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국내 최대 민자발전소에서 무슨 일이?

[취재파일] 국내 최대 민자발전소에서 무슨 일이?
"국내 최대 민자발전소에서 부실 시공이 이뤄지고 있다"

몇 달 전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쉽게 믿기 어려웠습니다. 혹시 개인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사실을 부풀리는 건 아닌지 의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사실에 대한 검증과 무슨 이해관계가 있는지 등을 취재했습니다.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들고나서야 관련 논문과 전문가들의 설명을 통해 익숙하지 않은 용어와 공법을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취재를 하면 할수록 석연찮은 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가 된 곳은 인천시 서구 포스코 에너지 7, 8 ,9호기 복합발전소 공사 현장이었습니다. 포스코에너지의 인천 복합발전소는 발전용량 3052MW로 수도권 발전설비의 16%를 담당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민자발전소입니다. 이 곳은 1980년 이전에는 모두 갯벌이던 땅을 매립해 발전소를 지은 것이고 7, 8, 9호기는 현재 들어선 1호기~6호기 가운데 노후한 1, 2호기를 대체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되고 있습니다. 2015년 1월부터 전력공급을 시작하도록 정부의 5차 전력수급계획에 포함돼 있고 7호기와 8호기는 내년부터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갯벌을 매립한 이른바 연약지반인데다 인천지역의 경우 강도가 낮긴 하지만 지진의 영향권에도 들어있어서 지진이 와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바닥을 확보한 뒤 건물을 지어야 하고 그래서 사용하는 공법이 이른바 말뚝공법입니다. 일단 매립지에 철근 말뚝을 깊숙하게 때려 박아서 암반까지 닿게 하는 항타 공법입니다. 기존 발전소와 가까운 지역에 대해서는 구멍을 먼저 필요한 만큼 깊게 판 뒤 시멘트와 말뚝을 넣고 해머로 때려서 암반까지 단단하게 안착시키는 이른바 DRA(Preboring) 공법도 쓰고 있습니다. 이런 말뚝공법을 땅에 박아야 하는 파일만 5798개나 됩니다.
인천복합화력발전소

그런데 공사 장면을 일부 담은 영상을 확보해 살펴봤더니 앞서 설명한 대로 때려서 파일을 박아야 하는 장소에서 때리지 않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해당 영상을 국내 토목 전문가 4명을 찾아가 보여준 뒤 자문을 구했는데 한결같이 구멍을 뚫고 시멘트와 말뚝을 넣은 뒤 굳기 전에 바로 때려야 하는 시공 방식을 지키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비록 여러 가지 관계 때문에 자문에만 응한 전문가들도 있었지만 다른 의견을 내놓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만 공사를 맡은 업체가 빨리 작업을 끝내고 다른 곳에서 일을 하기 위해 이런 부실 시공을 할 수는 있지만, 아마 시공사와 감리업체가 현장에 있었다면 부실 시공을 적발해 냈을 것이란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공사에 직접 참여했던 복수의 관계자들로부터 확보한 증언은 조금 달랐습니다. 넓은 공사현장에 비해 1~2명 밖에 없던 감리는 파일 시공 과정을 일일이 점검하지 않았고, 특히 일요일의 경우 공사는 진행되는데 감리는 현장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감리가 없는 일요일에는 대놓고 마지막 과정에서 시행돼야 할 해머로 말뚝을 때리는 과정을 생략했다고 했습니다. 취재진이 전문가들에게 들은 설명은 파일 시공의 경우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각각의 시공 기록지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나중에 샘플을 골라 박힌 파일의 지지력도 검사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 대로라면 시공사나 감리업체가 촬영 화면에 담긴 공사 과정에서 이뤄진 부실 시공을 당연히 찾아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시공사를 찾아가 들었던 설명은 뜻밖이었습니다. 한 번도 파일 공사에서 부실 시공이 적발돼 재시공을 한 적이 없고 문제된 적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공사인 포스코 건설은 전체 말뚝 개수의 1%를 샘플로 뽑아서 조사한 결과에서 말뚝의 설계 지지력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서 시공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시공사와 감리업체가 제대로 기능을 수행했던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었습니다.

더욱이 이미 공사에 참여한 관계자로부터 올해 초 감리가 파일 공사 도중 해머로 제대로 내려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해 공사를 중단시켰던 적이 있고, 이를 시공사측이 중재에 나서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공사를 진행했다는 말을 들었던 상태여서 더 이상했습니다. 일부 공사 관계자들에게 알아보니 이른바 1% 샘플 검사의 경우 미리 검사 대상 지역을 업체가 파악하고 있고 따라서 거기는 제대로 시공을 하기 때문이란 설명을 들었습니다. 방송 직전 포스코 건설 측은 회사로 찾아와 문제가 된 지역에 대해 전면 전수 검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후 검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사도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 동안 이 발전소 건설 과정을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이 문제가 생각보다 구조적인 이유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우리 건설현장에서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청, 재 하청 업체의 경우 짧은 기간에 공사를 빨리 마치고 다른 장소로 가야 하는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발전소 건설의 경우 2000년대 초 전력사업 민영화 방안이 시작된 뒤 적정가격제에서 최저가 낙찰제로 전환됐는데 이러면서 발전소 건설과 정비, 부품 공급 등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원전 납품 비리 문제도 일단 무리한 가격으로 낙찰을 받은 뒤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불량 부품을 납품하게 되는 것이며 최저가만 쓰면 낙찰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뇌물 등 검은 거래가 이뤄지게 된다는 설명을 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물론 최저가 낙찰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뉴스에서 흔히 보는 턴키 담합을 방지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정성이 우선이 돼야 할 발전소의 경우 조금 시각을 달리해서 접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있습니다. 원전 납품 비리로 원자력 발전소 가동이 무더기로 중단되면서 국민들이 전력난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처럼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 산업과 국민들에게 주는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입니다. 원전 비리나 부실 시공을 그저 스쳐가는 일로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정책담당자들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시선으로 사안을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