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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코로나19 기세에 눌린 계절 독감…올해 유행 안하나?

[취재파일] 코로나19 기세에 눌린 계절 독감…올해 유행 안하나?
● 12월은 독감의 계절인데…"환자 없어요"

12월을 맞아 본격 겨울로 접어들었습니다. 기온도 뚝 떨어져 낮에도 두꺼운 외투를 입어야 할 정도로 추워졌습니다. 겨울 하면 '인플루엔자(이하 독감)'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마련인데, 올 겨울은 코로나19 기세에 눌린 독감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질병관리청이 매주 집계하는 질병관리통계에 따르면, 11월 28일 기준 48주 차의 독감 의심환자 발생은 1천 명당 2.6명으로 유행기준인 5.8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예년 같으면 독감은 11월 초중순 유행 조짐을 보이기 시작해, 12월엔 의심환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올 겨울은 그런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지난해의 경우 11월 3일~9일 주간에 독감 유행 주의보가 발령됐고, 크리스마스 즈음인 12월 22일~28일 주간에 독감 의심환자 발생이 유행 기준인 1천 명당 5.9명의 8배가 넘는 49.8명 기록했습니다. 이후 2020년 2주 차(2020.1.5~1.11)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주목할만한 점은 독감이 정점에 달하고 환자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봄철 2차 유행은 없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2019-2020 절기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 발령 기간은 총 20주(2019.11.15~2020.3.27)로 1년 전인 2018-2019 절기보다 12주, 3개월이나 짧았습니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자 독감의 기세가 일찍 꺾인 겁니다.

송인호 취재파일용-그래프

● 개인위생 수칙 강화, 해외 입국자 감소 등이 '독감' 제압

이처럼 매년 이맘때 맹위를 떨치던 독감이 잠잠한 건 역설적으로 코로나19 영향 때문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간 간섭과 경쟁이라고도 말하지만, 그보다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개인 위생 수칙과 거리두기 강화에 1차적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올 2월 대구 경북지역에서 코로나19가 대유행하자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등 개인위생 수칙이 강조됐고, 이후 거리두기 강화로 사람들의 밀접 접촉이 줄어들면서 독감 유행이 조기에 끝난 걸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전 세계 코로나 유행으로 국제 항공편이 거의 중단되면서 해외 입국자 수가 급감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입니다. 보통 외국에서 독감에 걸린 환자가 국내로 들어와 바이러스를 전파하는데, 올해는 입국자 수 자체가 줄어들었고 2주 동안 의무적으로 격리되다 보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확산할 틈이 없었다는 겁니다.

● 인플루엔자 유행, 올 겨울은 없다?…"위험한 생각"

겨울이 됐지만 독감 유행이 조짐조차 없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 유행하는 이른바 '트윈데믹'이 현실화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특히 중증 이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지고,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결합한 초강력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도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일부 병의원 전문의들 사이에선 '올해 인플루엔자 유행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하기도 하지만, 아직 유행이 끝났는지 단언할 수 없다는 게 감염병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현행 인플루엔자 감시 체계는 전국 200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의심 환자를 진료하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간이 키트 검사로 확인한 뒤 질병청에 보고하게 됩니다. 또한 200 병상 이상 병원급 의료기관 200여 곳을 대상으로 인플루엔자 입원환자 감시를 실시해서 환자 발생을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독감 의심환자를 감시하고 당국에 보고하는 병의원에서 올해 독감 검사를 별로 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발열이나 인후통, 기침과 같은 호흡기 증상이 있어 병의원을 찾으면,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곳도 있지만, 진료를 하지 않고 곧바로 선별진료소로 보내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고 하는 곳도 많기 때문입니다.

김우주 교수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의 인터뷰입니다.

"인플루엔자 증상과 코로나 증상이 유사해서 감시 체계가 있는 의원급에서 코로나 감염 우려 때문에 환자를 선별진료소나 발열진료소로 보내고, 거기에서는 코로나 검사만 하거든요. 코로나 검사는 무료고 국가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인플루엔자 검사는 안되고 있는 거죠. 실제 인플루엔자가 시작됐다 하더라도 놓칠 우려가 있는 겁니다."

방역당국도 이를 모르고 있는 건 아닙니다. 질병관리청도 독감 감시 체계를 강화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기존의 감시 체계에 더해 타미플루 처방 등 독감과 관련한 의료정보들을 정밀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독감 검사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일선 병의원에서 독감 의심 환자 내방이 줄어 별도의 독감 검사를 안 하고 있는 건 맞지만, 병의원이 비말 등의 확산을 우려해 병원내에서 독감 검사를 꺼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또 환자 스스로 독감 증상이 있어도 병원을 가지 않고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만 받은 후 자가 치료를 하는 경우도 많은 걸로 파악됩니다.

● 혼란스러운 독감 의심 환자…'호흡기 발열 전담 클리닉' 확충 서둘러야

독감이 잠잠하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건 아닙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여 주춤하면 이번엔 독감이 기승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정부는 선별진료소의 부담을 줄이고, 환자 불편을 줄이기 위해 전국 보건소를 중심으로 500곳의 '호흡기 발열 전담 클리닉'을 설치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보건소의 여력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이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또 음압병상 등 시설, 장치를 구축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게 당국의 설명입니다.

이런 고충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올 겨울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진정 승리하려면, 인플루엔자의 뒤늦은 유행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이미 인플루엔자와 코로나19를 동시 진달할 '키트'가 개발돼 곧바로 병의원이나 선별진료소에서 사용 가능한 만큼, 동시 진단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아울러 '호흡기 발열 전담 클리닉'도 보건소 중심 뿐만 아니라 민간 병의원이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인센티브도 확충해야 합니다.

독감, 백신 접종

독감 백신과 관련한 불신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한 것으로 신고된 108명 모두 독감 백신 접종과 사망 사이에 인과성이 없는 것으로 보건당국은 결론 내렸지만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막연한 불안감도 문제지만 정부가 이런 불안을 없애기 위해 국민에게 좀더 다가가야 합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무료 독감 백신 대상자 중 아직 접종하지 않는 분들은 이달 말까지 접종을 마쳐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특히 노약자와 만성질환자의 경우 독감 예방 접종은 꼭 필요하다는 게 정부와 의료계의 공통된 입장이기도 합니다.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이 미국 65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독감 접종과 코로나19의 사망률의 상관성을 분석한 결과 독감 백신 접종률이 10% 높아지면, 코로나19 사망률은 28% 줄어든다는 논문도 발표됐습니다. 지금은 잠잠한 독감이 언제 유행할지 모릅니다. 봄이 끝나고 장마가 시작되는 6월 전까지 독감은 언제든 고개를 들 수 있기 때문에 대비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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