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미친' 전셋값의 덫

[취재파일] '미친' 전셋값의 덫
전세 가격이 미쳤다고 아우성입니다. 정부가 8.28 전.월세 대책을 내놓았지만 사실 전세 대책이라기 보다는 전세 수요를 매매로 돌리겠다는 기조 아래 매매를 권장하는 대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당장 이사할 때가 돼 훌쩍 뛴 전셋값을 체감하는 세입자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습니다. 이런 미친 전셋값은 일단 크게 오른 전세보증금을 내기 위해 대출을 받거나 아니면 더 싼 곳을 찾아 이사를 해야 하는 어려움 외에 여러 가지 사회 경제적으로 세입자는 물론 집주인들에게 고통스러운 문제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몇 가지를 짚어보겠습니다.

우선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날릴 수 있는 깡통 전세를 택하게 될 위험에 놓이기 쉽습니다. 취재 중 만난 세입자들의 말로는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을 찾으면 융자가 없거나 액수가 적은 ‘안전한’ 전셋집은 아예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당장 이사가 급한 세입자들에게 일부 공인중개사가 “괜찮다”고 권하는 융자 있는 집은 나중에 폭탄이 돼 돌아올 수 있습니다. 수도권 한 중형 아파트에 전셋집을 구했던 서 모씨가 그런 사례였습니다. 서 씨는 역시 전세대란이 사회적 문제가 됐던 2011년에 시세보다 3천만원 정도 싸게 전셋집을 구했습니다. 계약 당시 등기부 등본을 살펴봤을 때 은행 1곳에 근저당 설정이 돼 있는 기록이 있었지만 당시 매매 시세를 감안하면 확정일자를 받은 전세보증금까지 문제가 될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년 뒤 재계약 시점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집에서 나가겠다며 전세보증금 반환을 요구하자 집 주인은 “알아서 이사올 사람을 구해서 돈 받아 나가라”는 황당한 소리를 한 뒤 연락을 끊었습니다. 이미 매매 시세는 떨어진 상황에서 근저당 설정액수가 많은 집에 이사 올 세입자는 없었습니다. 집 주인은 얼마 뒤 집을 경매에 넘기고 개인파산을 신청해 버렸습니다. 경매 통보를 받고 가서 확인해 보니 집 주인은 은행뿐 만이 아니라 카드회사 등에 돌려 막기로 돈을 많이 썼고, 임금채권까지 있었습니다. 서씨가 계약했을 당시 집의 매매 시세가 5억원 정도였는데 경매 낙찰가격은 3억2천만원에 불과했고 이것도 모두 은행이 가져가면서 서씨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채 집을 비워져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미 올 들어 7월까지 서 씨처럼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세입자가 5,738명으로 2010년 전체 피해자 숫자보다 많습니다. 집 값 하락으로 경매 최저 가격이 전세 가격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파트 숫자만 올해 수도권에서 375건으로 2009년의 40배나 됩니다. 곳곳에 세입자를 노리는 위험이 있다는 뜻인데 의외로 세입자들이 잘 모르는 점이 있습니다. 전세 계약 당시 등기부 등본을 살펴봤더라도 집 주인의 보이지 않는 ‘빚’은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가장 먼저 경매비용을 빼고, 그 다음에 체납세금과 사업자라면 노동자들에게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합니다. 그런 다음에 근저당 설정이 된 순서대로 지급에 나서는 것인데 집 값 하락 시기에는 전세보증금 차례까지 오기 전에 대부분 경매 낙찰금액이 바닥이 나버립니다. 최근에는 법무부와 서울시가 함께 만든 표준계약서에 집 주인의 체납 세금 등을 공인중개사가 확인한 뒤 표시하는 항목이 생겼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이 계약서가 아직 많이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세입자를 노리는 또 다른 덫은 능력이 안 되는 세입자들에게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권유입니다. 한 부동산 정보업체 조사를 보면 이미 전세 가격이 도시근로자 5년치 소득을 모은 금액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세 가격이 이런데 집 매매 가격은 오죽하겠습니다. 능력이 안 되면 빚을 내야 하는데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될 지 모를 상황에서 아무리 싼 이자라도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권유는 무리한 것일 수 있습니다. 나중에 집 값이 떨어지면 싼 이자로 빚을 냈더라도 빚은 빚 대로 남게 되고 자산가치는 낮아진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사실 시장에서 파는 물건이 잘 팔리지 않을 때 시장 경제에서 택하는 방법은 물건 가격을 싸게 해서 파는 겁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시장 경제 논리가 부동산 가격을 떠 받치는 데는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집 값이 비싸다고 생각해서 안 사고 있는 집의 가격을 내려서 팔리게 할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집 가격은 유지하면서 빚을 내서 집을 사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집 값이 떨어지면 전세 가격은 반드시 떨어지지만 거래가 늘어서 집 값이 오른다고 전세 가격이 떨어지는 일은 없는데 말입니다.

부동산 캡쳐_500
미친 전셋값의 문제는 부동산 시장 차원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SBS <현장21>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세입자 10명 중 6명 이상은 전월세 부담 증가로 씀씀이를 줄였다고 답했습니다. 전월세 인상 부담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2년 전과 비교해 서울시 전세 가격이 평균 10% 뛰었는데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물가상승을 감안한 실질전세가격이 10% 오르면 단기 민간 소비가 3.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총생산(GDP)에 민간소비가 기여하는 비율로 환산해 계산하면 어림잡아 17조원 정도는 되는 규모입니다. 한국 경제가 수출 주도형이라지만 수출 성장세가 주춤하는 상황에서 내수 확대는 경제 성장의 필수적인 조건인데도 내수 확대는커녕 내수 위축을 가져오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부동산 가격 등 자산 가격이 오를 수도 없고, 그렇게 되면 부동산 시장 활성화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결국 빚을 권하는 주택정책은 역대 최대치인 980조원에 이른 가계부채 문제만 악화시키면서 금융시스템 안정에 저해를 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끝이 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정부의 진단과 대책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세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입자를 위한 직접적인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합니다. 우월적인 지위를 가진 집 주인으로부터 비정상적인 임대료 인상을 요구 받는 세입자들이 하소연 할 수 있는 ‘임대료 조정위원회’ 같은 기구가 필수적입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 있는 제도인데 전세가 급격히 월세와, 반전세 형태인 보증부 월세로 전환되고 있는 한국에서도 이제 도입이 필요한 기구라고 생각합니다. 개인간의 거래라고 내버려두기에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미치는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로 건설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공공임대주택은 계획대로 진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당장 필요한 전세 물량을 위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안심주택이나 국토부의 준공공임대주택 같은 물량을 확대하거나 장점만 가져와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일정 기간 임대료 인상을 하지 않도록 계약한 집 주인에게도 인센티브를 주고 세입자에게는 2년마다 인상된 전세보증금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세입자가 고통 받기 때문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라면 당장 그들에게 필요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대책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매매 활성화를 통해 전세 난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그 과정까지 가는 동안 피해를 보게 될 세입자들을 외면하는 허울뿐인 세입자 대책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