제정에 앞장 선 맨친 의원이 해당 법에 대한 엄격한 해석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하위 규정을 통해 문제 해결을 모색했던 우리 정부나 미국 정부 모두 일정 부분 부담이 불가피해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물론 EU와 일본 등 주요 동맹국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선 상황이 부담스러웠던 걸까요? 맨친 상원의원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상 미국 내 부품 조달 요구로 인해 많은 동맹국이 속상해할 수 있다면서도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동맹을 아프게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며, 미국을 돕고 더 강력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했습니다.

그는 미국을 돕고 더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보조금 조항은 WTO와 FTA 규정 등 관련 국제 규범을 위반했다는 데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작은 결함'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면서도 문제가 있음을 시인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조 맨친 식의 미국 중심주의가 미국에게 어떤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는 미국 내 언론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인 파리드 자카리아 씨가 한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눈부신 성공은 미국의 독단적 일방주의와 편협한 국익추구에 위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지출법안에 '미국산 구입' 의무조항을 집어넣고, 미국에서 생산된 그린 테크놀로지에 정부 보조금을 제공하는 등 바이든 행정부 경제정책에 담긴 보호주의 정책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 모든 조치들은 1940년대 말 이후 워싱턴이 후원해온 국제 시스템의 핵심인 열린 시장과 자유무역 규정에 위배된다. 프랑스 재무장관은 워싱턴이 중국의 정부주도형 산업정책을 모방하고 있다며 볼멘 소리를 내질렀다. 한 고위 유럽연합 관리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미-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워싱턴이 EU의 우려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며 회의 도중 퇴장했다."

중국과의 대결에서 '규범에 입각한 국제질서'를 강조해온 미국이 국익을 앞세워 혼자만의 길을 갈지, 지금이라도 통상 규범에 맞게 동맹의 손을 잡고 갈지 이제 미국의 선택이 남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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