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준비 안 된 '온라인 개학'…교사 · 학부모 '대혼란'

● 교육부, 4월 9일부터 고3 · 중3부터 순차적 '온라인 개학'

초·중·고교의 개학이 또 연기됐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확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교육부가 고육지책으로 개학을 연기하고, 대신 원격 수업을 통한 '온라인 개학'을 택한 겁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브리핑에서 "감염병 장기화에 대비하고 미래 교육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원격 교육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은 정보통신(IT) 강국이며, 스마트기기 보급률과 정보통신 능력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역량 있는 교사, 학생에게 헌신적인 전문가가 45만 명이나 있다"며 온라인 개학 선택의 당위성을 설명했습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맞습니다. 한국은 세계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정보통신 강국입니다.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5%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이나 어른이나 불안 증세를 느낄 정도로 종일 몸에 지니고 다니는 분신이 된 지 오래입니다. 뿐만 아니라 데스크톱, 노트북, 태블릿 PC 등 컴퓨터를 보유한 가구는 전체의 71.7%에 달합니다. 하지만, 학교 교육을 '원격 수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이런 정보통신 인프라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 학교는 본질적으로 '대면 수업'…'원격 수업'은 쌍방향 소통 어려워

학습 공백을 매우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그래도 교육부의 결정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에 대비해 좀 더 일찍 '온라인 개강'에 대한 대비책과 매뉴얼을 만들었어야 합니다. '우선 시행하고 보자'는 식의 대책은 사회적 혼란을 가져올 게 불 보듯 뻔합니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학교에 '온라인 수업'을 실시토록 하는 건 어찌 보면 책임을 일선 학교와 교사, 학부모들에게 떠넘기는 처사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필자가 통화한 교사와 학부모, 학계 전문가 모두 온라인 개학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시행 방식에는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온라인 개학을 위해서는 '원격 수업(distance learning)'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어학이나 입시 등의 분야에서 실시간 또는 사전 녹화 온라인 강좌가 보편화된 지 오래입니다. 학원에 직접 가지 않아도 되고, 수강료도 저렴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일선 교육 현장에 잘 적용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초·중·고교의 수업은 기본적으로 교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닌, 쌍방향 소통의 학습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교사가 학생의 특성과 수준을 파악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인성 지도도 병행해야 합니다. 토론 수업도 해야 합니다. 선생님과 학생 간 '라포(rapport)', 즉 친밀한 관계 형성이 안 된 상태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는 건 교사들에게 매우 힘든 일입니다.

교실

● '원격 수업'에 학생들간 격차 더 벌어질 수도…"교육 불평등 심화 우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온라인 학습을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격차입니다. 김포 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교사가 학생을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자기주도적 학습관리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교육의 결과가 더 좋아질 것이고,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오히려 학교에 오는 것보다 교육의 결과가 더 떨어져서 양극화가 심해질 것 같다"고 우려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온라인 수업에 따른 교육 불평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새겨들어야 할 부분입니다.

학부모들도 똑같은 걱정을 합니다. 온라인 학부모 커뮤니티에서는 초등학생의 원격 수업에 대한 우려가 벌써부터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른도 40분 동안 앉아서 온라인 강의를 듣기 힘든데 집중력 부족한 초등생이 어떻게 가만히 앉아서 들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맞벌이의 경우 누가 자녀를 원격 수업 시간에 맞춰 자리에 앉히고 기기가 잘 작동되는지 돌봐줘야 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수업을 못 따라가면 공부방이나 학원에 보내겠다는 학부모도 있습니다.

●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통신망 구축, 스마트기기 등 보급해야

초·중·고 자녀가 둘 이상인 경우 실시간 교육을 하려면 노트북, 태블릿 PC 등 스마트기기를 사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스마트폰이 있긴 하지만, 원격 수업용으로는 화면이 너무 작기도 합니다. 교육부가 최근 학교 67%를 조사한 결과 스마트기기가 없는 학생도 17만 명 정도로 파악됐습니다. 교육부는 일선 학교가 보유한 태블릿 PC 등 스마트기기를 대여하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온라인 수업을 받으려면 기기뿐만 아니라 각 가정에 무선인터넷망도 깔려 있어야 합니다.

사상 첫 온라인 개학

학교도 마찬가지로 원격 수업을 위한 통신망이 필요합니다. 교육부가 2018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 무선망 사업을 구축해오고 있지만, 아직 3천600곳 넘는 초·중학교에 무선망이 설치돼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학교에 보급된 대부분의 데스크톱에는 화상통화용 웹캠이 설치돼 있지 않아 교사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수업을 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원격 수업 시범학교나 선도학교로 지정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의 학교에서 원격 수업을 위한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 미국 등 선진국도 코로나에 학교 폐쇄…'온라인 수업'에 골머리

원격 수업에 필요한 통신망 등 인프라 구축도 시급하지만, 학교 수업용 콘텐츠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전달하느냐는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온라인 수업에 익숙지 못한 교사들을 위해 서둘러 자체 연수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합니다. 학교 차원에서 할 수 있지만, 정부가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교육부는 "원격 수업 시범학교를 통해 우수사례를 발굴, 이를 다른 교원에게 공유한다"는 입장이지만, 당장 4월 중 시행해야 하는 일선 학교에서는 혼란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온라인 개학'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이제 미국과 유럽, 중동 등 전 세계의 문제가 됐습니다. 미국도 3만여 초·중·고교가 휴교에 들어간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걱정은 역시 통신망 구축과 부족한 스마트기기의 공급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디지털 학습 격차'에 대한 걱정이 더 큽니다. 미국은 소득과 인종, 교육 수준의 격차가 우리보다 크고 다양해 취약계층 학생이 '원격 수업'에 뒤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교육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교육 선진국인 미국조차 온라인 수업이 학교 수업의 본질을 대체할 수 없다며 고심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팬데믹, 즉 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국면에선 '온라인 학습'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차제에 예비 교사를 양성할 때 이런 '원격 수업'을 정규 교과목하고, 학교 수업의 콘텐츠를 디지털화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기자재 개발 등 온라인 학습에 필요한 인프라를 확충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의 삶과 일자리, 대인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코로나도 종식되겠지만, 제2의 코로나를 대비해 정부와 교육계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