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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인비-남기협 부부, 세계 최고의 '골프 궁합'…롱런의 비결

-박인비 "내 꾸준함의 비결은 남편과 함께 하는 것"
-통산 21승 중 20승을 2011년 약혼 이후 달성
-박인비의 집중력과 남편의 족집게 레슨 결합…세계 최고의 '골프 궁합'
-KPGA 프로 출신 남편, 자기 꿈 접고 아내에 올인…부부가 함께 '자아실현'

박인비 선수가 미국 LPGA 투어의 올해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피레이션을 하루 앞두고 대회장인 캘리포니아주 랜초 미라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6년 만에 메이저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기자회견 말미에 선수 생활을 꾸준히 오래 하는 비결을 묻자 "남편과 함께 다니는 것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남편은 안정감도 주고, 나의 스윙을 늘 봐주니 나쁜 스윙을 안 하게 된다. 내 몸에 맞는 스윙을 하는 것이 꾸준함의 비결"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영성 취파용 박인비 부부

박인비를 오늘날의 '골프여제'로 만든 주인공은 바로 남편이자 스승인 남기협 프로입니다. 박인비 자신뿐 아니라 곁에서 지켜본 부모와 친척, 가까운 지인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박인비는 2008년 20세 나이에 최고 권위의 메이저대회인 US 여자오픈에서 LPGA 투어 첫 우승을 신고한 후 오랫동안 슬럼프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에게 "골프를 그만두고 비디오 가게를 차리고 싶다"는 말까지 할 정도로 방황하며 깊은 침체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던 그녀의 곁에서 마음을 다잡아준 사람이 바로 남기협 씨였습니다. 박인비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알고 지내던 7살 위 오빠 남기협 프로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갖게 됐고, 부모 몰래 사랑을 키워오다 2011년 말 23살에 양가 부모의 허락을 받아내 약혼을 했습니다. 당시 골프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창창한 나이의 골프 선수가 이성 친구를 사귀는 순간 골프는 그걸로 끝장난다는 생각이 만연했기 때문에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남기협 프로는 박인비와 약혼에 앞서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각서를 쓰게 했습니다.
 
첫째, 앞으로 5년간은 절대 골프 그만둔다는 얘기 안 하기.
둘째, 짜인 시간표대로 무조건 따라 하기.

KPGA 투어 프로였던 남기협은 자신의 투어 생활을 완전히 접고 박인비에게 올인하기로 결심했고, 박인비는 그런 약혼자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의 말이라면 군말 없이 무조건 따랐습니다. 두 사람을 곁에서 지켜본 박인비 부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걸핏하면 골프를 그만두겠다던 인비가 약혼을 하고 나니 그때부터 표정이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기고 성적도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그러다 2012년 여름 메이저대회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덜컥 우승한 거죠. US여자오픈 첫 우승 이후 4년간 우승이 없었는데, 약혼 8개월 만에 우승하는 걸 보고 '아, 진작에 두 사람을 맺어줄 걸…사랑의 힘이 이렇게 무섭구나' 느꼈죠. 그때 인비한테 전화가 왔어요. '골프 시켜줘서 엄마, 아빠 너무 고마워요.'라고 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이게 시작이었습니다. 박인비는 그동안 곁에서 뒷바라지해줬던 부모 대신 약혼자 남기협과 함께 투어를 다니며 그야말로 특급 열차를 탄 것처럼 승승장구했습니다. 2012년 2승(메이저 1승), 2013년 6승(메이저 3승)을 몰아치며 세계랭킹 1위에 올랐습니다. 이어 2014년에도 3승(메이저 1승)을 기록했고, 2014년 가을 결혼해 정식 부부가 된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2015년 5승(메이저 2승)을 달성했는데, 메이저대회 LPGA 챔피언십에서 3년 연속 우승 대기록을 세우더니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으로 박세리도 이루지 못한 '커리어그랜드슬램(4대 메이저대회 모두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겁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죠. 이듬해 2016년에는 손가락 부상을 딛고 기적처럼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남녀 통틀어 사상 최초의 '골든커리어그랜드슬램'이라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2017년, 2018년에도 1승씩 추가한 박인비는 숙원이었던 국내 무대 첫 우승(2018년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까지 달성하면서 팬들과 약속을 지켰습니다. 2018년 7월 세계랭킹 1위 자리도 다시 되찾았습니다.

목표를 이룰 만큼 이룬 박인비는 소진된 에너지가 다시 채워질 때까지 출전 대회 수를 대폭 줄이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남편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즐겼습니다. 인생에서 골프의 비중을 줄이자고 마음먹으니 오히려 골프가 더 즐거워졌습니다. 도쿄올림픽 출전 결심이 서자 다시 매섭게 칼을 갈았고 2020년에 1승을 추가한 뒤 2021년 첫 출전 대회부터 우승컵을 들어 올려 통산 21승과 함께 세계랭킹을 2위로 끌어올리며 올림픽 2연패에 대한 청신호를 켰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앞서 그녀 자신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남편이자 스승인 남기협 프로가 늘 곁에서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박인비는 스윙이 흐트러지고 부진에 빠질 때마다 남편과 의논했고, 남편은 자신이 직접 연습장에 가서 공을 수백 개씩 쳐보면서 아내의 스윙 궤도를 연구하고 분석해 아내에게 '족집게 팁'을 줬습니다. 박인비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남편의 조언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항상 옳았습니다.

박인비에게 남기협은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사랑의 동반자이자 틀어진 샷을 올바르게 잡아주는 완벽한 스승입니다. 세계적인 교습가 데이비드 레드베터는 박인비를 중학교 3년 내내 지도했지만 손목 코킹이 안 되는 박인비의 신체적 특징을 간과해 손목 부상만 초래했습니다. 타이거 우즈의 스승이었던 부치 하먼이 코킹 없이 가파르게 팔을 들어 올리는 업라이트 스윙을 박인비에게 권했고, 여기에 완벽한 어깨 턴과 일정한 리듬의 다운스윙 궤도를 찾아 현재의 '박인비표 스윙'을 완성한 사람이 바로 남편 남기협입니다.

KIA 클래식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박인비

모두가 부러워하는 '세계 최고의 골프 팀워크'로 함께 꿈을 실현해가는 박인비-남기협 부부는 지난주 KIA 클래식 우승에 이어 이번 주엔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에서 열리는 올해 첫 메이저대회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2주 연속 우승이자 6년 만에 메이저 우승에 도전합니다.

2013년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하고 연못에 풍덩 빠지는 박인비 선수

2013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이라는 이름으로 열렸던 이 대회에서 우승했던 박인비는 당시 약혼자였던 남기협 프로와 함께 '챔피언의 연못'(포피스 폰드)에 몸을 던졌습니다. 8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이젠 남편의 손을 잡고 연못에 시원하게 뛰어드는 장면이 재현될지 기대됩니다. 함께 지켜보시죠.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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