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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쌍방울캐슬② 판 · 검사에 의원까지…김성태의 '인의 장막' 사외이사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사외이사. 대주주의 불법 경영과 전횡을 막기 위해 만든 제도입니다. 대주주와 관련 없는 회사 외부 사람이 이사진으로 참석하면 대주주의 독단적인 경영을 막을 수 있지 않겠냐는 겁니다. 사채업으로 돈을 모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도 버젓한 기업가로 변신한 뒤, 쌍방울과 6개 주요 계열사에서 사외이사를 영입했습니다. 하지만 그 쓰임새는 전혀 달라 보입니다. 쌍방울그룹 사외이사 전부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일부 사외이사는 경영 감시 활동은커녕 발 벗고 김성태의 불법행위를 적극 변론까지 해줬습니다.

쌍방울그룹, 41명 사외이사…법조인 17명·관료&정치인 11명


먼저 쌍방울그룹이 김성태의 영향력 아래 들어간 이후 임명된 사외이사 면면을 살펴보겠습니다. SBS 탐사보도부 끝까지판다팀은 순환출자 구조를 이루고 있는 쌍방울과 6개 주요 계열사의 사외이사를 전수 분석했습니다. 쌍방울은 김성태가 불법 대부업체 레드티그리스로 인수한 2010년을, 광림은 김성태 관계자들이 대주주로 있는 칼라스홀딩스가 광림을 인수한 2013년을, SBW생명과학(전 나노스)은 '쌍방울과 광림 컨소시엄'이 인수한 2016년부터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미래산업과 비비안은 2019년, 디모아(전 인피니티엔티/전 포비스티앤씨)과 아이오케이컴퍼니 2020년이 기준입니다. 모두 김성태의 영향력 시작되거나 측근들이 주요 임원으로 임명되기 시작한 해입니다.
쌍방울그룹 7개 계열사 사외이사

쌍방울그룹 7개 회사에서 임명된 사외이사는 모두 47명이었습니다. 여기서 2개 회사에서 번갈아가며 임명된 중복 인사를 제외하면 정확히 41명입니다. 41명 가운데 법조인인 변호사가 17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다음으로 관료와 정치권에서 활동한 인사가 13명, 다음으로 가족이 2명, 의사가2명, 언론인 출신과 회계사가 각각 1명씩 이었습니다. 금융권을 포함한 기타가 8명인데, 이 중엔 김성태의 측근도 포함돼 있습니다.
쌍방울그룹 중 쌍방울의 사외이사 명단

법조인 17명 중 검사 출신 9명…판사와 경찰 출신도 각 1명씩


법조인이 쌍방울그룹 사외이사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17명인데, 그중 10명은 검찰에 몸담았던 인물들입니다. 2011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를 끝으로 관직을 떠난 양재식 변호사는 그해 쌍방울 사외이사로 5년 넘게 활동했습니다. 국정농단 특별검사보로도 유명한 인물이죠. 동부지검장을 지낸 송찬엽 변호사는 SBW생명과학(전 나노스) 사외이사를 2017년부터 지금까지 맡고 있습니다. 오현철 전 서울남부지검 2차장도 퇴직 후 7개월 만에 광림 사외이사직에 올라 지금도 유지 중입니다.
쌍방울그룹 중 광림의 사외이사 명단

판사 출신과 경찰 출신 변호사도 각각 1명씩 쌍방울그룹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안호봉 변호사는 디모아에서 2021년부터 1년 넘게 사외이사를 맡았고, 전북경찰청장까지 올랐던 강인철 변호사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아이오케이컴퍼니에서 2020년부터 지금도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사건'에 연루된 법무법인 엠(M) 소속 변호사들도 눈에 띕니다. 지금은 청산된 법무법인 엠(M) 법인등기를 보면 검찰 출신인 이태형·이남석·김인숙 변호사가 구성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치영 변호사와 김모 변호사까지 5명이 지분을 가진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김모 변호사를 제외한 이태형(비비안) 이남석(쌍방울&미래산업) 김인숙(디모아) 전치영(디모아) 4명 변호사가 모두 쌍방울그룹에서 사외이사를 지냈습니다.

법조인 출신 쌍방울그룹 전 사내이사는 김성태가 법조인 사외이사를 유독 사랑한 이유에 대해 "검찰 수사를 받았던 김성태가 평범한 변호사보다는 검사 출신 변호사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또 다른 법조인 출신 전 사외이사는 "법률적인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도움을 받기 위해서 였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쌍방울그룹 중 SBW생명과학(전 나노스)의 사외이사 명단

구속된 이화영부터 유독 많은 대북 전문 사외이사들


쌍방울그룹 사외이사 중 관료나 정치권 출신은 11명입니다. 이화영 전 의원(민주당)은 쌍방울 사외이사를 지낸 게 악연이 돼 결국 뇌물 혐의를 받아 구속 기소된 상태입니다. 4선 장영달 전 의원(민주당)은 2019년부터 지금도 비비안 사외이사이며, 역시 4선의 이규택 전 의원(민주당->친박신당)도 쌍방울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김방림 전 의원(민주당)은 광림 사외이사를 거쳐 현재는 쌍방울 사외이사 직을 유지 중입니다. 홍경표 전 여의도연구원 안보국방위원장은 '윤석열을 사랑하는 모임 회장' 직함도 가졌는데, 2021년부터 대선 직후인 올해 3월말까지 아이오케이컴퍼니 사외이사였습니다.

관료나 정치권 출신 사외이사에는 유독 대북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김형기 전 통일부 차관은 광림을 거쳐 현재 SBW생명과학(전 나노스) 사외이사를 맡고 있고, 역시 SBW생명과학 사외이사 명단에는 김정기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이 포함됐습니다. 2019년부터 1년간 SBW생명과학 사외이사였던 김영수 전 국회 대변인은 현대아산 출신입니다. 대북 송금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SBW생명과학(전 나노스)에 대북 전문 사외이사들이 많이 포진한 건 우연은 아닐 겁니다.

자신을 구속시킨 검사를 사외이사로


쌍방울그룹 사외이사 명단엔 김성태를 구속 시킨 검사 출신 변호사도 있습니다. 2014년 남부지검에서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첫 출범하며 시작한 수사에는 '쌍방울 주가조작'이 있습니다. 여기서 부부장으로 김성태를 구속시키고 유죄 판결까지 이끌어낸 A변호사는 2021년부터 최근까지 김성태가 인수한 회사 사외이사를 맡으며 월급을 받았습니다.
A변호사는 "(쌍방울그룹 사외이사인)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와 맡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 "변호사 개업을 한 마당에 (김성태를)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언론에 (사외이사직 맡은 내용이) 나오고 그래서 그만둬 버렸다"고 밝혔습니다. 월급은 160~180만 원 정도였다고 덧붙였습니다.
쌍방울그룹 중 비비안&아이오케이컴퍼니의 사외이사 명단

월급 300만 원에 사외이사 제도 형해화


끝까지판다팀이 접촉한 쌍방울그룹 사외이사 중 상당수가 "월급이 2~4백만 원 정도로 큰 액수는 아니"라고 억울해 했습니다. "하는 일이 없다" "회사에 나간 적이 거의 없다" "용돈벌이 수준이다"라는 겁니다. 적은 액수를 받고 조언 정도 수준의 일을 했고, 회사에 나가지 않았으니 쌍방울그룹의 불법행위 의혹에 대해서는 내용을 모른다는 취지였습니다. 정치권 출신 쌍방울그룹 전 사외이사는 "연말 행사가 있을 때나 한 번씩 얼굴을 본다"며 "보수도 세금 빼면 남는 게 없다"고 답했습니다. 법조인 출신 사외이사는 "월 300만 원 받아 변호사 사무실 운영 비용으로 썼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사외이사 제도의 취지는 '불법 경영 감시'입니다. 법적 책임은 없을지언정 '모른다'는 게 변명이 될 순 없습니다.
쌍방울그룹 중 디모아(전 인피니티엔티)&미래산업의 사외이사 명단

김성태 변호에 발 벗고 나선 사외이사들


대주주의 불법 경영 행태를 감시한 게 아니라 이들의 불법 행위를 직접 변호한 사외이사도 있습니다. 맹주천 변호사와 양재식 변호사는 쌍방울그룹에서 사외이사직을 수행하는 와중에 김성태와 그 동생의 주가조작 사건에 변호인으로 참여했습니다. 양 변호사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쌍방울 사외이사를 지냈는데, 김성태의 동생 김모 씨의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 씨를 직접 변호했습니다. 1심은 2013년, 2심은 2015년 선고됐는데, 김 씨 변호인이었습니다. 김 씨는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를 받았는데, 재판 당시 쌍방울 관리이사였습니다.

맹 변호사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광림 사외이사를 지냈고, 이후 지금까지 쌍방울 사외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양 변호사와 함께 김성태 동생 김모 씨를 1심과 2심에서 변호한 것은 물론, 김성태의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에서도 김성태를 직접 변호했습니다. 2017년 선고된 김성태의 1심 재판에서 변호인단에 포함됐다 1심 도중 사임했습니다. 또 김성태의 대부업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2017년 1심 벌금 1,500만 원이 선고됐는데, 여기에 맹 변호사는 변호인단으로 참여했습니다.

황당한 행위 아니냐는 질문에 맹 변호사는 끝내 답하지 않았습니다. 양 변호사는 "보기 나름일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외이사 재직 도중에 발생한 횡령·배임 부분이라면 변론 하는 게 맞지 않지만, (제가 선임한 사건은) 사외이사를 하기 전에 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쌍방울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용산구에 그룹 계열사 로고가 나열돼 있다

사외이사 재임 이전에 쌍방울 관련 각종 송사에 참여한 검사 출신 변호사도 있습니다. 검찰 출신 이남석 변호사는 쌍방울과 미래산업 사외이사를 2020년부터 지냈는데, 그 이전에 김성태의 쌍방울 주가조작에 연루돼 기소된 배상윤 KH그룹 회장을 1심에서 변호하다 사임했습니다. 2017년부터 SBW생명과학 사외이사 직을 유지 중인 송찬엽 전 동부지검장은 김성태의 대부업법 위반 재판에서 맹주천 변호사와 함께 김성태를 변호하다 재판 도중 사임했습니다.
검찰 수사를 피해 해외로 도피 중인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김성태의 방패가 된 사외이사

김성태는 검사, 판사, 경찰 출신 변호인과 국회의원 출신 인사들로 사외이사를 꾸렸습니다. 그 사외이사들은 쌍방울그룹의 불법행위를 사전에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일부 전관 출신 사외이사들은 김성태와 그 일당의 주가조작 사건에 직접 방패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방패 역할을 잘해서 사외이사가 된 건지, 사외이사를 사건 수임 수단으로 써서 방패 역할을 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김성태는 사외이사를 방패막이 삼아 거액을 손에 쥐고 흔들며, 우리나라 법과 제도를 뒤에서 비웃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 [취재파일] 쌍방울캐슬① 도쿄에셋에서 쌍방울까지…불법 사채업자의 그룹 회장 입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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